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체르노빌 : 지옥의 묵시록> 스틸컷
EBS
03.
문제는 지금 세대가 이곳 체르노빌 지역을 그저 투어 장소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방문 금지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이 여행 허가 구역으로 전환된 이후 하루에 400명에서 많게는 1000명까지도 이 지역을 방문하고 있다. 체르노빌 관련 당국에게는 이 일이 괜찮은 수익 사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곳을 관리하고 제한하는 일을 하는 직원들의 월급 역시 관광 산업의 수익으로 채워진다. 한편, 방문객들에게는 일반적인 도시나 자연이 아닌 위험한 환경을 찾는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물론 현재 관광객들이 찾는 지역의 방사능 수치는 30여년 전에 측정된 것보다 천 배는 적은 수치에 해당된다. 허가된 그룹마다 방사능 측정기를 소지한 가이드가 있어서 특정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그 수치를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곤 하는데, 보통의 경우에는 일반 도시에서 2-3일 동안 측정한 양을 합한 정도거나 비행기를 타고 2시간 정도 비행했을 때 일반인이 노출되는 양과 거의 비슷한 정도다. 이를 근거로 이 지역이 (접근 금지 구역을 제외한 허가 지역에 한해서) 이제 안전하다는 사람도 있고, 여전히 위험하다는 이들도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곳이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원자 입자들은 크기가 모두 다르고 이동 속도도 제각각이기에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각 지역의 상황이 지금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방사능을 이유로 오랜 시간 방치된 숲지대와 초원지대 등지에서 늑대 무리나 큰 야생 동물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위험도 상존한다. 이들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시간 동안 이 지역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생각하며 생존해 왔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람을 침입자로 인식하여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방문객들의 호기심과 무분별한 훼손도 문제가 된다. 이곳에 남아 있는 물건들은 모두 사고의 역사이자 유물에 해당하고 이 장소를 기억하게 하는 요소들인데, 방문객들에 의해 망가지고 오염되면서 어떤 지역은 너무 많이 변해버리기도 했다.
04.
체르노빌 지역을 관광 산업으로 이용하고 있는 관련 당국조차 일부 지역을 금지구역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역시, 아직까지 이곳이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방사능의 존재 여부와 농도 수준은 지금까지도 측정기를 켜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으로는 알 수가 없다. 느낄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지금 당장 괜찮다고 하더라도 10년 후에 암에 걸릴지 어떨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매우 확정적인 정보이며, 그간의 많은 피해자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버려진 건물이나 접근이 금지된 장소를 탐험하려는 이들은 존재한다. 스토커(불법 방문자들)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정해진 규정까지 어기면서 여전히 고농도의 방사능이 측정되고 있는 제한구역까지 들어간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정보를 서로 공유하며 맹목적으로 믿는 모습까지 보이는데, 가령 방사능이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큰 문제가 없다는 말을 맹신하는 식이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대담한 사람이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고자 하거나 과거 소련의 정책이나 기술 수준과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갖고 파헤치기 위해 이런 위험한 행동을 한다. 스토커들은 자유를 억압받지 않기 위해 이런 행위를 하고 있으며 벌써 하나의 하위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들 중 대다수는 그들의 부모가 사고 수습자였던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1986년부터 1987년까지 체르노빌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30만 명이 넘는 작업자가 투입되었다. 처음에는 특수 로봇을 투입해 방사능 폐기물을 청소했으나 일을 모두 마치기도 전에 높은 방사능 수치 때문에 이들 로봇에 고장이 발생했고, 그 자리를 사람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오염 제거에 나선 이들을 '바이오 로봇'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사고가 일어난 봉인 시설 꼭대기로 뛰어올라가 오염된 흙을 서너 삽 퍼내고 다시 도망쳐 나오는 식으로 작업이 이어졌다고 한다. 방사능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제대로 된 방호복조차 주어지지 않은 환경에서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당시의 수습 노동자들은 방사능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르고 투입되었고, 그저 돈을 많이 주는 일이었기에 그 일을 했다고 말한다. 지금, 위험지역으로 향하는 '스토커'들의 목적에 단순히 스릴과 자유만이 놓여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괜한 기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