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은 장편 감독 데뷔 전 <모텔 선인장>의 각본과 조연출, <유령>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투자사의 지원을 받아 만들게 된 첫 장편영화가 2000년 2월에 개봉했던 <플란다스의 개>였다. 봉준호 감독 정도 되는 거장도 장편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선배감독 밑에서 스태프로 활동하며 준비과정을 거쳤다는 뜻이다.

거대자본이 들어가는 상업영화의 경우 소수인원과 소액으로는 한 편을 완성하기 쉽지 않다. 작년 <헤어질 결심>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던 박찬욱 감독 역시 "내 색깔을 보여주면서 투자자가 손해보지 않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할 정도로 상업영화와 자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하지만 지난 1991년 텍사스의 오스틴대학에 다니던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은 7000달러(약930만 원)로 장편영화 한 편을 만들어 무려 제작비의 290배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렸다. 그렇게 엄청난 이윤을 남긴 로드리게스 감독에게 많은 투자자가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 그리고 로드리게스 감독은 1995년 데뷔작보다 무려 1000배나 많은 7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멕시코 3부작 중 두 번째 영화 <데스페라도>를 선보였다.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데스페라도>를 통해 할리우드에서 '터프가이의 대명사'로 급부상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데스페라도>를 통해 할리우드에서 '터프가이의 대명사'로 급부상했다.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주)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받은 영원한 터프가이

스페인에서 나고 자란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1980년대부터 스페인 국립연극단에서 활동하다가 1992년 영화 <맘보 킹>에 출연하면서 미국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 <필라델피아>에서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톰 행크스와 동성애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뱀파이어 아르망을 연기했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역시 초창기 반데라스의 필모그라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

반데라스는 1995년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액션배우의 이미지를 굳혔다. 한 편은 근육질 스타 실베스타 스텔론과 출연했던 <어쌔신>이었고 다른 한 편이 바로 로드리게스 감독이 연출한 <데스페라도>였다. 반데라스가 낡은 기타 케이스에 각종 화기를 넣고 다니는 떠돌이 악사 마리아치를 연기한 <데스페라도>는 7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25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어쌔신>과 <데스페라도>를 통해 터프가이 이미지를 얻은 반데라스는 <마스크 오브 조로>와 < 13번째 전사 > 같은 액션 영화에 출연했고 마돈나와 연기호흡을 맞춘 <에비타>에서는 체 게바라를 연기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가족영화 <스파이 키드> 시리즈에도 출연한 반데라스는 2001년 당시 떠오르는 신예스타 안젤리나 졸리와 함께 한 <오리지널 씬>을 통해 파격적인 멜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터프가이 반데라스의 빼놓을 수 없는 의외의 대표작 중 하나는 바로 장화 신은 고양이의 목소리를 연기했던 <슈렉>시리즈다. 장화 신은 고양이는 귀여운 모습과 반데라스의 중저음 목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주인공 슈렉을 능가하는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2011년과 작년에는 장화 신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영화가 제작돼 두 편 합쳐 10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반데라스는 액션과 멜로, 가족영화, 애니메이션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워낙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로 이 때문에 연기력은 과소평가된 부분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반데라스는 지난 2019년 <페인 앤 글로리>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연기력도 출중한 배우다. 어느덧 환갑을 지나 중후한 매력을 뽐내고 있는 반데라스는 오는 6월 개봉 예정인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에 출연할 예정이다.

로드리게스 감독의 멕시코 3부작 중 2편
 
 '터프가이' 안토니오 반데라스(오른쪽)는 등 뒤에서 수류탄이 터져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터프가이' 안토니오 반데라스(오른쪽)는 등 뒤에서 수류탄이 터져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주)

 
영화 <데스페라도>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바로 로드리게스 감독이 대학 시절 단돈(?) 7000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200만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한 독립영화 <엘 마리아치>다.

실제로 로드리게스 감독은 <엘 마리아치>를 시작으로 <데스페라도>, 그리고 2003년에 개봉한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멕시코>로 이어지는 '멕시코 액션 3부작'을 연출한 바 있다.

로드리게스 감독은 7천 달러로 데뷔작을 만든 감독답게 제작비를 많이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조지 클루니의 출세작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제작비가 1900만 달러였고 반데라스와 조니 뎁, 셀마 헤이엑이 출연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의 제작비도 25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렇게 저예산 영화를 주로 만들던 로드리게스는 지난 2019년 감독 데뷔 후 처음으로 1억7000만 달러의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알리타:배틀 엔젤>을 연출했다.

사실 <데스페라도>는 부초(호아 킴 데 알메이다 분)의 패거리에 의해 사랑하는 여자와 한쪽 손을 잃게 된 마리아치(안토니오 반데라스 분)가 부초에게 복수한다는 단순한 내용의 액션영화다. 로드리게스 감독은 '절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달리 드라마나 이야기 구조보다는 호쾌한 액션연출에 집중하는 감독이다. 따라서 <데스페라도> 역시 영화의 숨은 의미를 찾기 보다는 영화가 주는 원초적인 쾌감을 즐긴다면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데뷔작 <엘 마리아치>에 비해 제작비 1000배가 올라가면서 가장 달라진 부분은 역시 주인공 안토니오 반데라스 캐스팅이었다. 당시 반데라스는 <필라델피아>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할리우드의 새로운 섹시스타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데스페라도>는 반데라스의 첫 단독 주연영화였다. 반데라스는 <데스페라도>에서 화려한 액션과 터프한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한 동안 할리우드 최고의 터프가이로 군림했다.

멕시코 출신 미녀배우 헤이엑의 첫 주연작
 
 <데스페라도>로 주연데뷔한 헤이엑은 지난 2021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다.

<데스페라도>로 주연데뷔한 헤이엑은 지난 2021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다.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주)

 
<데스페라도>에서는 사람이 찾지 않는 한적한 서점을 운영하는 묘령의 여인 캐롤리나가 총상을 입은 마리아치를 구해준다. 사실 캐롤리나는 그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지역의 지배자인 부초에게 신세(?)를 지며 살고 있다. 캐롤리나는 부초에게 돈을 받고 서점을 마약거래현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마리아치가 부초를 죽이면서 복수에 성공하게 되고 자유의 몸이 된 캐롤리나는 마리아치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데스페라도>에서 캐롤리나를 연기한 배우는 멕시코 출신 셀마 헤이엑이었다. <데스페라도>에 출연할 당시만 해도 주연 출연작이 없는 신예였던 헤이엑은 <데스페라도> 이후 1996년 <황혼에서 새벽까지>,<2003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 등 로드리게스 감독의 영화를 통해 인지도를 높였다. 2021년에 개봉한 마블 영화 <이터널스>에서는 치유능력과 이터널들의 의식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리더 에이잭 역을 맡기도 했다.

로드리게스 감독의 절친이자 로드리게스 감독이 <데스페라도>를 만들기 1년 전, <펄프 픽션>으로 아카데미 각본상과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타란티노 감독도 픽업 가이 역할로 <데스페라도>에 출연했다. 로드리게스 감독 만큼이나 재주가 많은 걸로 유명한 타란티노 감독은 로드리게스 감독의 차기작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도 무법자 리차드 역으로 출연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현재 준비하고 있는 신작을 끝으로 감독 은퇴를 선언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데스페라도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 안토니오 반데라스 셀마 헤이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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