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에 대해 생각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굳게 믿는 마음'이고, 삶 가운데선 살아가는 기준이 되는 가치며 이념이 바로 신념이다.
 
신념을 가치 있게 여기는 이들은 말한다. 신념이 없는 삶은 무절제하고 무계획적이며 나아가 무의미하기 쉽다고 말이다. 반면 신념은 독이 되기도 하니, 삶을 파멸로 이끄는 맹신과 맹종 가운데 신념으로부터 자라나지 않은 경우를 나는 얼마 보지 못한 것이다. 말하자면 신념은 그 자체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분명한 건 신념이 인간을 강하게 한다는 점이다. 역경으로부터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하며, 거듭하여 나아가는 동력이 되어준다. 바깥으로부터 이끌어주는 유혹보다도 안으로부터 일어나는 힘의 강력함을 믿는 이라면 신념을 세우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로마 사극을 새로 썼다고까지 평가받는 미국 Starz 채널의 야심찬 드라마 <스파르타쿠스>는 바로 신념에 대한 이야기다. 제가 믿는 것을 위하여, 중요하다 여기는 삶의 방식을 위하여 온 삶을 내던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드라마가 되겠다. 한 사람의 신념이 다른 사람의 신념과 공존할 수 없을 때, 그리하여 서로의 신념이 충돌할 때 벌어지는 일이 이 격렬한 드라마의 주된 관심이 된다.
 
스파르타쿠스: 피와 모래 포스터

▲ 스파르타쿠스: 피와 모래 포스터 ⓒ starz

 
미드 사상 최고의 사극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드라마는 역사와 전설 중간쯤에서 자라난 오랜 이야기를 다룬다. 다름 아닌 스파르타쿠스의 난, 억압받던 이들이 박차고 일어났다 마침내 스러지는 그 피 끓는 전설을 드라마로 만든 것이다. <스파이더맨>의 흥행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샘 레이미가 TV드라마 시장까지 휘어잡겠다는 야심을 품은 제작자 롭 태퍼트와 손잡고 만들어낸 이 드라마 첫 시즌인 '피와 모래'편은 모두 세 시즌으로 기획된 장대한 서사 가운데 영웅의 탄생까지를 그린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트라키아족이 사는 어느 마을에 행복한 부부가 살았다. 남자(앤드 위필드 분)는 여자를 아꼈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했다. 그 평안한 나날은 마침내 깨져나가니 남방의 강국 로마가 이들을 찾아 다른 부족과의 전쟁에 참여할 것을 설득한 것이다. 사내의 부족은 오랜 숙적을 함께 물리치자는 로마의 제안을 받아들여 참전을 결정한다. 그러나 로마는 약속을 깨고 사내의 종족을 거듭 위협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트라키아족은 마침내 로마군으로부터 이탈하지만 사내는 아내와 함께 붙들려 로마로 송환되기에 이른다.

그가 그렇게 도달한 곳은 카푸아라는 도시, 바티아투스(존 한나 분)가 운영하는 검투사 양성소다. 사내는 이곳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내 살아남아 검투사로 일어선다. 그렇게 그가 얻은 이름이 바로 스파르타쿠스다. '피와 모래'는 제목 그대로 모래 위에서 피를 흘리며 검투사로 거듭나는 과정이며, 스파르타쿠스가 동료들을 설득하여 압제를 부수어내는 이야기다. 그 가운데 중심이 되는 것이 신념이라 하겠다.
 
스파르타쿠스: 피와 모래 스틸컷

▲ 스파르타쿠스: 피와 모래 스틸컷 ⓒ srarz

 
검투사 이야기로부터 신념을 만나다
 
나는 신념에 주목하여 이 시즌을 본다. 검투사 양성소는 말 그대로 검투사를 길러내는 곳이다. 검투사는 검투장에서 목숨을 걸고 대결하는 자들로, 그들 중 다수는 노예의 신분이다. 노예라 하여 희망이며 긍지가 없는 그저 그런 이들이 아니다. 매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게 되는 이들에겐 스스로를 단련하는 성실함과 위험에 정면으로 맞서는 용기 따위의 가치가 요구되는 탓이다. 성실과 용기는 뿌리 없이 자랄 수 없는 미덕이다. 그 뿌리가 되는 것이 바로 신념이다.
 
스파르타쿠스가 있는 바티아투스의 검투사 양성소엔 챔피언이 있다. 골족 출신의 검투노 크릭서스(마누 베넷 분)가 바로 그다. 생명을 걸고 싸워 이긴 몇 차례 검투 끝에 살아남은 크릭서스는 시즌 내내 스파르타쿠스의 숙적으로 극에 긴장을 불어넣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때 챔피언이었던 도토레 오이노마이오스(피터 멘사 분)는 양성소 모두의 존경을 받는 교관이 되어 채찍을 내리친다.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삶이 있는 법이다. 노예로 가득한 검투사 양성소에도 삶은 있고, 크릭서스와 오이노마이오스에겐 양성소가 곧 제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크릭서스는 검투에서 이겨 관중의 환호를 받는 것을 삶의 목적이라 여긴다. 오이노마이오스는 제가 속한 바티아투스 양성소를 로마 제일의 양성소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 된다. 이 같은 신념이 이들을 그 지옥같은 삶으로부터 버티도록 한다.
 
스파르타쿠스: 피와 모래 스틸컷

▲ 스파르타쿠스: 피와 모래 스틸컷 ⓒ starz

 
신념과 신념이 맞닿을 때
 
스파르타쿠스는 이들의 삶을 받아들일 수 없다. 로마군에게 포획되기 전 그는 자유인이었고 노예로는 살 수 없다 믿기 때문이다. 자유인으로 잃어버린 제 아내를 되찾기 위하여 그는 하루빨리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할 뿐이다.
 
흥미로운 건 누구의 신념이 다른 이의 신념과 부딪치는 순간이다. 억압을 물리치고 자유를 얻으려는 스파르타쿠스의 신념은 크릭서스와 오이노마이오스를 끝내 설득해내지 못한다. 신념이 때로 각자의 삶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저와 다른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게도 한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슬며시 내보인다. 또한 어느 신념은 부조리한 현상을 외면하도록 하며, 마땅한 궐기에 저항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이야기한다. 요컨대 비판 없이 믿어지기만 하는 신념은 인간을 쉽게 그릇된 길로 이끌어가는 법이다.
 
스파르타쿠스가 크릭서스와 오이노마이오스의 견제와 감시를 피해, 바티아투스의 억압과 기만을 뚫고서 마침내 반기를 들기까지의 이야기는 기대보다 훨씬 큰 성공을 이룩했다. 샘 레이미와 롭 태퍼트는 이로부터 예정된 시리즈를 뒤이어 제작할 수 있는 확실한 동력을 얻었다. 한국에서도 OCN 방영 당시 시청률 4%가 넘는 대박을 터뜨린 이 드라마는 제작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OTT 서비스에서 꾸준한 인기를 자랑한다. 그 근저에는 강한 인간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덕목, 곧 신념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자리한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스파르타쿠스: 피와 모래 스틸컷

▲ 스파르타쿠스: 피와 모래 스틸컷 ⓒ starz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스파르타쿠스: 피와 모래 스파르타쿠스 STARZ 미드 김성호의 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