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스토리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tvN 스토리
김삿갓은 1807년(조선 순조 7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김안근의 2남으로 태어났다. 감삿갓의 가문은 당시 조선 최고의 명문 세도가이던 '장동 김씨(신 안동 김씨)' 가문으로, 김삿갓이 태어날 무렵 장동 김씨가 사실상 국정을 장악하는 세도정치(勢道政治) 시대가 서서히 시작되어가던 시기였다.
명문가의 도련님으로 태어난 김삿갓은 밝은 미래가 보장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는 어쩌면 세도정치 시절 가문의 덕으로 출세하여 안락한 삶을 누린 수많은 장동 김씨 중 한 명으로만 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장동 김씨 가문의 '도련님' 김병연이 평생을 '김삿갓'으로 살아가게 된 이유는, 그의 조부인 김익순(1764~1812) 때문이었다. 1811년 벌어진 '홍경래의 난'은 김삿갓과 그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홍경래의 난은 조선 후기의 사회적 모순과 지역차별에 저항하며 평안도에서 벌어진 대규모 민중 봉기였다. 초기에 홍경래군은 파죽지세로 선천 일대까지 밀고 들어왔다. 당시 선천을 다스리던 부사가 바로 김익순이었다.
김익순은 고립되어 전세가 불리해지자 결국 반군에게 항복했다. 하지만 2년 뒤 홍경래의 난이 정부군에 의하여 진압되면서, 관리로서 반군에 항복하고 협조까지 한 김익순은 대역죄인으로 몰리게 되었다. 설상가상 김익순이 처벌을 면하기 위하여 돈으로 사람을 매수해서 전과를 조작한 것까지 적발됐다. 김익순은 결국 능지처참을 당했고, 연좌제에 따라 가족들까지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김삿갓의 나이는 불과 5살이었다.
위험이 닥쳐오는 것을 파악한 김삿갓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도주한다. 이제 김삿갓은 더 이상 당당한 장동 김씨 가문의 도련님이 아니라, 하루아침에 대역죄인의 후손으로 평생 신분을 감추고 살아야하는 잔반(殘班, 몰락한 양반)으로 전락한 것.
형과 함께 황해도 곡산으로 도피한 김삿갓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양반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서당에 다니며 꾸준히 공부했다. 김삿갓은 어릴때부터 글공부를 좋아했고 시를 쓰고 글을 짓는 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김삿갓이 8살일 때 하루는 훈장님이 말썽꾸러기인 그를 훈육하기 위하여 갈지(之)만 12개를 써서 어려운 시제를 제시했는데, 김삿갓은 보란 듯이 '옥지(屋之)'라는 시를 지어 화답했다.
'옥지상지등지(屋之上之登之) 조지추지집지(鳥之雛之執之) 와지락지파지(瓦之落之破之) 사지노지추지(師之怒之撻之)'로 이어지는 시의 내용은 '지붕에 올라가서 새를잡으려 하다가 기와가 떨어져 깨지니, 스승이 노하여 종아리 치시네'라는 뜻이다. 마치 현대의 프리스타일 래퍼를 연상시키는 김삿갓의 뛰어난 순발력과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원래 김삿갓을 크게 혼내려고 했던 훈장님은 제자의 범상치 않은 천재성을 알아보고 말문이 막혔다고.
1815년, 조선 조정이 반역자 색출을 중단하면서 한숨을 돌리게 된 김삿갓의 가족은 다시 재회하여 함께 살 수 있게 된다. 그나마 김삿갓의 가족이 대역죄에 연루되고도 멸문지화를 면한 것도 당시 세도가였던 장동 김씨의 후광 덕이었다는 게 학계의 평가다. 그러나 장동 김씨 가문은 김익순을 '가문의 수치'로 규정하며 그 가족을 족보에서 지우겠다고 선언한다. 분노와 슬픔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 김안근은 화병으로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