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세상을 진보시키는 역사를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흑역사를 초래하기도 한다. 13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아래 <알쓸인잡>) 7회에서는 '미래를 바꿀 인간'과 '인간의 흑역사'라는 주제를 넘나들며 시계, 알츠하이머, 마녀사냥, 히틀러, SF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통하여 다채로운 인간의 면모를 조명했다.
 
촘촘하고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분초 단위로 나누어지는 '시간'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시계의 발달도 시간을 보다 정확하게 측정하고 세밀하게 활용하는데서 비롯됐다. 한국의 코리안타임(한국사람들은 약속에 늦는다)처럼 시간과 관련된 문화적 용어들은 각국마다 존재한다.
 
김영하는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됐다. 영국은 시간을 잘 지키기로 유명한 나라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에게는 대부분 시간을 안 지킨다는 의미의 OO타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사람들이 시간에 엄격하게 구애받지않고 해가 뜨고 지는 것에 다라 유연하게 자신의 리듬대로 일을 했다면, 산업혁명 이후로는 인간이 기계와 일을 하면서 분 단위가 시간을 나누는 개념이 생겨났고 업무와 휴식, 출퇴근 시간을 분리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현대에 들어와서 시간은 이제 개인이 임의대로 정할 수 없고, 그리니치 표준시에 따라 세계가 국제적인 약속으로 시간을 계산한다. 한국은 현재 동경 135도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다. 같은 한반도이지만 서울과 평양은 30분 정도 시차가 있었지만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여 남북한 시차를 없애고 시간 통일에 합의했다.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들도 미국처럼 지역마다 다른 시간대를 적용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 중국처럼 수도 베이징을 기준으로 하나의 표준시만 사용하는 나라도 있다.
 
한편 시간 개념의 발전은 추리소설같은 새로운 장르 문학의 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영하는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를 예로 들며 "합리적인 추론으로 범인을 잡을 수 있다는 믿음, 정확한 추리가 주는 쾌감도 산업혁명과 정확해진 시간 개념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기억과 시간을 빼앗아가는 병, 알츠하이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인간은 85세 이상이 되면 알츠하이머에 걸릴 확률이 40%까지 높아진다. 새뮤얼 코헨 교수는 "지난 백년간 많은 병에서 진보가 이루어졌지만, 알츠하이머는 1906년 처음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진보랄 것이 하나도 없었다"며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지금도 정확한 원인이나 치료법은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다. 2021년 기준으로 인구 사망 원인에서 알츠하이머는 무려 7위라는 높은 순위에 올랐다.
 
알츠하이머라는 병명은 최초의 발견자인 독일의 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1864-1915)의 이름에서 따왔다. 최초의 알츠하이머 환자였던 아우구스테 데테르를 치료했던 알츠하이머는, 그녀가 사망한 이후 사전 동의에 따라 기증받은 뇌를 해부한 결과 정상인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알츠하이머는 이를 통하여 뇌의 변화가 노화의 과정만이 아닌 질병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알츠하이머 치료제 발견이 어려운 이유는, 인간의 세포중 유일하게 재생이 안 되는 것이 신경세포이기 때문이다.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뇌는 노화의 과정에서 손상이 되면 다시 재생할 수 없다. '인간의 노화를 막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현대과학의 마지막 숙제이기도 하다. 현대에는 위험한 질병의 대명사인 암보다도, 치매 환자를 돌보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추세다.
 
치매는 흔히 기억의 문제로만 여기기 쉽다. 사람은 과거의 기억을 잃는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을 소재로 한 <살인자의 기억법>을 집필하기도 한 김영하는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은 미래"라고 설명했다. 뭘 해야할지, 뭐하려고 할지도 모르게 되고 그 사람의 시간은 멈춰버리는 것이다.

이어 김영하는 "기억의 문제보다 감정에 더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하며 치매에 걸려 두려움에 휩싸인 이들이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감정이 '집에 가고싶다'고 하는 것에 주목했다. 이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과도 관련되어 있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치매 환자들의 특성을 고려한 '가짜 정류장' 치료법이 등장하여 효과를 보고 있다.
 
이호는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늘어날수록, 이들을 세상에서 제외할 존재가 아니라 모두가 뒤따라가야할 존재로 봐야한다. 사회는 이들과 같이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상욱은 <살인자의 기억법>을 보면서 '기억과 나'라는 주제에 대해서 고민해봤다고 고백했다. 24시간 자신의 모든 모습을 데이터로 기록할 수 있다면 그 총합이 바로 나일까. 김상욱이 내린 결론은 NO였다. 김상욱은 편집에 따라 달라지는 영화에 비유하여 인간의 삶 역시 '편집된 나'가 진정한 자아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영하는 치매 환자로서의 일상을 9년째 개인 블로그에 기록중인 웬디 미첼의 사례를 들어 "표현하지 못하는 단계에서도 인간의 감정과 인지능력은 살아있다"는 것에 주목하며 알츠하이머가 결코 극복하지 못할 불치의 영역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흑역사'가 다음 주제로 등장했다. 이호는 '마녀사냥'을 거론하며 "인간이 인간을 300년간 학살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마녀사냥의 시작은 종교가 지배하던 시대에, 일반 재판과는 다른 종교의 사적처벌에서 비롯됐다.
 
'마녀잡는 망치'의 저자인 하인히리 크라머는 중세의 대표적인 이단 심문관이자 마녀사냥을 주도한 인물로 악명이 높다. 크라머는 고위 성직자 출신임에도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각과 왜곡된 신념,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여성혐오가 결합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광기를 초래했다. 책에서 그가 제시한 마녀 판별법은,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동안이 마녀의 증거라는 등 무논리적이고 황당무계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독신의 노파, 과부, 어린 아이까지 유럽 전역에서 마녀사냥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해다. 교황청은 2000년대가 되어서야 유대인 차별-이민족 탄압 등과 더불어 마녀사냥의 가톨릭의 대표적인 과오로 인정하고 공식사과했다.
 
하지만 마녀사냥은 현대에도 존재한다. 인쇄술의 발달이 마녀사냥의 확산에 미쳤듯이 오늘날에는 고도로 발달한 SNS를 통하여 사적 제재, 사이버 테러라는 방식의 새로운 마녀사냥이 빈번해졌다. 나와 생각이 맞는 사람들과 동조하는 현상이 확증편향으로 나타나는 것.
 
김영하는 "개인적으로 '정의감'이 드는 순간을 조심한다"고 이야기하면서 "크라머나 우리 사회에서 마녀사냥으로 이득을 얻는 사람들은 모두 대중의 정의감을 건드린다. 지금은 정의를 구현하는 방식이 너무 쉬워졌다. 광장이 모일 필요도 없이, 글을 쓰거나 '좋아요'하나만 누르고 좌표를 찍으면 된다"고 지적했다.
 
김상욱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거론하며 "정의롭다는건 굉장히 위험한 말이다. 정의감만 추구하는게 아니라 그 정의를 누가 규정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전두환 군사정권때도 모토는 '정의사회 구현'이었다. 김영하는 "정의롭게 살고 행동하는 게 그렇게 간단할 리가 없다. 정의감이라는 마약에 취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김상욱은 흑역사를 저지른 인간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아돌프 히틀러를 선택했다. 지금에서야 세기의 독재자이자 전범으로 유명한 히틀러지만, 20대 젊은 시절만 해도 미술아카데미에서 연달아 낙방하거나 병역의무를 피하여 해외로 도주하는 등 훗날 역사에 남긴 악명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찌질한 삶을 살았다.

히틀러는 1차대전에 군인으로 참전하면서 전쟁의 광기와 전후 독일 사회의 혼란을 지켜보면서 대중 선동가로서 본인의 재능에 눈을 뜨게된다. 히틀러는 탁월한 연설능력으로 대중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실패로 끝났지만 쿠데타와 자서전은 히틀러를 전국구스타로 만들었고, 선동을 무기로 집권까지 성공하며 훗날 전세계에 재앙을 불러오게 된다.
 
히틀러는 연설은 잘했지만 실제로는 리더십도 없고 소극적인 성격이었다. 뛰어난 정치적-군사적 역량이 있거나 철두철미하고 통찰력있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독일의 총통이 되어 독재를 저지를 수 있을까. 이는 개인의 역량이나 광기를 넘어서 당시의 독일 국민 자체가 협력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독일인들이 지금도 히틀러와 나치의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고 지속적으로 반성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잘못을 저지른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기억해야한다.

심채경은 미국의 수필가이자 소설가인 커트 보니것을 소개했다. <제5도살장>등 반전 소설로 알려진 보니것의 작품은, 주로 전쟁이라는 흑역사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생하게 조명하는데 능했다. 독일계 이민자었던 보니것은 어린 시절부터 불우한 가정사를 가졌고 자신의 정체성을 주변에 최대한 감춰야했다.
 
또한 보니것은 2차대전에서는 연합군으로 참전하여 독일군에게 포로가 되어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등 기구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포로 시절에는 아군인 연합군의 폭격으로 독일 민간인들이 대량학살되었던 '드레스덴 폭격'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고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보니것은 폭격 이후에는 시신을 수습하고 재건 작업에도 참여했다.
 
보니것의 <제5도살장>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다. 주인공이 겪는 부모의 사망, 군입대 이후의 파란만장한 경험들은 대부분 보니것이 겪은 실화들이다. 보니것은 여기서 역순으로 진행되는 시간, 외계인과의 조우 등 SF적인 요소들을 결합하여 참혹한 인생의 미래와 모든 순간을 알고 있음에도 묵묵히 살아가야하는 한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조명했다.
 
보니것에게 소설은 곧 스스로 내면의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김상욱은 글쓰기의 장점으로 "생각을 눈 앞에 늘어놓고 볼 수 있는 것"을 꼽으며 "머릿속으로 잊어야지 생각하는 것보다 글을 써서 '내가 잊어야할 대상의 실체를 만드는 것도 치유의 과정이 될수 있다"고 분석했다. 누구보다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겪었던 보니것의 작품은 같은 아픔을 겪었던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냈고, 반전론자들이 시위에도 들고 참석했을만큼 유명해졌다.
 
극중 주인공의 진료실 벽에는 "제가 바꿀 수 없는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원문은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의 '평온을 위한 기도'에서 인용한 문구다.
 
여기서 인간은 때때로 바꿀수 없는 것에 매달리다가 큰 좌절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보니것의 작품에서 작가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은, 바꿀 수 없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절망속에서도 짓궃은 블랙유머를 잃지않는다. 김영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보니것의 사연에 공감하며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말을를 대신해주는게 작가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심채경은 보니것의 또다른 작품인 <타이탄의 세이렌>에서 "두 아빠가 모두 똑똑하고 옳다. 그런데 두 아빠는 만나자마 말다툼을 할 것이다. 어느 문제에도 의견이 같지않을테니까"라는 문구를 인용하여, "우주라는 거대한 규모에서 보면 너도나도 옳을 수 있다"면서 각자의 정의와 옳고그름에만 집착하며 끊임없이 다투는 인간의 오랜 습성에 일침을 날렸다.
 
어쩌면 인간이 아닌 자연이나 제3자의 입장에서 내려다봤을 때 인간 세상의 치열한 다툼이란 아무 것도 아닌 일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인류가 여전히 어리석은 흑역사를 반복하는 이유에 대하여 심채경은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도 짧아서가 아닐까. 인간은 충분히 시행착오를 겪을 만큼 오래 살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모든 인간이 한 번뿐인 짧은 인생을 흑역사로 채우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사유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알쓸인잡 마녀사냥 히틀러 커트보니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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