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에 개봉했던 이정재와 박정민 주연의 <사바하>와 같은 해 개봉해 9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조정석, 윤아 주연의 <엑시트>, 그리고 황정민이 '배우 황정민'으로 출연했던 2021년작 <인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부당거래>와 <베테랑>, <모가디슈> 등을 만든 류승완 감독과 그의 아내이자 영화제작자 강혜정이 설립한 영화사 외유내강에서 제작한 영화들이라는 점이다.  

'쌍천만 감독'이자 지난 겨울 신작 <영웅>을 선보였던 윤제균 감독도 감독과 제작자를 겸하고 있다. 윤제균 감독은 지난 2009년에 설립한 JK필름을 통해 자신이 연출한 영화들은 물론이고 <내 깡패 같은 애인>과 <댄싱퀸>,<희말라야>,<공조>시리즈, <그것만이 내 세상> 등 여러 영화의 제작과 각색 작업에 참여했다. 이 밖에도 장진 감독의 필름있수다, 박찬욱 감독의 모호필름 등도 유명 감독이 직접 설립에 참여한 영화사다.

이처럼 영화 감독들은 어느 정도 커리어가 쌓이면 영화사를 설립해 자신이 연출하지 못하는 작품들의 제작에 뛰어들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이준익 감독이 설립한 영화사 씨네월드 역시 90년대 후반부터 많은 외화들의 수입과 배급 등을 맡았는데 당시 많은 빚에 시달리던 이준익 감독의 부활(?)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작품이 있었다. 바로 지난 2001년에 개봉해 큰 사랑을 받았던 박신양과 정진영 주연의 <달마야 놀자>였다.
 
 이준익 감독이 제작한 <달마야 놀자>는 조폭 코미디의 범람 속에서도 서울에서만 12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준익 감독이 제작한 <달마야 놀자>는 조폭 코미디의 범람 속에서도 서울에서만 120만 관객을 동원했다. ⓒ (주)씨네월드

 
조폭코미디에 도전했던 '멜로왕자' 박신양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후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공부를 이어간 박신양은 대학동기인 양윤호 감독의 단편영화 <가변차선>을 통해 데뷔했다. 1996년에는 청년 수도승을 연기한 영화 <유리>를 통해 주연으로 데뷔했는데 이 작품 역시 양윤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였다(박신양은 1999년에도 양윤호 감독이 만든 멜로영화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출연했다). 박신양은 이후 <쁘아종>과 <모텔 선인장>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박신양을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작품은 1997년 고 최진실과 연기호흡을 맞췄던 '수도꼭지 멜로영화' <편지>였다. <편지>로 서울에서만 72만 관객을 모은 박신양은 정확히 1년 후 전도연과 함께 출연한 <약속>으로 또 한 번 서울 7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배우로 급부상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두 편의 멜로 영화로 '원톱' 한석규를 위협하는 스타배우가 된 박신양은 2001년 의외의 선택을 했다.

박신양은 2001년 <달마야 놀자>에서 절에 숨어 들어가는 조직폭력배 재규 역을 맡았고 <달마야 놀자>는 서울에서만 120만 관객을 동원하며 <조폭마누라>,<두사부일체>와 함께 2001년 '3대 조폭 코미디'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박신양은 2004년 <범죄의 재구성>에서 사기꾼으로 변신했지만 같은 해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전공인 멜로연기를 선보이며 50%대의 시청률을 견인했다.

박신양은 2007년 드라마 <쩐의 전쟁>에서 사채업자 금나라와 2008년 <바람의 화원>에서 천재화가 김홍도, 2011년 <싸인>에서 법의학자 윤지훈을 연기하면서 높은 시청률과 함께 명불허전의 연기를 선보였다. 2012년에는 5년 만에 출연한 영화 <박수건달>에서 <달마야 놀자> 이후 10여 년 만에 조직 폭력배 역을 맡아 전국 389만 관객을 동원하며 변함없는 흥행파워를 과시했다.

사실 박신양은 2016년과 2019년 두 시즌에 걸쳐 방송된 <동네 변호사 조들호>를 끝으로 공식적인 작품 활동이 뜸한 편이다(지난 2020년 신작영화 <사흘>의 촬영을 끝냈지만 3년 가까이 개봉이 미뤄지고 있다). 혹자는 박신양이 작품을 고르는 눈이 지나치게 깐깐하다고 비판하지만 신중하게 선택하는 만큼 박신양이 출연하는 작품은 완성도가 높은 경우가 많다. 공백이 길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박신양의 신작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절 생활을 통해 불교에 감화되는 조폭들
 
 적대적인 관계로 만난 조폭과 승려들은 함께 생활하면서 점점 가까워진다.

적대적인 관계로 만난 조폭과 승려들은 함께 생활하면서 점점 가까워진다. ⓒ (주)씨네월드

 
<달마야 놀자>는 상대 조직의 기습으로 큰 위기에 빠진 조직 폭력배 재규(박신양 분) 패거리가 안전하게 몸을 피하기 위해 절에 숨어 들어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흔히 종교적인 이야기를 코미디 장르로 풀어내면 해당 종교계에서는 반발이 나오기 마련인데 <달마야 놀자> 역시 개봉 당시엔 불교계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가 상영되면서 <달마야 놀자>에 대한 불교계의 반발은 크게 줄어들었다.

<달마야 놀자>는 마냥 종교를 가볍게 희화화해 웃음을 주거나 조직폭력배를 미화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대신 불교적인 주제와 교훈을 무겁지 않게 담아내면서 조직폭력배들이 종교에 감화하는 내용을 강하게 담아냈다. 실제로 스님들의 행동과 절에서의 절제된 생활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재규의 부하들은 스님들과의 무력 대결에서 패한 후 스님들이 짜준 시간표에 따라 승님들과 똑같은 생활을 한다.

재규 역의 박신양과 승려측 주인공인 청명스님 역의 정진영은 1998년 <약속>에서 이미 한 차례 연기호흡을 맞춘 바 있다. <약속>에서는 정진영이 연기한 엄기탁이 박신양이 연기한 공상두에게 은혜를 입고 살인 자수까지 대신 할 정도로 충성을 다하는 오른팔 역할이었다. 하지만 <달마야 놀자>에서는 청명스님이 재규의 잘못을 감싸주면서 재규를 인격적으로 성장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달마야 놀자>는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완전히 자리잡기 전인 2000년대 초반에 개봉했음에도 서울에서만 12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다. <달마야 놀자>는 본편을 통해 이야기가 완결됐음에도 2004년 속편 <달마야 서울 가자>가 제작됐다. 박신양을 비롯해 조직폭력배 역할의 배우들이 모두 이탈하고 신현준과 유해진이 새로 합류한 <달마야 서울가자>는 주요배우들의 이탈과 전작과의 부자연스러운 연결, 아쉬운 개연성 등 많은 비판 속에 전국 127만 관객으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반면에 <조폭마누라2>와 <투사부일체>는 각각 180만과 610만 관객을 동원했다).

최고 명장면 만들어낸 큰스님의 가르침
 
 고 김인문 배우(왼쪽)가 연기한 큰스님은 젊은 승려들과 조폭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고 열반에 든다.

고 김인문 배우(왼쪽)가 연기한 큰스님은 젊은 승려들과 조폭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고 열반에 든다. ⓒ (주)씨네월드

 
<투캅스>의 소매치기 역을 비롯해 여러 영화에서 조·단역으로 출연하던 강성진은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딴따라 역을 맡으며 주연 데뷔에 성공했다. 하지만 2000년 두 번째 주연작 <휴머니스트>가 흥행에 실패하며 <달마야 놀자>에서 다시 조연 캐릭터를 연기했다. 강성진이 연기한 날치는 재규 일당의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인물로 비구니 연화(임현경 분)와 러브라인을 보여주는 듯 하더니 결국 머리를 자르고 출가를 선택했다.

<달마야 놀자>가 불교계에서 큰 비판을 받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주지승 역의 고 김인문 배우가 이야기의 중심을 잘 잡아줬기 때문이다. 젊은 승려들이 강하게 반대했던 재규 일행을 절에 머물도록 허락한 큰스님은 "왜 말썽만 부리는 우리들을 매번 이렇게 감싸 주시느냐"는 재규의 질문에 "(너희들이 밑 빠진 항아리를 물 속에 던진 것처럼) 나도 밑 빠진 너희들을 그냥 내 마음 속에 던졌을 뿐이야"라는 명대사를 던진다.

이듬 해 <공공의 적>에서 산수 역으로 유명해지는 이문식은 <공공의 적>보다 두 달 먼저 개봉한 <달마야 놀자>에서 대봉스님 역을 맡았다. 이문식은 <달마야 놀자>에서 주로 식사를 짓는 공양주 승려를 연기했는데 해병대 출신임을 앞세운 불곰(박상면 분)과의 대결을 앞두고 기가 죽지만 알고 보니 불곰보다 기수가 높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상황이 역전된다. 물론 대봉스님과 불곰은 나중에 덕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달마야 놀자 박철관 감독 박신양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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