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예계 제왕 쟈니 기타가와의 미성년자 성 착취 의혹을 보도하는 영국 BBC 방송 갈무리

일본 연예계 제왕 쟈니 기타가와의 미성년자 성 착취 의혹을 보도하는 영국 BBC 방송 갈무리 ⓒ BBC

 
일본 연예계의 '제왕'으로 군림한 아이돌 기획사 창립자의 10대 소년 성 착취를 영국 공영방송 BBC가 전 세계에 폭로했다.

BBC는 8일 오전 6시(한국시각) 일본 J팝의 전성기를 이끈 남성 아이돌 기획사 '쟈니스' 설립자 고(故) 쟈니 기타가와(ジャニー喜多川)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인기차트 1위 가수를 가장 많이 프로듀싱한 인물'로 기네스북에 오른 기타가와는 일본 연예계의 신적인 존재였다. 그가 2019년 87세를 일기로 사망하자 도쿄돔에서 열린 거대한 추모식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연예인들이 총출동하고,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애도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였다.

"인형처럼 온몸 씻겨줘"... 그래도 참은 연습생들 

BBC는 "그러나 기타가와에게는 소년 성 착취 의혹이 늘 따라다녔고, 일본 언론은 침묵으로 이를 허용했다"라고 전했다. 

취재에 응한 하야시(가명)는 15세 때 이력서를 쟈니스 사무실에 보내고 1주일 뒤 기타가와의 거처로 초대받았다. 하야시는 기타가와의 첫인상에 대해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았다"라고 기억했으나, 곧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는 "기타가와가 '목욕 좀 하라'면서 나를 마치 인형처럼 온몸을 씻겨줬다"라고 말했다. 그날 기타가와는 하야시에게 구강성교도 했다.
  
 일본 연예계 대부 쟈니 기타가와의 성 착취를 폭로하는 피해자 하야시(가명)

일본 연예계 대부 쟈니 기타가와의 성 착취를 폭로하는 피해자 하야시(가명) ⓒ BBC

 
당시 쟈니스에는 '주니어'라고 불리는 연습생 제도가 있었다. 기타가와가 살아 있는 동안 수천 명의 소년이 연습생으로 지원했고, 이들은 기타가와의 허락이 있어야만 데뷔할 수 있었다. BBC는 "쟈니스의 시스템은 기타가와가 어떤 감시도 없이 소년들에게 접촉할 수 있도록 했고, 아이돌을 꿈꾸던 소년들은 기타가와의 성 착취를 거부하지 못했다"라고 진단했다.  

하야시는 "나 말고 다른 연습생들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라며 "그러나 '참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면서 연습생을 그만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라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연습생 출신 남성은 기타가와가 자신의 집을 방문했고, 잠자리를 마련해줬는데 성 착취를 당했다고 고백했다. 심지어 부모님이 옆방에서 주무시고 있었다며 "당시 기억을 잊고 싶다"라고 말했다. 

일본 주류 언론의 침묵... "기타가와와 상호의존적 관계"

과거에도 이런 증언이 쏟아져 나왔으나, 일본의 주류 언론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BBC는 "일본 언론과 '쟈니스 제국'의 상호의존적 관계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라며 "언론은 쟈니스 소속 아이돌을 출연시켜야 시청자, 독자, 청취자를 끌어들여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50년 넘게 기타가와의 어두운 비밀을 지켜왔다"라며 "일본 언론은 그가 사망한 후에도 침묵을 유지했으며, 쟈니스가 일본 연예계에서 너무 압도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기타가와를 비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라고 전했다.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이 1999년 기타가와의 성 착취 의혹을 폭로한 바 있으나, 쟈니스 측은 취재를 막고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도쿄 고등재판소는 2003년 7월 <슈칸분슌> 기사 10건 중 9건을 사실이라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기타가와는 숨질 때까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당시 기타가와를 취재했던 <슈칸분슌> 기자 나카무라 류타로는 BBC에 "여전히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뭉개지고 있는 것에 화가 난다"라며 "20년 넘게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서 절망했다"라고 말했다.
 
 쟈키 기타가와를 옹호한 전 쟈니스 소속 백댄서 '류'

쟈키 기타가와를 옹호한 전 쟈니스 소속 백댄서 '류' ⓒ BBC

 
일본의 성적 인식과 법률상의 한계도 있었다. 일본에서는 6년 전까지만 해도 남성은 성폭행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2017년 형법을 개정했다. 이 때문에 성적 착취를 당하고도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2002년 쟈니스에 들어가 10년 넘게 댄서로 활동한 '류'라는 이름의 남성은 기타가와로부터 성적 착취를 당할뻔하다가 강하게 거부하며 빠져나왔다. 당시 그가 16세, 기타가와는 70대였다.

그러나 류는 "나는 기타가와를 싫어하지 않는다. 좋아한다"라며 "그는 멋진 사람이었고, 나는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또한 "나에게는 그것이 큰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도 웃으며 말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당시 연습생이었던 또 다른 남성도 "내 꿈은 아이돌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기타가와의 요구를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트라우마 회복 첫 단계는 피해 인정하는 것"
 
 쟈니 기타가와가 창립한 일본 연예 기획사 '쟈니스 그룹' 홈페이지

쟈니 기타가와가 창립한 일본 연예 기획사 '쟈니스 그룹' 홈페이지 ⓒ 쟈니스 그룹

 
BBC는 "기타가와는 생전에 성 착취 의혹을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고, 피해자들도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성폭행 피해 남성들을 돕는 심리 치료가 야마구치 노부키는 BBC에 "일본은 개인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문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 착취를 당한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그루밍(길들이기)을 당한 것"이라며 "그런 트라우마에서 회복하기 위한 첫 단계는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BBC는 "기타가와의 피해자와 일본 사회는 아직도 피해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그 한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BBC가 이날 기타가와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이후에도 일본 언론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누리꾼들의 반응은 뜨겁다. 

한 누리꾼은 "내 친구 중에도 쟈니스에 들어갔다가 이런 이유로 데뷔를 포기한 사람이 있다"라고 썼다. 또 다른 누리꾼은 "일본 연예계는 범죄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기타가와의 의혹은 이미 1980년대에 드러났는데, 일본의 대형 미디어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일본 공영방송) NHK가 이 다큐멘터리를 방영해야 한다" "쟈니스뿐만 아니라 침묵한 일본의 언론, 아이돌로 성공하려면 참으라고 했던 부모들도 같은 부류" 등의 의견이 쏟아졌다.

한편, 기타가와 사망 이후 쟈니스를 이끌고 있는 조카 후지시마 줄리 게이코 사장은 BBC의 거듭된 입장 요청에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투명성 높은 조직 및 제도 정비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특히 2023년 올해 새로운 회사 구조와 시스템을 발표하고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기타가와의 성 착취 의혹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부했다. 
쟈니 기타가와 쟈니스 일본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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