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8강 일정을 시작했다. 15일에 열린 8강 첫 번째 경기에서는 A조 1위 쿠바가 B조2위 호주를 4-3으로 꺾고 4강에 선착했다. 16일에는 B조1위 일본이 A조 2위 이탈리아를 상대할 예정인데 일본은 8강에서 메이저리그 MVP 출신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가 선발로 등판한다(LA 에인절스의 개막전에 등판해야 하는 오타니는 8강 이후엔 타자로만 출전할 예정이다).

하지만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랭킹 16위 이탈리아도 진출한 8강에 대한민국은 없다. 한 수 아래로 여기던 호주에게 덜미를 잡히고 일본에게 4-13으로 완패를 당한 한국은 일찌감치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이강철 감독(kt위즈)을 비롯한 선수들은 각자 소속팀으로 돌아갔고 한국야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에이스 김광현(SSG랜더스)과 중심타자 김현수(LG트윈스)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광현과 김현수가 대표팀을 떠나면서 야구팬들은 한국야구의 암흑기를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선발 투수나 외야수는 유망주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어 아쉬우나마 이들로 선배들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 하지만 포수자리를 지키는 양의지(두산 베어스)마저 대표팀에서 물러날 경우 미래를 위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 게 현재 한국야구의 냉정한 현실이다.
 
 이강철 감독(kt위즈)을 비롯한 선수들은 각자 소속팀으로 돌아갔고 한국야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에이스 김광현(SSG랜더스)과 중심타자 김현수(LG트윈스)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이강철 감독(kt위즈)을 비롯한 선수들은 각자 소속팀으로 돌아갔고 한국야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에이스 김광현(SSG랜더스)과 중심타자 김현수(LG트윈스)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 연합뉴스

 
대형 FA계약 따낸 2010년대 주전포수들

한국야구 안방마님의 자연스런 세대교체가 이뤄진 것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 주전포수였던 진갑용(KIA타이거즈 수석코치)의 백업으로 선발된 강민호가 일본과의 준결승과 쿠바와의 결승에서 좋은 활약을 하면서 안방의 세대교체를 선언했다. 그리고 '레전드' 박경완(LG 배터리코치)이 마지막 국제대회를 치른 2010년 KBO리그에는 양의지라는 걸출한 포수가 등장했다.

양의지를 시작으로 한국야구에는 비슷한 또래의 포수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SK와이번스(현 SSG)가 '천하의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을 포기하고 지명했던 포수 유망주 이재원은 박경완과 정상호의 백업으로 활약하다가 2010년대 중반부터 SK의 안방을 차지했다. LG에 입단했다가 신생구단 특별지명으로 NC다이노스 유니폼을 입은 김태군(삼성)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연속 NC의 주전포수로 활약했다. 

최경철(롯데 자이언츠 배터리코치)과 윤요섭(LG 2군 배터리코치), 현재윤 등 이적생들로 힘들게 포수진을 꾸려가던 LG는 2015년 유망주 유강남(LG)이 주전으로 도약해 8년 연속 주전 포수로 활약했다. 두산에서 양의지에 가려 백업을 전전했던 박세혁(NC)은 양의지 이적 후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최재훈(한화 이글스)과 장성우(kt)는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며 주전으로 도약한 케이스다. 물론 박동원(LG)처럼 소속팀에서 자수성가한 포수도 있다.

이처럼 비슷한 시대에 등장한 포수들은 2010년대 후반부터 대형 FA계약을 체결하며 포수 성공시대를 활짝 열었다. 2018 시즌이 끝나고 NC로 이적했다가 올 시즌을 앞두고 두산으로 복귀한 양의지는 두 번의 FA계약을 통해 무려 277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받게 됐다. 양의지의 입단동기인 이재원 역시 2018년 SK의 한국시리즈 우승포수로 활약하며 4년69억 원이라는 대형계약을 따냈다.

2022년 겨울엔 KBO리그에서 '포수 FA 연쇄이동'이 일어났다. 친정팀 두산과 계약기간 4+2년에 총액 152억 계약을 따낸 양의지를 시작으로 유강남이 4년80억 원에 롯데 유니폼을 입었고 박동원은 4년65억 원에 LG로 이적했다. 여기에 양의지의 이적으로 포수 자리에 구멍이 뚫린 NC에서 두산의 주전포수였던 박세혁을 4년 총액 46억 원에 영입하면서 FA포수 4명이 서로 유니폼을 갈아 입었다.

리그에 20대 주전포수가 보이지 않는다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본선 1라운드 한국과 호주의 경기. 5회초 1사 상황에서 솔로홈런을 친 호주 케넬리가 홈을 밟으며 한국 양의지 옆을 지나고 있다.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본선 1라운드 한국과 호주의 경기. 5회초 1사 상황에서 솔로홈런을 친 호주 케넬리가 홈을 밟으며 한국 양의지 옆을 지나고 있다. ⓒ 연합뉴스

 
과거에 비해 포수에 대한 대우가 몰라보게 좋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포수들의 몸값향상이 국제대회 경쟁력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2015년 프리미어12를 시작으로 주요 국제대회에서 주전마스크는 언제나 양의지의 몫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양의지는 10타수4안타(타율 4할) 2홈런5타점3득점으로 활약한 이번 WBC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제대회에서 본인의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문제는 한국야구에 양의지의 다음 세대를 이어갈 젊은 포수 자원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작년 시즌을 기준으로 10개 구단의 주전 포수 중에서 20대 선수는 롯데의 정보근 뿐이었다. 양의지와 유강남, 박동원, 김태군, 장성우 등이 모두 20대 시절부터 1군에서 주전포수로 활약했던 것을 고려하면 현재 '포수의 고령화'는 대단히 심각한 수준이다.

작년 시즌을 기준으로 1군에서 의미 있는 출전 기회를 얻었던 20대 포수는 롯데의 정보근과 KIA의 한승택, kt의 김준태, NC의 박대온 정도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중에서 작년 시즌 2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김준태(.273) 뿐이다. 그렇다고 김준태와 정보근을 포함해 작년 KBO리그에서 활약했던 20대 포수들 중에서 한국야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 안방마님 후보는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야구팬들은 작년 11월 트레이드를 통해 키움 히어로즈에서 KIA로 이적한 1차지명 출신 유망주 주효상이나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위지명을 받은 포수자원 김범석(LG)과 김동헌(키움)의 성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아직 프로무대에서 보여준 게 없는 이들이 각 소속팀에서 주전 자리를 차지하고 리그에서 돋보이는 성적을 올린 후 대표팀에 선발될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은 WBC를 끝으로 한국야구는 화려했던 한 세대가 저물었다. 이제 한국야구는 아픔을 뒤로 하고 또 다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상처입은 한국야구는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올해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내년 프리미어 12 등 국제대회는 꾸준히 열릴 예정이다. 현재 한국야구는 미래를 이끌 공수를 겸비한 대형포수 유망주가 어디선가 깜짝 등장해 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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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 제5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포수 양의지 차세대 안방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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