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룸의 하이에나> 포스터 이미지

영화 <살룸의 하이에나> 포스터 이미지 ⓒ 씨네라인월드(주)

 
전 세계 방방곳곳의 영화들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안방에서 넷플릭스로 만날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20세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풍요로운 선택권을 누리는 가운데에도 정작 실제로 우리가 접하는 영화의 절대다수가 지극히 좁은 범위에 머물러 있다. 여전히 관람 영화의 절대적 비중은 소위 1세계 영화들 몫이다. 웬만큼 3세계 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 빤한 범위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믿겨지지 않는다면 자신이 근래 봤던 영화들을 떠올리고 정리해보자. 한국어와 영어(여기에 추가한다면 일본어까지)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 외에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 게 분명하다.
 
스스로 평소에 영화 좀 찾아보는 편이 아니라면 21세기 동아시아의 반도국가에서 평균적인 영화 애호가들이 얼마나 비좁은 선택지를 갖고 있는지 아마 놀라게 될 테다. 한-미-일 3국에 편중된 목록에 중국어나 불어 등 몇몇 유럽지역 영화를 추가한다면 독립예술영화관객층으로 분류되는 경우라도 해당 범 외의 언어와 세계의 이면을 다룬 영화를 볼 기회는 지극히 희소하다. 영화라는 대중예술이 적도에서 극지방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골고루 만들어지는 걸 고려한다면 우리의 영화 선택지는 무서울 정도로 한국사회의 세계관과 닮은꼴인 셈이다. 동남아시아 영화, 인도 아대륙 영화, 남미 영화, 중동 영화, 아프리카 영화를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것은 곧 그 지역에 대해 관심도 견문도 일천하다는 결론과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영화는 바로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왔다. <살룸의 하이에나>는 프랑스 자본으로 제작되었긴 하지만 영화의 배경과 설정은 서아프리카의 실정을 우회하고는 성립되지 않는다. 심지어 등장인물이 툭하고 내뱉는 대사 한마디조차 현지의 역사와 상황을 잘 모른다면 해석하기 요원할 지경이다. 그런 특이점이 장르 영화적인 구성요소와 어우러진 덕분에 그야말로 기묘한 '혼종'을 탄생시킨다. 물론 이 영화는 차마 '걸작'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엔 여러모로 단점도 적지 않다. 낯선 요소들의 조합이 때로는 조잡하고 간혹 언밸런스한 느낌을 자아내는 순간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저예산의 한계를 애써 극복하려한 시도들, 그리고 만만찮은 무게감을 녹여낸 소재와 배경 덕분에 발휘되는 몰입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전설의 용병들이 살룸에 불시착해 겪는 불가사의한 여정
 
 <살룸의 하이에나> 스틸

<살룸의 하이에나> 스틸 ⓒ 씨네라인월드(주)

 
영화의 첫 시작은 2003년, 군부 쿠데타로 혼란의 극으로 치닫던 서아프리카의 소국, 기니비사우의 수도 비사우다. 내전의 희생자인 시체들이 가득한 거리에 3명의 용병이 나타난다. '방기의 하이에나'로 불리는 전설적인 용병 그룹이다. 그들은 주변 참상에도 전혀 동요되지 않고 아주 익숙한 상황이라는 듯 행동한다. 온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 이들은 멕시코 마약상의 숙소를 급습해 마약과 금괴를 챙기고 브로커를 인질삼아 경비행기에 오른다. 그들의 뒤를 쫓던 무장 세력을 유유히 따돌리고 장물을 처분할 겸 옆 나라 세네갈로 날아오른다. 일확천금에 들뜬 일행이지만 추격자들의 눈먼 총알에 맞았는지 비행기 연료가 새는 바람에 그들은 동료인 샤카의 제안에 따라 그의 고향인 살룸에 불시착한다.
 
살룸은 세네갈과 기니비사우 국경에 인접한 황량한 삼각주 지대다. 사막과 석호가 어지럽게 어우러진 오지대엔 인적이라곤 통 찾아볼 수 없지만 베테랑 용병인 이들은 비행기와 귀중품을 솜씨 좋게 은닉한 뒤 구멍이 난 탱크를 수선하고 연료를 구하기 위해 이동한다. 하지만 석연찮은 장면이 목격된다. 연료탱크에 난 구멍은 총알이 아니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흠집을 낸 흔적이 역력하다. 셋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도 일단 공동의 목적을 위해 '방기의 하이에나'들과 마약 브로커 펠릭스는 외딴 곳에 떨어진 오마르의 숙소에 도착한다. 방문객을 환대하지만 황무지 한복판에 누가 찾아올 것 같지도 않은데 번듯한 숙소를 운영하는 것도 이상한데다 그곳을 찾아오는 이들 역시 하나같이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게 숙소에는 총 10명의 인원이 모이게 된다. 이들은 각각 '방기의 하이에나'('샤카'-'라파'-'미뉘')와 그들의 인질인 '펠릭스', 농인 여성이지만 '하이에나'들에 대해 훤히 꿰고 있는 '아와', 숙소의 주인인 '오마르'와 그의 심복 '살라만', 인근 경찰서 간부인 '술레이만', 그리고 가장 평범해 보이는 예술가 커플들이다. 석연찮은 일들이 연달아 생기고, 그들은 이제 합종연횡하며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복잡한 경우의 수 싸움에 돌입한 가운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질 참이다. 이들은 겉보기엔 화목한 공동 식사 자리에서도 날이 선 공방을 벌이거나, 일부는 알고 일부는 모르는 수어로 비밀 대화를 진행한다.
 
점점 거액의 재물 앞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하이에나'들 사이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숙소의 주인 오마르 역시 수수께끼로 가득한 존재다. 그는 숙소에서 묵는 이들에게 별도의 사례를 받지 않는다. 그 대신에 자신이 정한 룰에 따라 임무를 부과하고 이를 이행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가 부여하는 미션은 다양하다. 숙소를 정돈하는 간단한 일도 있지만 평범한 숙박업소 투숙객들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임무가 더 많다. 2명씩 짝을 지워 인근 마을에 구호품을 전달하거나 맹그로브 식목 작업에 투입되는 식이다. 심지어 불법 어로를 무력으로 규제하는 데에도 투입된다. 총기를 휴대하는 걸 당연시하는데다 사실상 이 지역 자체가 오마르의 통제 하에 놓인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살룸이란 오지 전체가 종잡을 수 없는 것투성이다.
 
식민주의의 망령이 떠나지 않는 아프리카의 현주소
 
 영화 <살룸의 하이에나> 스틸 이미지

영화 <살룸의 하이에나> 스틸 이미지 ⓒ 씨네라인월드(주)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도입부에서부터 생소한 나라 이름과 복선 가득한 대사들을 한가득 펼쳐놓기 시작한다. 우리에겐 낯선 아프리카 국가와 부족들의 명칭들이 줄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언급된다. 게다가 서구열강의 식민지 강점시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역사적 맥락을 이해해야 해석 가능한 개념과 용어들이 말 그대로 쏟아지다시피 한다. 그런 당혹스런 풍경은 마치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 불리는 현대영화의 거장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피칠갑 액션 장면 못지않게 현란하게 구사해내는 '말'과 '말', '언어'와 '언어'의 각축을 연상시킨다. 아마 아프리카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잘 알지 못하는 평범한 한국 관객에겐 분명 한국어 번역이되 한국어로 들리지 않는 지경으로 생경한 순간일 지경이다.
 
우선 주인공들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지만 어디에 붙은 지 도무지 감이 잘 오지 않는 국가명부터 당황스럽다. 기니비사우, 세네갈, 감비아, 기니, 가나, 모잠비크, 부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 라이베리아... 여기에 추가적으로 더욱 생경한 부족명과 지명들이 더해진다. 구글 검색을 열심히 해서 아프리카 지도를 꼼꼼하게 찾아봐야할 판이다. 그래도 쉽게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국가와 종족과 언어가 뒤엉켜서 혼돈의 극치를 이룬다. 우리들의 눈에는 전부 비슷해 보여 분간이 무의미한데 영화 속 등장인물들 사이에선 척척 다 구분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인접한 국가들과 이웃 종족들에 대한 농담과 비하가 술술 쏟아진다. 서로 붙은 나라들끼리는 확실히 안 친하구나 하는 동질감과 함께 그런데 대체 뭣 때문에 서로 비아냥거리고 폄하하며 말잔치를 벌이는지 끼어들 수 없어 답답해진다. 하지만 뭘 알아야 맞장구를 치지 싶은 관객의 심정일 테다.
 
그렇게 점점 고조되는 긴장과 불안 가운데 황량한 습지대와 사막의 경계에 자리한 숙소에서 한 밥상에 앉은 이들은 권투시합에서 잽 펀치를 날리듯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져 상대의 정체와 의도를 탐색한다. 그런 가운데 아프리카의 자립과 외세 배격을 꿈꾸다 서구 열강의 배후공작으로 비운의 최후를 맞은 부르키나파소 혁명가 토마스 상카라의 이름이 등장한다.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라 할 만한 그 이름이 언급되면서 반대급부로 영웅의 무너진 꿈에 대비되는 현실 아프리카의 도탄이 더욱 짙게 암운을 드리운다.
 
간략하게 풍경처럼 스쳐지나가긴 하지만, 오마르가 관장하는 (사실상 지배하는) 살룸 변경에서 투숙객들이 조를 짜서 목격하는 곳곳의 상황은 꽤나 시사적이다. 모래바람이 불어대는 황량한 반사막에서 빈곤과 재난에 노출된 현지 주민을 위한 구호사업은 생존이 걸린 문제다. 투숙객은 턱없이 부족한 구호물자를 지극히 제한적이고 통제된 방식으로 제공한다. 구호품 유통이 곧 생사여탈권을 쥘 수 있는 권력임을 영화는 강하게 암시한다. 그리고 어족자원 보호를 명목으로 불법어로를 사적으로 단속하러 나간 전직 군인들은 식민지 시절과 근본적으로 그리 변하지 않은 서구의 자원 독점을 언급한다. 지역 고유 어종을 남획하는 이들은 백인 어부들이다. 풍자의 의미가 깃든 찰나인 셈이다. 대부분 한정된 공간과 배경에서 소수 인원만으로 소화하는 대화와 장면이지만 각각의 인물들이 특정한 대표성을 갖고 상징적인 캐릭터를 소화하기 때문에 캐릭터 역할이 이해될수록 더 많은 게 보이게 되는 전개다.
 
사회의 미래를 파괴하는 소년병 잔혹사가 펼쳐지다
 
"살룸의 하이에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살룸의 하이에나"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씨네라인월드(주)

 
전반부의 시사적인 만담들은 자연스럽게 아프리카 내전에서 유독 심각하게 등장하는 소년병 문제에 도달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족쇄를 차고 권총을 든 채 해변을 방황하는 소년의 뒷모습이 자꾸만 반복된다. 소년병 문제는 영화에서 결정적인 후반부 복선으로 작용한다. 온갖 정의로운 포장과 구호를 다 갖다 붙이지만 결국 이권을 노린 군벌에 불과할 뿐인 무장 세력들은 외세와 결탁하거나 이권 연합을 이뤄 여전히 아프리카 각국을 넘어 대륙 전체에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중이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나 멸종위기동물 밀반출과 밀렵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만행은 1세계의 무관심과 방관 속에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식민지 이후 정상적인 시민사회를 구성하는데 실패한 이들 지역에서는 정규 병력과 지지 세력을 양성하기보단 당장 머릿수 채우기에 급급해 갓 10대가 된 소년소녀들을 총알받이로 삼는데 거리낌이 없는 지경이다. (영화 속 주요 캐릭터가 소년병의 전형적인 코스를 거쳤다)
 
그나마 대의명분이나 이념을 내세우는 시늉이라도 하는 타 대륙의 무장반군들에 비해 이들 군벌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어떤 미래 비전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단기적인 이득을 위해서 대륙에 넘쳐나는 인명을 소모할 뿐 아니라 학살과 만행을 효과적인 전술로 구사할 정도로 타락한지 오래다. 십대에 소년병으로 끌려간 이들은 다시는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런 끔찍한 기억은 은밀하게 감춰져 왔지만 오랜 세월 기획한 복수를 위해 살룸에 모인 과거의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는 복수극이 펼쳐지는 귀결이다. 하지만 정당한 복수과정에서 고려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후반부 공포물로의 반전을 통해 영화는 개인의 통쾌한 복수로 이 모든 게 종결될 수 없음을 설파한다.
 
흥미롭게도 중반 이후 공포 장르로 전환되는 일련의 과정은 정치사회적 리얼리즘을 초자연적 주술과 저주로 변환시킨다. 서구인들이 침략과 착취를 일삼기 이전부터 강대한 제국을 이루고 인접 부족과 왕국들 사이에 치열한 세력 다툼이 있었던 역사를 상기시키는 해묵은 전설과 무속의 기억부터 출발해 현실에 거듭된 내전과 쿠데타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살육과 원념의 축적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교할 바 못 되는 허술한 특수효과에도 불구하고 제법 오싹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2019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해 화제가 된 세네갈 영화 <애틀랜틱스>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사회적 문제에 초자연적 상황전개가 결합되면서 리얼리티를 보완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현실과 저승의 경계에서 내전과 소년병의 기억이 불러온 초자연적인 현상은 복수극을 마친 주인공과 일행들을 습격하고, 살아남은 등장인물들은 이 저주를 피해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동원 가능한 자원의 한계로 그 저주의 이미지가 금방 식상해지는 게 무척 아쉽긴 하지만, 오히려 무표정하게 또 다른 나름대로의 복수를 행하는 엑스트라들의 무표정이 더 섬뜩하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어떻게 보면 가장 애꿎은 희생자라 할 이들은 그들 자신의 잘못보다는 그들의 선조들이 이 땅에 저지른 업보에 휘말려든 재수 없는 경우를 표상한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테다. 영화의 엔딩 장면 또한 말초적 공포감보다는 그 장면이 담은 함의를 상상할수록 더욱 오싹하게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접하지 못한 3세계 영화의 문법과 매력 속으로
 
 영화 <살룸의 하이에나> 스틸

영화 <살룸의 하이에나> 스틸 ⓒ 씨네라인월드(주)

 
<살룸의 하이에나>는 겉보기엔 스타일리시한 액션 느와르의 외피를 띤 채 출발해 후반부엔 B급 감성의 공포 장르로 돌변하지만 영화에 담긴 내용을 곱씹으면 할수록 결국 거대한 '역사의 복수' 형태를 따른다. 절대로 후련함과는 거리가 먼 결말은 복수의 허무함이라는 느와르 장르의 법칙 + 켜켜이 시체의 산을 이루고도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프리카의 암울한 근현대사 증명을 이중적으로 결합하고 상징화해낸다.
 
물론 이 영화는 아주 독창적이진 못하다. 영화가 표방한 '하드보일드 느와르'의 '레퍼런스' 작품들을 연상케 하는 익숙한 구성과 전개가 참신함을 금방 잠식해버리곤 한다. 게다가 세련된 공포영화에 익숙해진 국내 관객들에겐 실소를 피식 나게 할 만큼 '빈티' 나는 특수효과가 안타깝게 다가오는 순간이 적지 않다. 저주를 벗어나기 위해 소리를 차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헤드폰을 놓고 다투는 장면의 경우 <링> 시리즈 같은 세계적 지명도의 오컬트 공포영화 문법을 차용하는 식에 가깝고, 여러 선배 격 공포 장르에서 이미 사용된 기법과 장치가 적잖게 동원된다. 하지만 그 모든 단점을 덮어주는 강렬한 역사적 FACT의 충격력은 결코 간과할 수준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아프리카 대륙의 과거와 현재, 서구 열강이 부의 착취와 자만심 충족을 위해 죽죽 지도 위에 자를 대고 그어놓은 듯 일방적 국경 구획과 제국주의 종주국에 끼워 맞춘 경제사회 구조 덕분에 진정한 '자립'과는 여전히 요원한 현실 아프리카의 상황이 제법 온전히 함축된 영화다. 그래서 작품의 숨은 단면들에 주목하면 할수록 더 진하게 뇌리에 남게 되는 압도적 비극성이 제대로다. 1세계 영화들이 아무리 테크닉으로 재현하려 해도 불가능한 리얼리티를 감춰둔, 미지의 대륙에서 어렵게 도착한 영화다. 개봉과 동시에 IPTV에 풀려버린 운명의, 그저 묻히기 딱 좋은 작품이지만 누군가 이 영화를 발견하고 강렬한 체험과 충격에 휩싸일지도 모를 일이다.
 
<작품정보>
 
살룸의 하이에나 Saloum
2021|프랑스|액션/공포/드라마
2023. 4. 20. 개봉|84분|15세 관람가
감독 쟝 뤽 에르뷜로
출연 얀 가엘(샤카 역), 로저 살라(라파 역), 멘로르바(미뉘 역),
       에블린 일리 주헨(아와 역)
수입 및 배급 씨네라인월드(주)
 
2021 17회 판타스틱 페스트 감독상-넥스트웨이브
살룸의 하이에나 쟝 뤽 에르뷜로 감독 얀 가엘 로저 살라 멘로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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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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