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의 한 장면
MBC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에서의 킬러문항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자 교육부는 수능에서 킬러문항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대치동 학원가는 학부모와 수험생의 불안을 자극했다. 수능 5개월 앞둔 시점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는 '킬러 문항과 최종병기, 수능을 해부한다' 편이 방송되었다. 금요일 밤 대치동 학원의 풍경으로 시작된 이날 방송에서는 대치동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사교육과 교육격차 등에 대해 다뤄졌다. 취재 이야기가 궁금해 해당 회차 취재한 이준희 기자와 지난 27일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이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지난 23일 방송된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킬러 문항과 최종병기, 수능을 해부한다' 편 취재하셨잖아요. 방송 끝낸 소회는 어때요?
"처음 기사를 구상하면서 '수능과 사교육'이라는 메모장 파일 만든 게 6월 23일이었으니 방송까지 꼬박 한 달 걸렸네요.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대치동을 안 가도 된다는 게 좀 후련합니다. 방송 보신 분들이 우리나라 사교육이 얼마나 심각하고, 뭐가 문제인지 많이 공감해 주신 것 같아 보람이 있었습니다."
- 사교육에 대한 취재는 어떻게 하게 되었어요?
"저는 2000년대 초반에 수능을 봤는데요. 사실 '킬러 문항'이라는 걸 이번에 처음 들어봤어요. 일부러 틀리게 하려고 내는 문제가 있다는 게 우선 이해가 안 됐고요. 그런데 더 이해가 안 됐던 건 정부가 무려 9년 만에 내놓은 사교육 경감 대책의 핵심 주제가 왜 고작 '킬러 문항 배제'냐는 거죠. 수능 위주 입시 제도는 그대로 두고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주제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 금요일 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학생 데리러 온 학부모들 차로 붐비는 것 같던데 현장 분위기가 어땠나요?
"애들을 태우러 온다는 걸 라이딩이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대치동 라이딩을 실제로 본 건 저도 그날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진짜 경적 소리와 호각 소리가 뒤엉켰어요. 교통 정리하는 분께 한번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주말이든 공휴일이든 할 것 없이 모범택시 기사 10명이 매일 밤 2시간씩 대치동에 투입된다는 거예요. 근데 대치동 은마아파트 사거리는 매일 밤 2시간씩 10명이 투입돼서 교통정리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매일매일 학부모들이나 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쏟아진다는 거예요.
인상적이었던 건 뭐냐면 학생들에게 밤 10시까지 학원 다니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뭐라고 그러냐면 처음에는 힘들었대요. 근데 이제는 익숙해졌다는 거예요. 얼마나 오랫동안 캐리어 끌고 학원에 다녔으면 그 어린 학생 입에서 익숙해졌다는 말이 나올까 했죠."
- 학원을 보통 몇 개나 다녀요?
"사람마다 다르겠죠. 근데 제가 대치동 키즈분들한테 물어봤을 때는 많이 다니면 고3 기준으로 10개까지도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 영어, 수학만 학원에 가는 게 아닌가요?
"이게 대치동의 특징이기도 한데 예를 들면 수학 학원이라 그래도 내신용 수학 학원이 있고 수능용 수학 학원을 따로 다녀요. 그리고 대치동 키즈 인터뷰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술·가정 학원도 있다고 그러거든요. 기술·가정이라고 하면 사실 일반적으로 학원에 다니지는 않죠. 그런데도 기술·가정 학원도 있다고 하지 또 논리 속독 학원도 다녔다고 하지 또 철학 학원도 다녔다고 하지. 그러니까 정말 온갖 종류의 학원이 다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 번에 10개를 다니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 서울 대치동에는 초등 의대반도 있다던데.
"그렇죠. 제 <스트레이트> 직전 회차 주제가 의료 격차였어요. 소아과 의사는 부족하다고 하고 지방에는 의사가 없다는데, 정작 의대 가려는 사람들은 미어터지잖아요.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에 대해서 취재하며 대치동에 있는 초등 의대반을 취재 갔었어요. 그때 들었던 얘기가 원래는 '초등 의대관'이니까 초등학생 8살부터 와야 하는데 6살 7살도 문의가 온다는 거예요. 우리 애를 거기 보내고 싶다고요."
- 왜 그럴까요?
"제가 볼 때 근본 원인은 우리 사회의 격차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우리나라 대학 서열화와도 관련이 있는 얘기인데 좋은 대학 못 가면 한마디로 좋은 삶을 못 사니까 좋은 대학에 어떻게든 가려고 사교육 치열하게 받는 거거든요.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박노자 교수님 인터뷰에도 나오는데 진짜 없애야 할 건 '사교육 카르텔'이 아니라 '스카이(서울, 연세, 고려대)' 카르텔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실제로 100대 기업 CEO 중에서 절반 이상, 국내 11개 로스쿨 합격자 3명 중 2명이 스카이 출신이거든요.
우리나라 성장 곡선이 점점 완만해지잖아요. 그러면 스카이로도 안심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타난 현상이 '의대 블랙홀'이에요. 저희 인터뷰 보시면 아시겠지만, 심지어 서울대 경영학과 학생이 의대에 가려고 반수를 하거든요. 우리나라 개원 의사 연봉이 근로자 평균의 8배예요. OECD에서 격차가 가장 크거든요."
- 킬러 문항 없애겠다고 하니 학원만 득을 보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던데.
"사실 킬러 문항 없애는 것 자체는 사실 바람직한 방향이 맞아요. 그런데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5개월 남은 시점에 지침을 내려버리면 학원 입장에서는 당연히 가만히 안 있겠죠. '이제 걱정하지 마 우리가 대비해 줄게.'라는 불안 마케팅으로 유혹하게 되는 거죠. 사교육은 불안을 먹고 자라거든요."
- 교육부가 킬러문항이라고 든 예시가 현실과 맞지 않나요?
"사실 교육부 입장에서는 자기 부정 해야 되는 거라 진짜 곤혹스러웠을 것 같아요. 이번에 찾아보니까 작년 9월 16일에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소위가 있었는데 그때 회의록을 보면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킬러 문항 같은 경우에는 사실 교육 과정을 벗어났다기보다는 그 안에서 난이도 조절 내지는 변별력을 위해서...'라는 얘기를 해요. 이때 장상윤 차관이 그냥 교육부 차관 신분이 아니었어요. 뭐냐면 박순애 전 장관이 사퇴한 직후라서 그때 장상윤 차관은 '장관 직무대행'이었거든요. 그러니까 교육부 수장 입에서 킬러 문항이 없다는 말이 나온 거예요.
그런데 6월 15일 대통령 발언 이후 교육부에서 뭐라고 그러냐면 '알고 보니까 킬러 문항이 원래부터 있었네요.'라고 말을 바꿨어요. 그래서 이번에 킬러 문항 사례 보도 자료 있거든요. 보도 자료 보면 '이런 이런 게 킬러 문항의 기준인데 이런 이런 문항이 이런 기준에 걸린다.'라고 낸 게 아니에요. '무슨 무슨 언론에서 이 문제를 보고 킬러 문항이라고 합디다.', '무슨 무슨 언론에서 이 문제가 킬러 문항이라고 하네요'라고 교육부가 언론 보도를 해설했어요. 그러니까 논란이 더 커진 거예요. 그리고 수험생 입장에서는 '킬러 문항이 뭡니다'라고 기준이 있어야 '그럼 이 문제가 안 나오는구나'라고 예상하고 대비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기준 자체가 여전히 모호하니까 수험생 입장에서는 '그럼 도대체 무슨 문제가 안 나온다는 거야'하면서 대비가 불가능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