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tvN STORY
828년, 승승장구하던 장보고는 이번에는 고국 신라로의 귀국을 결정했다. 당시 동아시아 해상무역에서 최대의 걸림돌은 바로 바다를 위협하는 해적들의 존재였다. 해적들은 상선을 탈취하는가 하면 사람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판매하며 인근 국가들의 공통된 골칫거리로 자리잡았다. 정작 당나라는 해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타국에서 일개 상인이자 외국인에 불과했던 장보고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해적 문제 해결을 위하여 신라 조정을 찾은 장보고는 당시 42대 국왕이던 흥덕왕을 만난다. <삼국사기>에는 장보고가 흥덕왕에게 "청해에 진을 설치하여 해적들이 사람들을 중국으로 잡아갈 수 없게 하십시오"라고 제안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당시 신라 조정 역시 해적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지만 소탕할 여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미 이를 알고 있었던 장보고는 신라 조정에 청해진 설치와 군 지휘권을 주면 자신이 해적을 소탕하겠다고 제안하며 본심을 드러낸다. 왕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통하여 합법적인 군사활동의 명분을 얻고 신라에서의 무역기반을 다지기 위한 장보고의 전략가적인 안목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흥덕왕은 장보고를 '청해진 대사'로 임명하고 1만의 군사를 징발할 수 있는 권한을 내린다. 장보고는 이미 당나라에서 무령군과 재당 무역상으로서의 활약상을 통하여 신라에서도 그 이름이 알려진 상태였다. 해상 장악력이 약했던 신라 조정으로서는 신라인에 바다 출신, 군 경험까지 갖춘 장보고는 충분히 활용가치가 높은 존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흥덕왕은 장보고가 평민 출신이라 특별한 관직을 내리기 어려웠기에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청해진 대사라는 특별직을 신설하는 파격을 단행했다.
청해진은 장보고의 고향인 완도에 위치했다. 청해진은 당과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로의 정중앙에 위치하여 동아시아 삼각무역의 중심지로 완벽한 입지를 지니고 있었다. 삼면이 바다로 트여있어서 해적선 감시에도 용이했다. 장보고가 평생의 꿈을 이루기에 가장 최고의 장소가 바로 청해진이었던 것.
장보고는 청해진을 설치한 이후 해적들을 소탕하고 인근 바닷길을 평정했다. 이후 당나라에서 측근이던 정년도 돌아와 장보고 진영에 합세한다. 장보고는 자신의 인맥을 활용하여 활발한 해상국제무역을 주도하며 막대한 부와 번영을 누리게 된다.
장보고의 거점인 청해진은 9세기 당시 세상의 온갖 진귀한 물품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국제 무역항으로 자리잡았다. 장보고는 신라 왕실과 귀족들의 장신구에 활용되는 비취모(물총새) 깃털, 대모 머리빗 등 온갖 진귀한 물품들을 수도 서라벌을 비롯한 전국에 진상하며 자신의 명성과 입지를 드높였다.
이 무렵 장보고의 명성은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해외 기록에도 그의 이름과 평가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중국에서 발간된 <번천문집>에 따르면 "장보고는 동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다. 인의지심이 충만하고 명견이 있으니, 그는 의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장보고가 단순히 이익만 쫓은 것이 아니라 의리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중일 삼국에서 두루 지지를 받으며 국제적인 네트워크망을 형성할 수 있었던 증거다.
장보고의 인생을 바꾼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