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드라마 <트롤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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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고민을 던지는 트롤리 딜레마의 당사자인 주인공 중도(박희순)는 정의로워 보이는 국회의원이다. 하지만 "욕심이 없으면 이 자리에 있겠"느냐는 시인처럼, 그 역시 여느 정치인처럼 야망이 크다. 그의 야망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나아가지만, 실은 그 혜택을 누릴 시민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 좋은 세상의 핵심 권력을 움켜쥘 자신에 있다. 야망에 취해 어느새 과정의 정의로움 따위가 번거로워진 그는 성폭행을 저지르고도 이를 무마시키고, 가당치 않게도 성폭행 관련 법을 만들어 더 많은 피해자를 구제하겠다고 나선다.
정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건 믿었던 남편의 성폭행 사실을 알게 된 혜주(김현주)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절친한 친구의 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한 성폭력 피해 당사자다. 성폭력을 당한 직후 경찰에 신고하지만 가해자가 어이없게도 자살하고 만다. 가해자가 서울대 합격생이라는 사실은 혜주를 일순간에 꽃뱀으로 전락시킨다. 재력이나 학력 앞에 무릎 꿇는 세간의 평은 부유한 명문대 남자 합격생에겐 저절로 무죄의 자리를, 가난한 고아 여자 피해자에겐 무고죄의 자리를 배정한다. 게다 가해자 사망으로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할 수 없다는 법의 논리는 그를 더욱더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 결국 자살로 최악의 가해를 가한 가해자는 안타까운 죽음으로 애도되고, 피해자인 혜주는 가난한 꿈마저 빼앗긴 채 불명예를 안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이런 혜주를 바라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가 그런 아픔을 겪고도 마음의 온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은 성폭력 피해자는 불행할 거란 낙인을 지우며 인간의 존엄을 되새기게 한다. 하지만 얄궂게도 고통은 다시 찾아들고 그토록 믿었던 남편이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게다 남편의 성폭행 피해자가 다른 이도 아닌 혜주가 그토록 믿고 사랑하는 여진(서정연)이라는 충격은 그를 좌절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