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더 데이스>.
넷플릭스
<더 데이스>의 주요 줄거리는 수습과 대처에서 문제가 많았던, 요시다 소장이 근무했던 제1발전소(다이치 원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90명 원전 관계자들 인터뷰를 채록한 저서도 물론 참고되었지만 드라마의 기본줄기는 사고일지 격인 '요시다 조서'를 주로 따른다.
요시다 소장은 홀로, 혹은 측근 한두 명과 궁리한 끝에 결론을 내리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더 데이스>의 묘사에 따르면, 요시다 소장은 실무책임자로서 직원들의 희생정신을 격려하고 그들의 결기에 자주 감동받는 모습을 보이지만 자신의 판단을 대체로 밀고 나갔다. 또, 막판에 발전소 직원들을 단계별로 대피시켜야 할 시점에 이르자 요시다 소장은 직원들의 자율적 의견을 취합하기보다 자기가 직원 명단을 직접 분류하여 우선순위 대피자명단을 작성했다. 독립적이긴 하나 상부의 명령으로부터 아주 자율적이진 않았으며,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했지만 상황이 자신의 예측과 다르게 진전되면 제일 먼저 허둥지둥 당황했던 사람이었다.
일곱 번째 에피소드에서 요시다 소장은 기괴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목숨을 걸고 사고를 수습하라"는 총리의 호통소리를 듣고 요시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지를 벗고 엉덩이를 긁는 행동을 보인 것이다. 이 행동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행동의 의미를 요시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세히 설명해주었는가? 아니었다. 요시다는 그냥 다시 바지를 입고 자리에 앉았다. 요시다의 이해불가 행동은 또 있다. 사고수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발전소에 잔류해야 했던 직원들이 깊은 슬픔에 잠겨있을 때였다. 요시다가 갑자기 과자를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으며 씨익 웃었다. 이 돌발행동은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고난 앞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은 사람'이라기보다는 '객관적 현실파악을 체념한 무기력한 낭만주의자' 같다.
요시다 소장은 문젯거리 앞에서 책임을 떠넘기고 도망가는 비겁자 타입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제2발전소의 나오히로 소장처럼) 직원들과 함께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자 타입도 아니었다. 그런 데다가 그는 나중에 자신의 암 발병에 대해서 스스로 합리적으로 추론하지 못하는 인지부조화 현상마저 보인다. 사고수습 직원들의 혈뇨는 방사능 피폭 때문으로 여기면서도 '내 암은 스트레스와 흡연 때문이야'라고 자기 맘대로 결론지은 것이다.
원전 돌아가는 소음에 자주 묻히는 '생명의 언어'
▲넷플릭스 드라마 <더 데이스> 포스터.넷플릭스
<더 데이스> 다섯 번째 에피소드에서, 요시다 소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드라이벤트(방사능 물질의 화학적 희석 후 공기중 분산배출), 해수주입(원자로 온도상승을 막는 냉각수 용도로 바닷물을 사용함) 등 원전사고 긴급 해결방안이 후쿠시마에서 최초로 시도됐다. 우리한테는 사고수습을 위한 매뉴얼이 없었다."
그렇다. 그의 말처럼 원전사고를 성공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매뉴얼은 그때 없었을 것이다. 동의한다. 지금까지도 비단 후쿠시마 원전 관계자들뿐 아니라 지구상 모든 원전 관계자들에게 최고의 원전사고 수습 매뉴얼은 없을지 모른다. 그때그때 일어나는 원자로 폭주 사태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는 게 있다. 독일이 선택한 '원전 가동중지, 원전 영구폐쇄'라는 근본적 매뉴얼이 바로 그것이다. 값비싼 원자로를 지키자는 소리, 회사와 정부의 체면을 구기지 말자는 소리, 그리고 원전 돌아가는 소리에 자주 묻히는 그 매뉴얼은 생명을 선택하라는 소리에 다름 아닐 것이다.
생명을 선택하라는 그 소리를 지금이라도 우리는 들어야 할 것 같다. 아버지가 부르는 낮고 작은 "인디아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침내 한 손 아니라 두 손으로 생명을 향하겠다고 결정한 아들처럼 말이다. 우리나라에 원전사고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어느 누가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겠는가. <더 데이스>의 깊은 침묵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더 데이스>가 증명하는 게 하나 더 있다. 막상 사고가 일어난 뒤엔 오직 '원자로 폭주'를 막는 일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음을 '이보다 더 확실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원자력 발전소가 곧 '원자탄'이 될 수 있다는, 피할 수 없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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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수업(위즈덤하우스), 해나 아렌트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지식공작소), 환경살림 80가지(2022세종도서, 신앙과지성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