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외비>를 연출한 이원태 감독.

영화 <대외비>를 연출한 이원태 감독.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최근 공개한 세 작품이 모두 '나쁜 사람들' 이야기다. 조직 폭력배와 결탁한 강력계 형사(<악인전>), 돈과 법을 우습게 보며 이를 이용해 복수하는 사람들(<법쩐>),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기꺼이 영혼을 파는 정치인(<대외비>)까지. 이원태 감독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길래 이런 인물들이 탄생하는 걸까. <대외비> 개봉을 앞둔 지난 23일 감독을 직접 만나 이야길 들을 수 있었다.
 
특히나 <대외비>는 구체적인 공간과 시간 설정이 특징이다. 1992년 부산을 배경으로 만년 국회의원 후보 해웅(조진웅)이 공천에 탈락하면서 지역 건달 필도(김무열)와 손잡고 지역 실세 순태(이성민)에 반기를 드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제1 야당 유력 후보가 무소속이 되어 선거전을 펼친 후 실제 선거판을 움직인 어둠의 세력의 실체를 파악하다가, 영혼을 빼앗기게 된다는 이야기를 누아르 장르에 풀어냈다.
 
5년 전 첫 만남
 
<대외비>와 첫 만남은 2018년 여름 무렵이었다. 이원태 감독의 기억을 쫓아가면 <악인전> 촬영 무렵 조언 정도를 구하는 차원에서 시나리오를 접했고, 해당 작가에게 "이 정도의 글을 쓰신 분이라면 직업으로 계속 하셔야겠다"라는 의견을 주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지금의 제작사에게 해당 작가를 소개해주기까지 했다고.
 
"나중에 <악인전>이 칸영화제 초청돼 바쁜 일정을 보낸 뒤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문득 내 영화로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영화를 존중하고, 영화인을 환대해주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그때 <대외비> 생각이 딱 나더라. 알고 보니 이야길 쓰신 이수진 작가님이 제 의견에 힘을 얻어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더라. 제가 준비 중인 다른 작품이 있었는데 제작사 대표에게 먼저 제안했다. 각색할 테니까 연출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해서 순태의 직업을 모호하게 만들고, 필도와 정반대의 성격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인 지금의 영화가 탄생했다. 이 감독은 "애초부터 권력의 속성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특히나 사회에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동시에 누군가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힘을 순태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력은 결국 지배력인데 필도에겐 눈에 보이는 물리력을 강화시켰고 순태에겐 정반대의 힘을 주었다. 사실 폭력을 쓰고 사람도 죽이는 물리적 폭력이 우리 일상에 가깝잖나. 하지만 정작 무서운 건 보이지 않는 힘이다. 해웅을 통해 그 사이에서 결국 타락하는 인간의 모습을 포착하려 했다. 본래 목표도, 열정도 있는 사람이었는데 욕망에 사로잡힌 뒤 타락하잖나. 인간적으론 타락하는데 세속적으론 권력이 점점 세진다. 그런 모순, 이중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감독 표현을 빌리면 비정한 세계관이다. 이원태 감독은 "사실 순태를 몰락시키고 해웅에겐 행복한 결말을 줘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라며 "그것보단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설프게 해피 엔딩을 택한다면 그건 영화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고 느껴질 것 같았다"라고 강조했다.
 
"세상엔 밝은 면도 있고, 선한 힘도 분명 있다. 그건 다들 알잖나. 하지만 저변에 깔린 애써 부정하고 싶은 것들은 현실에서는 잘 안 보려는 것 같더라. 감독으로서 그걸 드러내는 게 일종의 소명이랄까. 제가 대단하진 않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알아야 할 것을 영화적으로 풀어내려고 한다. 예를 들어 할리우드를 보면 < LA 컨피덴셜> 같은 류의 영화가 있잖나. 경찰의 암투, 반전에서 오는 서늘함이 있다. 욕망으로 가득한 뒷거래가 영화에 잘 담겼을 때 오는 쾌감이 있다.
 
각색할 때 든 생각인데 순태는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 해웅을 파우스트라고 생각하곤 했다. 영혼을 악마에 파는 이야기잖나. 이 말을 아무에게도 안 했는데 촬영 당시 이성민 배우가 제게 순태가 메피스토펠레스 같다고 하시더라. 아, 이야기에 보편성이 있겠다 싶었지."

  
 영화 <대외비> 관련 이미지.

영화 <대외비> 관련 이미지.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1992년, 그 시대성
 
<대외비>에서 주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설정이 1992년이라는 시대 배경이었다. 국민의 민주화를 향한 열망과 달리 군부 독재 세력 잔당이 권력을 잡았고, 민주화 투사처럼 칭송받던 인물이 기득권과 손잡고 3당 합당에 가세했다. 민주자유당이 제1 여당으로 세력을 키우던 중 치러진 1992년 총선은, 공천 과정에서의 잡음, 금권선거 등으로 부정 선거의 냄새가 강했던 때였다. 이원태 감독은 "솔직히 민자당, 민주당은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었다"라며 말을 이었다.
 
"당시 분위기에 매몰될까봐 일부러 그때 정치 지형은 보지 않으려 했다. 다만 딱 하나 잡고 간 게 있다면 정치인들이 삶의 위기에 몰렸던 사실이었다. 1992년은 제가 알기로 대선과 총선이 동시에 진행된 최초의 해다. 야당 여당 무소속 가리지 않고 정말 죽기 살기로 선거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거지. 특정 정당이 강조될까봐 부산이 아니라 장소를 서울로 옮겨야 하나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부산이라는 매력적인 공간을 버릴 수 없었다.
 
전쟁 이후 북한에서도 그렇고 전국의 피난민이 부산에 몰렸다. 제 부산 친구 중에서도 아버지나 일가친척이 이북인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런 역사적 비극을 딛고 일어선 게 지금이잖나. 나름 상징성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원랜 영화 대부분을 부산에서 찍고 싶었는데 많이 바뀌어서 장면을 많이 쪼개 다른 지역에서 찍어야 했다. 동해, 묵호, 양평, 한려수도 등등 전국을 돌아다녔다(웃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완성한 뒤 3년 만에 공개하게 된 것에 이원태 감독은 "초기엔 사람이 죽냐 사냐 문제라 정말 조심해야 했다"며 "후반작업 후 개봉 시기를 잡지 못할 때도 조바심을 내서 될 일이 아니기에 담담히 기다렸다. 다만 우리 작품에 신인 배우들이 여럿 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다"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외비>엔 주조연, 조연 캐릭터로 아직 대중에게 생소한 얼굴이 대거 중용됐다. 박세진, 손여은, 원현준, 김윤성 등 무대 연기나 모델로 활동한 이들이 주요한 역할을 맡았다. 감독은 "이 영화가 데뷔작인 친구들도 있는데, 영화가 빨리 공개돼야 그들 활동에도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게 미안하고 안타깝다"라고 속마음을 전했다.
 
"인지도가 낮아도 좋은 배우는 가급적 캐스팅 하려 한다. 나름 사명감이 있다. 물론 잘 알려진 배우를 조연으로 쓰면 영화에 좋지. 하지만 감독으로서 누군가에게 큰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경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 <법쩐>에서도 그런 기조를 유지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과감하게 배우를 발굴하려 한다."
  
 영화 <대외비>를 연출한 이원태 감독.

영화 <대외비>를 연출한 이원태 감독.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인터뷰 말미, 감독에게 30여 년 전 정치인들 이야기가 지금 이 시대에 왜 필요한지 물었다. 제법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과거뿐 아니라 앞으로도 유효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300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보면서도 똑같은 면이 있다고 느꼈다. 기원전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인 그리스에서도 비열하고 비정한 일이 있었다. 국민적 영웅이 국민들의 투표로 추방당하는데 그게 라이벌의 이간질 때문이었거든.

로마 때도 영웅 카이사르가 최측근에게 암살 당하잖나. 조선 시대에도 형제를 죽이고 권력을 잡은 사례가 있고. 인정하긴 싫지만 인간의 욕망으로 비극은 반복돼왔다. 사실 전 낙천적인 사람이다(웃음). 근데 세상은 그리 밝고 따뜻하지만은 않다. 그걸 부인하지 말자. 세상은 더럽고, 인생은 서럽다는 영화 <대외비> 속 대사처럼."
대외비 조진웅 이성민 김무열 이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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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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