▲드라마 '킹더랜드'의 한 장면호텔리어 천사랑이 오너의 집에서 서빙을 하고 있다
JTBC
주인공 천사랑(윤아)은 '호텔리어로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결국 부잣집 하녀가 된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직장에서 승승장구해도 결국은 주인일 수 없는 일꾼일 뿐이며 원하든 원치 않든 종국에는 직장을 떠나야 한다.
특히 드라마 속 오너와 일개 종업원의 처지는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천사랑은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났지만, 자신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수시로 깨닫는다. 이는 비단 그녀만의 모습이 아닌 모든 직장인의 거울이었다.
억지로 웃는 줄도 몰랐습니다
"억지로 안 웃어도 되잖아요. 그게 얼마나 큰 특권인데. 난 맨날 웃어요. 아파도 웃고 슬퍼도 웃고."
주인공 천사랑이 남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본부장 구원(이준호)이 부럽다며 한 말이다. 마음에 들어와 콕 박혔지만, 너무 익숙해 그동안 별로 의식하지 못했다.
겉으로는 웃고 있는데 속으로는 우울증을 겪는 것을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이라고 한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오사카 쇼인 여자 대학의 나츠메 마코토 교수가 제안한 정신 질환으로, 장기간의 부자연스러운 미소로 말미암아 우울증과 신체 질환을 발전시키는 증후군이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4명이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을 겪고 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출근을 허락받은 순간부터 스마일 마스크를 부여받았다. 아픈 기억이 많다. 대리 시절 폐렴 진단을 받고 조퇴하는 내게 팀장은 "술을 덜 마셔서 그래"라고 말했다. 접대를 자주 하는 부서에서 일했기에 술자리가 잦았다. 접대 자리에서도 늘 웃어야 했고, 팀장의 이런 막말에도 억지 미소 지으며 "죄송합니다"라고 응해야 했다. 천사랑의 말처럼 아파도 웃어야 하는 죄인이었다.
주말에 등산을 해도, 주말에 출근을 시켜도, 불필요한 야근을 밥 먹듯 시켜도, 회식과 술을 강요해도 웃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많은 게 바뀌었지만, 그때는 윗세대 모두가 한통속이었기에 티 내지 못했다. 억지로 웃었다기보다는 그저 입꼬리를 최대한 끌어올리려 노력했다.
이런 모습은 갑을 관계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갑 중의 갑이 점심 약속 시간에 2시간이나 늦게 나타났다. 당시 함께 일했던 팀장도, 나도 웃으며 맞았던 기억. 최악의 억지웃음이었다.
목숨을 거는 줄도 몰랐습니다
드라마에서 회장 아들 구원은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며 힘들어하는 천사랑에게 "회사 같은 거에 목숨 걸지 말고"라고 말한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자꾸 목숨 걸게 만드네요. 저 같은 일개 사원한테는 하고 안 하고가 선택사항이 아니에요."
요즘 젊은이들은 회사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대가 바뀌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반전이 있다.
이는 단지 보수, 근로시간 등 근로여건 불만족에 의한 잠깐의 퇴사일뿐이다. 결국 이들은 적당히 입맛에 맞는 직장을 다시 찾고, 뾰족한 수 없는 현실에 적당히 목숨 걸게 되는 때를 맞이할 것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세 이상 60세 미만 대한민국 취업자 수는 2020년 2690만 4천 명, 2021년 2727만 3천 명, 2022년 2808만 9천 명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직장인은 끊임없이 취업을 위해 애쓰고 있다.
"저희야 그냥 그만두면 되는데, 팀장님은 가족도 있고 그래서 쉽게 못 그만두시니까 안타까워요."
일이 많아 수시로 야근을 할 때도, 사람 때문에 힘겨울 때도 많다. 이런 내가 안타깝다며 MZ세대 팀원이 해준 나름의 위로였다. 마음은 고맙게 받았지만, 제대로 한 방 먹은 느낌이었다. 들키고 싶지 않은 현실의 한계를 들킨 기분이랄까.
매일 회사를 그만두는 상상을 하며 직장에 다닌다. 하지만 일개 직장인이자 딸린 식구 많은 가장에게는 '퇴사하고 안 하고'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억지로 웃지 말고 있는 그대로 감정을 표출하며 회사에 다녀야 할까. 후배의 위로이자 팩폭을 가슴에 품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녀야 할까. 이에 대한 힌트 또한 드라마 속 주인공 천사랑이 내어주었다.
내 일에서 의미를 찾는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