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시태그 시그네> 포스터.판씨네마
타인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뼛속 깊이 사회적 동물이 아닌가. 하지만 타임의 관심을 얻기란 쉽지 않다. 내가 그의 관심을 얻고 싶어 하는 만큼 그 또한 나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데, 50 대 50으로 정확히 나눌 수 없다. 딜레마에 직면한 인간은 자아를 만들어 또 다른 내가 나에게 관심을 주게끔 한다. 자존감으로 발전해 단단하고 건강한 나를 만든다.
그런데 어린시절 어떤 연유로 심한 자기도취에 빠질 수도 있다.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 또 다른 내가 나에게 관심을 주지 못하고 오직 내가 나에게 관심을 줄 수 있을 뿐이다. 문제는 힘들고 상처받을 때다. 그땐 내가 나를 토닥이고 위로해 줄 수 없으니 타인의 관심에 목맬 수밖에 없다. 인터넷 시대를 지나 SNS 시대의 한복판에서, 타인의 관심을 받는 게 쉬워진 만큼 경쟁이 치열해졌고 또 그게 지상과제처럼 되어 버렸다.
타인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지나치게 높은 병적인 상태를 일러 흔히 관심병자 혹은 관심종자라고 하는데, 그 줄임말이 다름 아닌 '관종'이다. 관종이 실제하는 정신건강의학 용어는 아니지만, 연극성 성격장애나 뮌하우젠 증후군 혹은 공상허언증이나 리플리 증후군 등의 정신질환들과 맞닿아 있다. 노르웨이에서 건너온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는 SNS 시대 관종의 모습과 뮌하우젠 증후군 양상의 주인공을 들여다본다.
시그네가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는 이유
행위 예술가 토마스를 남자친구로 둔 시그네, 그녀는 카페에서 일한다. 토마스는 시도 때도 없이 절도를 일삼아 친구들한테 무용담으로 자랑하기 바쁘다. 친구들은 토마스에게 지대한 관심을 표출한다. 그런 토마스를 지켜보는 시그네는 어이 없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결국 그녀 자신도 관심을 받고 싶은 것이다. 어느 날 일하던 도중 개에 물려 피를 흘리는 중년여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몰려든 사람들은 도와줄 생각 없이 관심만 갖고 사진을 찍고 있을 뿐이다. 놀라운 경험.
한편 토마스는 시그네와 함께 훔쳐 온 명품 의자들로 전시회 개최에 성공한다. 토마스의 의자 전시회 뒷풀이 자리에서 시그네는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곤 급기야 쓰러지고 만다. 시그네로서는 토마스가 주목 받는 것도 싫었지만 자기가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여하튼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이후 그녀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만인의 관심을 받을 확실한 방법.
러시아산 불법 약물을 과다복용해 원인불명의 피부병에 걸리는 것이었다. 비록 흉측해지고 돌이키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을 것이 확실했다. 개에게 물려 피를 철철 흘리는 중년여성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 견과류 알레르기로 쓰러진 시그네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과연 시그네는 지독해 보이는 한편 안쓰러워 보이는 바람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관종의 실체 그리고 뮌하우젠 증후군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는 한국 제목을 보면 SNS 시대의 대표적이고 문제적인 사회병리적 현상인 '관종'의 실체를 엿보는 데 주안점을 둔 것 같다. 주인공 시그네가 자신의 흉측하고 안쓰러운 모습을 SNS에 공유하며 여지없이 '#시그네'를 붙일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자신의 몸에 위해를 가하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나 정도가 지나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가 하면, 시그네의 남자친구 토마스는 관종의 전형이자 극단적으로 악화된 모습을 보이는 경우다. 절도한 명품 의자들로 전시해 명성을 떨치면서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니 말이다. 시그네나 토마스나 타인의 관심을 끌고자 극단적인 짓까지 하는 건 같으나, 시그네는 자신을 해하고 토마스는 남의 것을 탐한다. 시그네는 안쓰럽고 토마스는 나쁜 놈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해로운 커플
시그네와 토마스는 동거하는 커플이다. 서로를 그렇게 의지하고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같이 살기까지 하는가 싶다. 더군다나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누구 하나가 더 타인의 관심을 많이 받는 것 같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려 하는데, 도대체 왜 함께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아마도 그건 둘이 똑같은 사람이고 또 둘 다 제대로 된 자아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잘못된 만남이다.
시그네와 토마스는 서로가 서로를 투영하는 거울이다. 그리고 서로에게 서로는 관심과 인정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다. 문제는 그들이 심하게 자기도취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특히 토마스는 굉장히 피상적이면서 타인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시그네가 왜 그러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같이 하면 할수록 안 되는 커플이다. 시그네의 곁엔 역지사지의 공감이 가능한 사람이 필요하다.
<해시태그 시그네>에 굳이 장르를 붙이자면 블랙 코미디 로맨스일 텐데, 본질적으로 들여다보면 사회병리를 정면으로 다룬 심리 스릴러다. 이 시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시종일관 뒷골이 송연해질 정도의 소름으로 온몸을 떨었으니 말이다. '내가 시그네였다면?'이라는 가정이 아니라, '나도 시그네같이 될 수도 있겠다' 또는 '(정도는 다르지만) 나도 시그네같이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확정적인 두려움이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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