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7일 정기총회에 보고된 '부산국제영화제 비전2040 특별위원회' 보고서 내용 일부. 해당 문건엔 부산국제영화제가 조직개편을 주요 과제 중 하나로 두고 있고, 중장기 실천 계획으로 집행위원장 권한을 프로그램 전담인 집행위원장과 조직운영 전담인 운영위원장으로 이원화한다는 내용이 있다. 일각에서 운영위원장 직을 갑자기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부산국제영화제
- 최초로 위원장직 제안받았을 당시 상황과 이후 과정 설명을 더 자세히 부탁한다. 허문영 위원장의 사임이 이사장 독단 때문이라는 추측도 나온 상황이다.
"작년 부산영화제 개막 열흘 전에 이용관 이사장을 만났다. 운영위원장 제안을 받고 선뜻 하겠다고 하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조직 운영과 관리 역할이라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겠다는 판단이 섰다. 다만 그 직을 수락하면서 내건 조건이 있다. 내부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특히 허문영 위원장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말엔 영화제 내부평가 등으로 한창 바쁠 테니 해를 넘겨 2023년 1월부터 논의하자고 했다.
이후 이용관 이사장과 허문영 위원장이 언제 몇 번이나 만났는지 난 잘 모르지만, 1월경 체제 변화에 허문영 위원장도 동의한다는 얘길 들었다. 그땐 제가 운영위원장을 한다고 말은 안 했다더라. 2월 총회 직전에 매듭을 짓고 진행한다는 걸로 알고 있었다. 이사장이 베를린영화제 출장 직전 총회 안건으로 얘길 꺼냈다는데 허문영 위원장이 처음 듣는 얘기라며 미루자고 했다고 들었다. 이사장이 동의해놓고 딴소리한다며 역정을 내니, 그건 사담이었으니 공식 테이블에서 논의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더라.
그래서 총회를 나중에 다시 잡아 처리하자고 됐다. 베를린영화제로 가기 이틀 전 오석근 부산영화제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 위원장과 강승아 부산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이 서울에 가서 허문영 위원장을 만났고, 그때 내 이름을 처음으로 언급했다고 한다. 허 위원장은 이원화 체제는 동의하는데 내 이름을 듣고 고민이 좀 필요하다고 답한 걸로 안다. 이후 3월부터 이용관-허문영, 오석근-허문영 이런 식으로 여러 번 만났다고 알고 있다. 이후 4월 경 최종 동의한다고 해서 총회를 잡기로 했다. 본래 4월에 하기로 했는데 부산시에서 추경 예산을 편성한다고 해 그 예산안까지 처리하기 위해 5월 9일로 총회를 잡아 결정하게 된 것이다."
- 이 정도면 나름 논의가 있었다고 보이는데, 운영위원장 위촉 후에도 허문영 집행위원장의 이상 징후를 느끼지 못했나.
"(같은 <씨네21> 출신이라) 허문영 위원장을 전부터 알아왔기에 출근 전 의논하고 싶었다. 총회 5일 전인 5월 4일 2시경에 통화했다. 나를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제 스스로는 동의가 됐으니 총회에 가서 인사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이용관 이사장에게도 물었다. 왜 날 운영위원장으로 추천했냐고. 그때 이사장은 제가 허문영 위원장과 일도 해봤고, 영화제 일도 잘 아니까 이사장과 집행위원장 사이에서 필요한 일을 중재하거나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본다고 답했다. 저 또한 두 사람 사이에서 완충 역할도 하고 필요하다면 조정 역할도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총회 다음날 바로 출근해서 따로 허 위원장을 만났다.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제가 일 얘기는 언제 조율할지 물으니 서울에 다녀올 일이 있으니 차주에 얘기하자더라. 그리고 헤어졌는데 다음날 오후 1시경 사직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심신이 고갈돼 그만둔다는 게 공식 멘트였는데, 제게 따로 보낸 문제에선 결제라인에서 앞으로 자기는 빼고 처리하면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날 비토한다는 건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는 허 위원장과 공식적으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아무도 그가 왜 사임했는지를 몰랐다. 일부 언론에 버틸 만큼 버텼다는 말씀을 하셨고, 당시 기사에 조종국 위촉과 사임은 관련이 없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렇구나 생각했지."
"허 위원장이 반대했다면 사퇴했을 것"
- 그 말대로라면 일련의 논란이 진행되는 데에 책임자들의 명확한 의사 표명이나 해명이 없었다는 게 주된 원인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개인적으론 허 위원장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공적인 일을 이렇게 처리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이사회, 총회를 거치면서 본인이 동의 못 하거나 반대한다면 발언했어야 했다. 심지어 어쩔 수 없이 이원화 체제를 동의해야 했더라도 총회에서 반대한다는 기록을 남겨달라, 혹은 표결로 하자고 했어야지. 회의록을 보면 허 위원장의 멘트가 적혀 있다. 이사들이 두 번이나 이의 없는지 물었고, 허 위원장은 '취지 그대로 이해하면 되고 행간에 다른 건 없다'고 답했다. 여러 자리를 통해 허 위원장은 최소한 다섯 번은 반대 의사를 밝힐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개인 대 개인 관계가 아니고 공적 자리를 두고 일하는 관계인 만큼 사임하려 했다면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가 어떤 이유도 안 내고 잠적한 게 이 논란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그가 아무 말씀 안 하니 언젠가부터 조종국 위촉이 문제의 시발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지. 내가 운영위원장을 시켜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영화제의 제안이 와서 고민하다가 몇달 간 토론하고 절차를 걸쳐 맡게 된 건데. 차라리 제가 결격 사유가 있다거나 어떤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 소명이라도 할 텐데, 운영위원장으로 뽑힌 것 자체가 문제라고 하니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허 위원장이 반대했다면 난 사퇴했을 것이다. 당사자가 아무 얘기 없는데 자꾸 제가 사퇴해야 한다고 하니 난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위촉이라는 건 일을 맡은 걸 뜻하는데 이유도 불분명한 논란이 있다고 못 하겠다고 하는 건 공적 일을 맡은 사람의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여성영화인모임 등 일부 영화인 단체가 허문영 복귀를 촉구하면서 동시에 조종국이 물러나야 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왜 일부 영화인들이 반대 목소리를 낸다고 생각하는지.
"일련의 사태에 이용관 이사장이 책임지고 사퇴하겠다고 했잖나. 본래 올해 영화제가 끝나고 거취 표명하려던 걸 당겨서 공식적으로 얘기한 것이다. 올해 총회 자료집을 보면 공식 안건에 차기 이사장 추천위원회를 구성해달라는 내용이 있다. 이미 이사장은 물러날 의사가 분명하다는 것이기에 일각에서 영화제 사유화라고 비판하는 건 맞지 않다. 그러다가 갑자기 화살이 제게 돌려진 셈이다. 그래서 그 후 나온 얘기가 자격 문제였다. 부산 독립영화협회, 영화평론가협회애서 제가 어떤 문제가 있다고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제가 부산영상위 사무처장 때 직원들이 불편해했다 혹은 영진위 사무국장일 때 직원들과 소통이 불편했다는 걸로 지적했다.
제가 영진위 일을 3년 하면서 영화계 현안을 협의하거나 대처할 때 단호한 태도를 보였는데 그걸로 불편해하고 문제제기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런 일로 제가 영화계와 마찰이 잦았다는 기사도 있던데 그게 영화제 운영위원장으로 결격 사유라는 건 수긍하기 어렵다. 원칙을 중시하는 것이자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인데 차라리 제가 영상위에 있을 때나 영진위에 있을 때 법령을 위반하거나 부정을 저지르는 등 결격 사유가 있다고 확인하면 이해가 가겠다."
- 지난 12일 남동철 수석 프로그래머가 집행위원장 대행 권한을 분명히 해달라며 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왜 이런 요구가 나왔다고 보며,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이사회에서 올해 영화제는 수석 프로그래머 대행체제로 가자고 권고했다. 근데 그 전에 5월 9일 총회에서 운영위원장을 인정했잖나. 남동철 프로그래머의 역할은 집행위원회 운영 규정 6조에 근거한다. 즉, 허문영 집행위원장의 역할을 대행하는 건데 남 프로그래머는 운영위원장 역할까지 대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다. 그가 총회 얘길 꺼내는 건 이사회의 권고가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6조 3항을 보면 집행위원장 사고시 대행 가능한 자는 부집행위원장이다. 수석 프로그래머가 대행할 근거 조항이 없는 것이다.
제 생각엔 운영 규정 6조 3항을 일부 개정하면 된다. 집행위원장 사고시에 수석 프로그래머가 대응할 수 있고, 운영위원장 사고시 부집행위원장이 대응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근데 남 프로그래머는 총회에서 정관을 개정해 대행으로 임명해달라는 것이다. 남동철을 위원장 대행으로 임명하는 것과 수석 프로그래머로서 대행하게 하는 건 큰 차이가 있기에 아예 정관을 개정해달라는 셈인데, 반대로 전 그렇기에 더욱 운영위원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관 개정은 회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고 문체부 승인까지 받아야 한다. 그 과정에만 최소 2개월이 걸린다. 규정 개정은 절반의 동의만 있으면 된다. 전자로 가자고 하는 건 올해 영화제를 정상적으로 치룰 수 없게 하는 것과 같다."
- 일부 영화수입 배급사에서도 올해 부산영화제에 작품을 내지 않을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여기엔 어떤 입장인가.
"영화제의 특정인을 거론하며 작품을 주겠다 혹은 안주겠다 하는 건 그 자체로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해치는 일이다. 운영위원장 체제 도입이 문제라고 생각하거나 제게 결격 사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걸 비판하고 문제 삼으면 되는데 작품을 연결시켜 준다 안 준다고 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이런 영화사 움직임을 거론하며 남동철 등 내부 인원이 대외적으로 제 사퇴를 천명하는 건 수용할 수 없다."
"영화제 혁신 첫 번째 과업은 후임 이사장 선정"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부산영화제 제공
- 상황이 상황이라 이제야 질문한다. 쇄신 혹은 혁신안으로 자리하게 된 운영위원장으로 어떤 청사진이 있는가.
"2년 뒤가 영화제 30주년이다. 혁신위원회 주도로 영화제를 재편하는 걸로 합의된 이상 거기서 잘 토론하고 의논하면 된다. 근데 그 논의를 하려면 조종국을 먼저 퇴진시키라고 하니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제가 퇴진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못 물러날 이유가 없다. 근데 그것이야말로 문제를 원점으로 돌려놓는 아무 의미 없는 결과를 낳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의 사퇴는 5월 9일 이원화 체제를 결정한 총회 결정을 되돌리고, 2018년 수립한 비전 2040 계획을 폐기하는 것이다. 과거 집행위원장 1인 독점 체제로 돌아가자는 건데 그게 바로 퇴행 아닐까.
제가 생각하고 있는 영화제 혁신 첫 번째 과업은 후임 이사장 선정이다. 이사회 구성과 운영도 비판을 많이 받았으니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사무국의 업무환경을 개선하고 싶다. 근로조건과 직원들 환경 개선도 있겠지만 계약 문제나 회계 시스템을 고도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부산영화제는 단기 스태프와 자원봉사자 중심으로 운용해왔는데 열정 페이 논란도 있었고, 규모가 커지면서 그런 운용은 한계가 있다. 인력 운용 안정화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프로그래머의 체질 개선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영화 선정 업무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고, 거기에 대한 상벌 기준도 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규정에선 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전권을 보장했고, 정년 제한도 두지 않고 있다. 영화제 초창기야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이젠 100억 원이 넘는 예산에 상근직원도 30명이 넘는다. 개인의 역량 중심에서 이젠 함께 공조하고 협업해야 하는 구조가 됐는데 예전처럼 몇 사람이 진두지휘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 끝으로 영화제와 영화계에 바라는 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부 언론이 그런 기사를 썼더라. 부산영화제가 이원화를 택하면서 사무국을 쇄신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엉뚱한 논란으로 그게 무마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일견 타당하다고 본다. 이용관 이사장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이사장도 허문영의 역할을 조정해 프로그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실무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거였다. 프로그램에 독립성과 자율성을 주면서 사무국 관련 일은 운영위원장 체제로 밀도 있게 진행해 영화제 예산 규모에 맞게 쇄신해보자는 거였다. 근데 이걸 해보지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은 문제로 확산시키고 왜곡하면서 본래 논의하거나 검토돼야 할 것들이 기회조차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몇몇 영화 단체가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성명서를 냈는데 문제가 있다. 그 어떤 영화 단체도 제게 사실을 확인하려 연락하지 않았다. 그간 경과를 확인하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규명해서 책임을 묻고 영화제를 잘 준비할 수 있게 수습하도록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지금에선 불필요한 논란이나 문제 제기를 계속할 게 아니라 앞으로 출범할 혁신위를 점검하고 잘 확인해서 쇄신방안이 잘 나올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영화제 사무국 인원들 목소리가 잘 담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가 출근한 직후 대부분의 직원을 만나 면담해보니 그런 소통에 대한 갈망이 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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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