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철우 YTN 촬영기자
이영광
- 지난 4일 방송된 < YTN 탐사보고서 기록 > '공백-10.29 이태원 참사 100일의 기록' 편 제작하셨잖아요.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떤가요?
"더 많은 이야기들을 취재했는데 모든 걸 방송 분량 안에 다 담아내지 못해서 아쉬운 게 더 많죠. 특히나 우리 유가족분들의 목소리나 상황 등을 많이 들어서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들을 100일의 기록 안에 모두를 다 녹여내지 못 해서 그게 가장 안타깝고 미안하죠."
- 촬영 기자시잖아요, 촬영 기자가 다큐 제작하는 게 YTN에서는 흔한 일인가요?
"촬영 기자들이 장편(다큐) 제작하는 일들이 있긴 있었죠. 흔한 일은 아니고요. 그러니까 영상 취재 2부나 1부에서 특집물로 자체 제작하는 프로그램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거기에 글 구성 부분을 담당한 적은 별로 없죠."
- 그럼, 처음이에요?
"사실 <탐사보고서 기록> 전체적으로 키를 잡고 간 거는 처음이죠. 왜냐하면 거기는 취재 기자 고한석 팀장 김웅래 기자 그리고 우리 한동오 기자 신지원 기자 등등이 있었고 그분들이 취재 글 구성 등을 했었거든요. 사실 그게 또 우리 회사에 있는 영상 기획팀이라는 곳이 있어서 거기에서 기자님도 예전에 보셨지만 <인터뷰> <사공시> 이런 프로그램들은 촬영 기자가 구성하고 글도 쓰고 직접 취재도 하고 한 경험들은 있죠. 하지만 <탐사보고서 기록>을 촬영 기자가 키가 돼서 한 건 이번이 처음이죠."
- 인터뷰는 계속 해 온 거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체적인 구성을 해야잖아요.
"키를 쥐고 갈 수는 있지만 저희 팀장님이 제가 제일 믿고 있는 신호 선배고 저와 또 인연이 깊잖아요. 이 팀에 오면서 신호 팀장님과 같이 왔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내가 배우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선배가 키를 저한테 주셨지만 제가 구성안을 작성하고 선배가 데스킹 해 주시는 과정에서 저는 선배 의견 적극 반영하겠다고 얘기했었고요. 또 그사이 사이에 도움 받을 수 있었던 제작진들이 있었어요. <탐사보고서 기록>을 2년 동안 만들었던 김종필 PD 또 지난 '로스트 미얀마' 편을 함께 제작했던 서다예 리서처, 거기에 우리 회사에서 가장 데스킹을 잘한다는 신호 팀장이 계셨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 됐었고요. 오히려 조금 부담스러웠던 건 더 많이 취재하고 더 팩트를 제대로 담아야 되고 분석을 잘 해내야 된다는 게 탐사 취재니까 그런 부분들이 좀 부담스럽긴 했죠."
- 이태원 참사 100일에 대한 다큐는 어떻게 하게 되었어요?
"<탐사보고서 기록>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사회적 약자나 인권 사각지대 분들의 이야기들을 집중 조명 했어요. 이 아이덴티티를 이어가야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그때는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속보가 쏟아지는 시기였는데 이때 이걸 우리가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10.29 이태원 참사를 새롭게 제작하는 2기 <탐사보고서 기록> 팀이 제작해야 될 주제로 만들게 됐습니다."
- 처음에 뭐부터 하셨어요?
"우리가 유가족분들을 만나야 되는데 11월 29일은 유가족협의회가 창립되기 전이에요. 유가족들이 모임 만들려고 시도했는데 행정안전부에서 연락처 없다는 얘기들이 나오면서 모임 자체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일부 유가족분들이 민변과 시민단체들을 통해서 연석회의를 열었고 어떤 도우미 활동을 하겠다고 해서 시민단체 전부 모여서 기자회견을 했죠. 민변에 연락을 먼저 취했고 그것과 동시에 저희는 공부가 부족하니까 타사나 우리 회사에서 어떤 방향으로 보도했는지 전부 다 모니터링하기 시작해서 쏟아진 기사의 거의 대부분을 다 봤고 타임라인을 작성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게 사실에 부합하는지 팩트체크 하기 시작했습니다."
- 다른 방송에서 이태원 참사 다룬 게 있어서 어떻게 다르게 할지가 고민이었을 것 같은데.
"워낙 기사들이 많이 나왔고 제대로 된 분석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또 이미 국회 국정조사 특위가 들어가기 전에 더불어민주당 차원에서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가 꾸려지고 거기에서 각 의원실이 각 기관에 자료를 요청했고 그런 자료들을 받아서 뉴스 만들고 방송하는 팀들이 많았어요. 저희는 뒤늦게 들어갔잖아요. 그래서 어려웠어요. 그러나 저희는 타임라인을 바탕으로 유가족이 직접 묻고 전문가들이 대답하는 형태로 한번 구성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타임라인을 바탕으로 유가족이 이때 어떤 부분이 이렇게 됐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걸 팩트와 전문가들의 의견들로 함께 구성해보자는 게 첫 번째 계획이었어요. 그러면서 시민단체 쪽하고 연계를 지어서 각계 이 참사 관련해서 전문가들이 되게 많이 있잖아요. 그래서 모두 만나보자는 거죠."
- 모두 만나려면 많지 않나요?
"그런데 다른 곳과 좀 차별화하고 아니면 제대로 우리가 보여드리기 위해서는 일단 많이 만나서 많이 들어보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사회적 재난 참사 조사위원회 분도 만났고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대구 지하철, 삼풍, 제천 화재, 가습기 살균제, 세월호 이런 참사들을 기록해 왔던 분들 거기에 있었던 분들 그리고 각계 교수님들, 현장 출동했던 구급대원 그리고 당일 현장에 DMAT(재난의료지원팀) 파견됐던 의사 선생님들, 시민단체 등을 모두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그분들이 만나주시고 2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하면서 흔쾌히 정말 많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사이에 교수님들을 만나면서 공백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됐어요."
- 공백이요?
"아시아안전교육진흥원 소장인 최희천 교수님이 처음 공백을 언급하셨고 인터뷰 끝나고 나서 공백 너무 좋으니 우리가 이걸 키워드로 한번 가져가 보겠다고 얘기해서 그 이후에 만난 분들에게 어떤 데에서 공백이 발생했는지를 공통 질문으로 하게 됐어요."
"이태원 참사 만든 '공백'... 제작하는 내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