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룩셈부르크 요리 월드컵 청년부에서 아그네스 카라슈가 속한 팀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 월드컵에 참가한 사람들 중 아그네스는 유일한 여성이다 

오스트리아 최고의 레스토랑 슈타이레렉 일원으로 요리 월드컵에서 우승을 쟁취한 아그네스. 하지만 다큐는 그녀가 커다란 캐리어 두 개에 배낭에 가방까지 주렁주렁 짐을 들고 길을 떠난다.

그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녀는 왜 길을 떠나게 된 걸까. 105분에 걸친 그녀의 여정은 셰프를 자신의 삶으로 택한 한 여성을 보여준다. 그녀의 팔에는 셰프로서의 삶을 선택한 그녀의 다짐처럼 스푼과 포크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eidf 2023 그녀의 키친, 쉬 셰프

eidf 2023 그녀의 키친, 쉬 셰프 ⓒ ebs

 

미슐랭 레스토랑의 인턴으로 

그녀가 도착한 곳은 미슐랭 3 스타의 방동 레스토랑. 면접 과정에서 주방장은 많은 주방에서 다향한 경험을 쌓은 그녀의 이력에 놀람움을 표출한다. 그러자, 그녀는 말한다. 나에게 뭐가 맞는지 알기 위해서라고. 

19살에 셰프가 되기 위해 관광 학교에 간 그녀는 그곳에서 만족할 수 없었다. 학교를 뛰쳐나온 그녀는 한때 부업으로 소규모 케이터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다양한 미슐랭 레스토랑의 인턴으로 경험을 쌓으며 자신을 단련하고 있는 중이다. 

13명이 일하는 방돔의 주방, 그 시작은 페이스트리 코너이다. 흔히 주방의 상황을 전쟁과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만큼 정신없는 상황에서 페이스트리를 만들어야 하는 현실이다. 아그네스 역시 페이스트리 만들기로 주방생활을 시작한다. 다행히 방돔의 주방은 그녀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제공했다. 전채요리, 가니시, 그리고 가장 어렵다는 앙트르메티에 (Entremétier 야채 요리를 맡으며 수프, 계란, 파스타와 같이 곡물이 들어간 음식을 담당)까지 일취월장한다. 

'토끼 넷 오리 셋' 아니, 오리 넷 토끼 셋', 잘못전달 된 주문이 그 날의 우스개가 될 정도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주방의 마무리는 거품 가득일게 그릇 닦는 걸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다음 날, 커다란 칼로 거침없이 고기를 토막내는 밑작업으로 그녀의 하루가 시작된다. 주방장는 아그네스를 가리켜, '허약한 몸뚱이'라며 너같은 여자애가 그런 칼을 써도 되겠냐고 묻지만 그녀는 마다하지 않는다. 칼을 고르는 그녀의 표정은 마치 무기를 고르는 무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셰프들은 우스개로 말한다. 언젠가 복권에 당첨되면 주말에는 쉬겠다고. 이틀만 식당문을 열겠다고. 알레르기나 락토프리 손님은 주문 불가라 큰 소리 치겠다고. 그만큼 까다로운 손님의 주문 요건을 맞추며 미슐랭 수준의 요리를 해내는 일은 힘들다. 사람들은 셰프로 일하는 아그네스에게 엄마나 아내 역할도 잘 해낼 거라고 하지만, 쉬고 싶을 때 쉴 수 없는 이 직업을 하면서 엄마와 아내 노릇을 하는 건 자신없다는 그녀다.  

40개의 테이블, 39명의 예약이 꽉 찬 하루. 수셰프가 그녀를 부를 때마다 그가 요구하는 것들이 그녀의 손에는 이미 들려있다. 물 흐르듯이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주방장은 바지가 찢어진 상황에서도 아랑곳없이 일하는 그녀를 보고 고개를 젓는다. 외려 그녀는 이 정도면 괜찮겠지 했단다. 그런 그녀에게 주방장은 말한다. 큰 산을 넘으며 여기까지 왔으니 행운이 따를 것이라고. 하지만 실패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의 말에 그녀는 답한다. 그 실패가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거라고. 눈물을 훔치며 다음 날 거뜬히 다시 일어나 여기까지 왔다고 말이다. 
 
 eidf 2023 그녀의 키친, 쉬 셰프

eidf 2023 그녀의 키친, 쉬 셰프 ⓒ ebs

 

바르셀로나로 

그녀가 다시 길을 떠난다. 이번에 짐을 푼 곳은 바르셀로나의 디스푸르타르 레스토랑, 이번에도 미슐랭 2스타의 명소이다. 돼지 머리에서 귀를 잘라내고, 뼈를 토막치던 그녀는 이제 바르셀로나의 특산물인 맛조개 위에 해초를 덮고, 구슬 샐러드를 만들어야 한다. 목화솜 나뭇가지도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세프로서의 능력은 그녀가 쌓아 온 경험만큼이나 발군이지만 바르셀로나라는 지역의 벽에 부딪힌다. 요리는 만국 공통의 언어이지만, 그 요리를 만들기 위해 통해야 하는 언어가 장벽이 된 것이다. 하지만 한 해에 새로운 레시피 100개를 만들지 않으면 손님들은 질리고, 셰프들은 안일해진다는 이 레스토랑에서 그녀는 또 새로운 자극과 경험을 빨아들인다. 

언어의 장벽마저 뛰어넘을 기세로 일해가던 그녀의 발목을 코로나 팬데믹이 잡는다. 한차례 문을 닫았던 레스토랑은 6개월 후 다시 영업을 시작했지만, 결국 정부 방침에 따라 다시 문을 닫게 된다. 온도를 재고, 손 소속을 하고, 마스크를 쓰고, 식당을 몇 번씩 소독해도 바이러스의 공격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eidf 2023 그녀의 키친, 쉬 셰프

eidf 2023 그녀의 키친, 쉬 셰프 ⓒ ebs

 

노르딕까지 

공항마저 멈춘 듯한 바르셀로나를 떠나, 그녀가 도착한 곳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사회적 통제가 덜한 페로 제도의 또 다른 미슐랭 레스토랑 '코크스'이다. 그런데 레스토랑이라는데 이전에 그녀가 일했던 곳과 다르다. 폐로 제도의 자연적 풍광이 그대로 묻어나는 호숫가 오두막 같은 곳에 레스토랑이 자리잡고 있다.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바닷가로 나가 조개를 캐오고, 밤새 담가두었던 통에서 홍합을 꺼내온다. 닭들에게 모이를 먹이고 달걀을 꺼내온다. 달팽이 육수에, 훈제한 고래 심장, 갈매기 고기, 신선한 천연의 재료로 만들어진 요리는 그 천연의 느낌을 살려, 조개껍데기나 돌을 그릇으로 활용한다. 그녀에게 또 다른 요리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한때 방돔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셰프가 베를린에 식당을 개업한다며 함께 일하자고 권한다. 이제는 '인턴'이 아니라 당당한 동료로. 그래도 우선 한 시즌은 이곳에서 일하겠다는 아그네스다. 그런데 코크스의 주방장 역시 그녀에게 너는 이제 인턴 대신 정직원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선택은?

그녀는 말한다. 자신이 십대에 이 일을 시작했더라면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너무 어려서 농담조차도 구분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을 거라고. 20대에 시작해서, 인턴으로 유럽을 '주유'하던 그녀는 이제 벗의 스카우트 제의도 마다한 채 노르딕의 바닷가 외딴 미슐랭 레스토랑에 남기로 한다.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아그네스다. 전쟁 같은 주방이지만 이곳은 한 팀이라는 의식을 앞세워 실수를 하더라도 무시하지 않기에 자신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암묵적 경쟁이 팽팽한 이 주방이라는 공간에서 성별이 문제가 되지 않는 곳 또한 여기였기에 이곳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길을 찾던 그녀가 비로소 뿌리를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EIDF 2023 그녀의 키친, 쉬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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