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손자 전우원씨의 광주행이 전 국민적 관심을 얻었다. 무려 반 세기 가까이 이어진 사과 없는 국가폭력에 독재자의 핏줄인 그의 사과가 큰 의미를 던지기 때문이다. 마땅한 사과 없이, 심지어는 거듭된 지역비하와 음모론으로 상처를 덧나게 해온 이들에게 전우원씨의 방문과 사과가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지 궁금하다.

1980년 광주의 이야기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 사건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이가, 또 귀한 무엇을 잃은 이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이 한국사회에 남긴 상흔이 어떠한지를 살피고, 그로부터 더 나은 사회를 그려가기 위하여 지금을 사는 이들은 어제의 사건에 주목해야만 한다.

여기 그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다큐멘터리 한 편이 있다. 너무나 잘 만들어져 더 많은 이들에게 보라고 권하고픈, 그런 작품이다. 제1회 반짝다큐페스티발을 통해 관객과 만난, <관>이 바로 그 작품이다.
 
관 스틸컷

▲ 관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43년 전으로 관객을 이끄는 다큐멘터리

15분의 짧은 다큐멘터리는 보는 이를 단박에 43년 전 어느 날로 이끌어 간다. 1980년 5월의 광주, 도청 앞엔 시신이 쌓이고 부족한 관을 구하러 화순으로 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더운 날씨, 시체에 끓는 구더기며 파리가 더는 시신을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자각으로 이어진다. 여학생 박현숙은 친구들을 설득하여 시신을 닦겠다고 도청으로 향한다. 무섭지는 않느냐 친구들의 물음에 현숙이 답한다. 시신이 닦이지도 않은 채 놓여 썩는 것이 더욱 무섭다고 말이다. 그런 아이였다.
 
현숙이 차에 오른 건 그런 아이여서 였을 것이다. 광주에서 화순으로 향하는 미니버스엔 현숙 말고도 여러 명이 함께 탔다. 관을 구하러 나선 시민군과 현숙처럼 일손을 돕겠다던 이들이, 또 그저 화순에 갈 일이 있다던 이들까지 미니버스에 함께 올라탔다.
 
그날따라 바람이 솔찬히 불었고 열린 창문 틈으로 선선한 바람이 들어왔다. 날이 좋았고 사람들이 나들이 가듯 한마디씩 거들기도 했을 것이다. 영화가 복원한 그날의 이야기는 예정된 대참사로 끝나버린다.
 
관 스틸컷

▲ 관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관을 구하러 간 이들이 관 없이 묻혔다고
 
매복 중이던 공수부대가 미니버스에 집중 사격을 가하고 미니버스에 탄 이들은 모두 죽거나 죽기 직전이 되어 끌려 내려지는 것이다. 이들은 군인들에 의해 인근 어느 곳으로 옮겨져 암매장됐다고 전한다. 관을 구하러 갔던 이들이 관에 들지도 못한 채 묻힌 비극의 역사, 그러나 우리는 여적 그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데 실패하였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그저 지나간 역사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 지난 이야기, 주범인 전두환조차 처단하지 못한 끝나버린 사건이라고들 말이다. 이제는 당사자 또한 하나하나 떠나가고 남은 이들은 갈수록 줄어만 간다. 그러나 과연 그대로 좋은가.
 
류승진 감독은 <관>을 2020년 5월 광주에서 찍었다. 그는 5월의 광주는 그래도 다르다고 말한다. 온 도시가 작업을 함께 응원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그리하여 여전히 소모되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여 다루었다고 말이다. 그 결실이 미니버스에 올랐던,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여학생 박현숙의 이야기다.
 
"관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집에 대한 이야기로 끝맺는다. 관은 사자에게 곧 집이 되는 것이고, 우리는 또한 모두가 사자가 될 것이며, 그리하여 여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먼저 간 자들에게 마땅한 관을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설득하는 영화다.
 
관 스틸컷

▲ 관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우리가 1980년 광주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관>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구조는 간명하다. 일기처럼 파고드는 진실한 목소리가 마침내 1980년 5월 23일, 광주에서 화순으로 향하는 어느 길목에서 살해 당해 암매장 당했음을 밝히고, 그로부터 우리는 그토록 고운 마음씨의 소녀에게 관 하나조차 주지 못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녀의 이야기는 영화를 보는 이에게 1980년의 비극에서 우리가 여전히 벗어나지 못 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영화는 광주 어느 시장의 모습 또한 인상적으로 잡아낸다. 영화를 보는 이라면 혹시 박현숙이 살아 오늘의 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기대하게 할 정도로 실감이 난다. 그러나 그 장면은 이야기의 비극성을 더욱 짙게 하는 요소이며, 반대로 오늘의 광주가 가진 생명력을 선명히 내보이는 장치가 된다.
 
감독 류승진은 말한다. "5월의 광주에서 만났던 모든 순간이 광주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고 "연관이 없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때의 광주시민이라면 이런 느낌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상기하며 찍었다"고 말이다. 관에 담기지 못하고 묻힌 22명의 미니버스 탑승자들을 영화는 그렇게 재현하려고 한다. 그 삶과 생기를, 살아있음의 기운을 오늘의 광주로부터 찾아내려 한다.
 
<관>은 그 살아있음과 죽어있음의 역설적 대치로부터 죽은 자의 비극과 산 자의 책임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단 15분의 시간으로 광주의 1980년 5월의 이야기를 전하는 효과적 수단이 된다. 이런 영화는 어떻게든 더 많은 이들에게 닿아야만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 영화가 닿은 곳에서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나는 예술과 다큐멘터리를 믿는 그만큼 이 작품을 믿게 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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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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