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연인>의 한 장면.

MBC <연인>의 한 장면. ⓒ MBC

 
17세기 조선이 배경인 MBC 사극 <연인>은 그동안 병자호란 상황을 다뤘다. 지난 25일 제7회는 이 전쟁에 영향을 미친 요인 중 하나로 천연두를 제시했다. 마마라는 만주어로도 불리는 천연두가 청나라 군영에 전파돼 청군이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마마는 '마마'로 불린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자주 등장한다.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도 만 21세 때인 1756년 12월 30일 경에 창덕궁 덕성합에서 천연두에 걸린 일이 있다. 그의 부인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기록한 <한중록>는 음력으로 영조 32년 11월 10일 경에 발생한 이 일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해 11월 10일 경에 경모궁께서 덕성합에서 두증(痘症)으로 열꽃이 솟으셨다. 증세는 아주 순하나 피부에 돋은 것이 대단하여 더욱 두려웠는데 수그러져 딱지 져서 지내셨다. 스물두 살 춘추에 격한 화가 이를 것이 없으신데, 두증이 곱게 끝나니 그런 경사가 없었다."
 
역시 마마로 불린 효의왕후 김씨와 그 남편인 정조 이산도 이 병으로 고생했다. 혼인하기 직전에 두 사람은 거의 비슷한 시점에 감염됐다. 여덟 살인 김씨가 아홉 살인 세손 이산의 세손빈으로 결정되기 전의 일이었다. 초간택·재간택·삼간택 순서로 진행되는 세손빈 간택의 제2라운드가 끝난 1761년 겨울에 일어난 일이다.
 
<한중록>은 "재간을 지내고 바로 빈궁이 두역을 하시고, 이어서 세손이 하셨다"라고 기술한다. 곧 빈궁이 될 효의왕후가 천연두에 걸리고 뒤이어 정조가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곧 완쾌돼 삼간택을 거쳐 부부가 됐다.
 
마마와는 거리가 먼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훗날 임시정부하에서 그에 상응하는 지위에 도달하게 될 백범 김구도 천연두를 앓았다. 10대 시절에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관상학을 공부하다가 "얼굴상이 좋은 것은 신체가 좋은 것만 못하고, 신체가 좋은 것은 마음이 좋은 것만 못하다"라는 깨달음을 얻은 뒤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결심한 그는 자기 외모의 기원 중 하나가 천연두 감염에 있다고 생각했다.
 
"세 살 아니면 네 살 적에 천연두를 앓았다. 몸에 돋은 것을 어머니가 예사 부스럼 다스리듯 죽침으로 따서 고름을 빼는 바람에 내 얼굴에 굵은 마마자국이 생겼다."

 
유럽인들의 눈에 신대륙으로 비쳐진 곳에서 대제국을 경영한 아스텍과 잉카의 멸망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도 천연두다. 유럽인들이 이 대륙에 갖고 들어간 바이러스가 두 제국의 멸망을 초래했다고 인식되고 있다.
 
인간의 의식과 생활에 커다란 영향 미친 천연두
 
 MBC <연인>의 한 장면.

MBC <연인>의 한 장면. ⓒ MBC

 
천연두가 인류에게 얼마나 무섭게 인식됐는지는 홋카이도·쿠릴열도·사할린의 아이누족에게서도 느낄 수 있다. 아이누족의 신화를 살펴보면, 이들이 천연두를 신격화하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라시나 겐조 홋카이도가쿠엔대학 교수가 쓴 <아이누 신화>는 "커다란 망치나 도끼, 괭이를 가지고 국토를 건설한 국조신(코탄카라카무이)은 왜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인지에 관한 전력(前歷)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라며 이렇게 서술한다.
 
"하지만 인간의 생활문화 기초를 펼친 반신반인의 아이누랏쿠르(인간 냄새 나는 신)의 어머니는 당느릅나무이고, 아버지는 상천(上天)을 다스리는 신의 남동생신 혹은 우레신, 천연두신이라고도 전해지고 있다."
 
인간 문화의 기초를 놓은 아이누랏쿠르의 아버지가 천연두신이라고 했다. 천연두의 위력을 깊이 인식하지 않았다면 이런 신화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됐던 최근 한동안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화장술의 변화다. 립스팁이나 색조 화장품의 필요성이 아무래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천연두 역시 인간의 화장술에 영향을 끼쳤다. 지리나 여행문화 등의 저술가인 쓰지하라 야스오의 <문화와 역사가 담긴 옷 이야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19세기 전반에는 피에로 같던 두꺼운 화장이 사라졌는데, 이는 종두의 발명에 힘입어 천연두가 격감하면서 여성들의 얼굴에서 곰보 자국이 사라진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빅토리아 시대에 코르셋이 다시 출현한 것처럼 여성들은 또다시 화장·미용·스타일에 대한 강박 관념에 사로잡혔다. 그 요인 가운데 하나는 외출 기회가 늘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 점이고, 거울과 사진기가 급속도로 보급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천연두가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 오늘날과 달리, 과거에는 위와 같이 천연두가 인간의 의식과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MBC <연인>에 묘사된 것처럼 병자호란 같은 전쟁의 흐름에도 파급력을 끼쳤다.
 
<연인> 제7회에서는 청나라 군영에 잠입한 주인공 이장현(남궁민 분)이 청태종 홍타이지(김준원 분)의 천연두 감염을 눈치채는 장면이 있었다. 이장현의 제안에 따라 주화파 최명길은 청군과의 강화 협상에 이를 적극 활용했다.
 
드라마 속의 최명길은 '마마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청 황제의 권위가 훼손될 것'이라며 청나라를 압박했다. '이대로 철군하면 청태종의 감염 사실을 비밀로 해주겠다'는 게 그의 약속이다. 결국 청나라는 인조의 항복을 받는 조건으로 철수를 단행하게 된다. 드라마 속의 이야기는 그렇게 전개됐다.

실제로도, 병자호란 중에 청나라 군영에서 천연두 환자가 발생했다. 2016년에 <민족문화연구> 제72호에 수록된 구범진 서울대 교수의 논문 '병자호란과 천연두'는 "정월 16일 보호토 휘하의 니루에 마마 환자가 발생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라며 "더구나 이 환자는 홍타이지의 어영 가까이에 머물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가 항복하러 나오기 2주 전인 양력 1637년 2월 10일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일이 청군의 작전계획에 영향을 줬다고 볼 만한 정황이 있다. 압도적인 우세를 유지하던 청군이 천연두 발생 다음날인 음력 1월 17일(양력 2월 11일)부터 갑자기 강화 협상을 서두른 사실이 그것이다.
 
드라마 <연인>은 조선 조정이 그런 상황을 적극 이용해 청나라의 조기 철군을 유도했다고 스토리를 전개했지만, 위 논문의 설명은 다르다. 청나라 군대가 조선을 빨리 떠나기 위해 적극적인 협상력을 발휘하는 쪽으로 상황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정월 17일부터 홍타이지는 남한산성의 조선 조정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며 "협상은 주효했다"고 논문은 평한다.
 
청태종은 협상뿐 아니라 전투 일정에도 변화를 줬다. 강화도 공격 시기를 예정보다 앞당겨 대성공을 거둔 뒤 조선 왕족을 사로잡고, 음력 1월 26일(양력 2월 20일)에 이런 사실을 조선 조정에 알렸다. 그런 뒤인 음력 1월 30일에 인조의 항복을 받았다. 천연두 발생이 청나라 측을 더 적극적이고 분주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병자호란은 세계 역사는 물론이고 조선 후기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런 병자호란의 향방을 좌우하는 데도 천연두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병균(病菌)뿐 아니라 병(兵)균의 역할까지 하면서 인류 역사에 개입하는 바이러스의 위력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사례다.
연인 병자호란 천연두 마마 역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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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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