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양영희 감독이 자신의 어머니 강정희 씨를 찍은 다큐멘터리다. 강씨는 올해 1월 세상을 떠났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양영희 감독이 자신의 어머니 강정희 씨를 찍은 다큐멘터리다. 강씨는 올해 1월 세상을 떠났다 ⓒ (주)엣나인필름

 
개인의 가족사를 거슬러 올라가니 비극의 한국사가 있었다. 20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재일교포 2세인 양영희(57) 감독이 어머니 강정희씨로부터 우연히 제주 4.3에 대해 들은 후 강씨의 기억을 기록하고 가족으로서 그녀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카메라로 찍은 결과물이다. 어머니 강씨가 사는 일본 오사카, 함께 방문한 제주의 여정 등이 담겼다. 양 감독의 남편(당시 남자친구)인 일본인 프로듀서 아라이 카오루씨도 중요 인물로 등장한다. 

지난해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대상을,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집행위원회 특별상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올해 6월 개봉했다. 양 감독이 최근 일본에서 한 대담 기사의 제목은 "일본인이 모르는 '한국 현대사 최대의 금기' '제주도 4.3 사건의 진실"이었다. 다큐멘터리 덕에 제주 4.3에 대한 이야기가 일본에도 알려지고 있다.

영화 제목의 수프는 삼계탕

영화 제목이기도 한 수프는 삼계탕이다. 양 감독이 카오루씨를 처음으로 데리고 왔던 날 강씨가 닭 안에 마늘과 대추, 인삼 등을 넣고 몇 시간을 고와 대접한 음식이다. 세 명 모두 "수프"라고 부른다. 삼계탕을 먹는 장면은 세 번 나온다. 카오루씨가 강씨와 장을 보고 함께 만들고 이후 만드는 법을 터득한 카오루씨가 혼자 삼계탕을 끓인다.
 
 아라이 카오루 씨(왼쪽)와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 강정희 씨.

아라이 카오루 씨(왼쪽)와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 강정희 씨. ⓒ (주)엣나인필름

 
양 감독에게 가족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제주도 태생의 아버지 양공선씨와 재일조선인인 어머니 강씨는 일본에 살며 조총련의 열성 활동가로 살았기 때문. 양 감독의 오빠들이기도 한 아들 셋을 전부 평양에 보내며 북한에 충성했다. 그 때문에 양 감독은 아버지와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만 아버지와 밥을 먹어달라는 강씨의 부탁을 받고 가족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 이해의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가 <디어 평양>(2005)과 <굿바이, 평양>(2009)이었다. 극영화 <가족의 나라>(2012) 역시 가족이 주제였다. 그 연장선상에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있다. 한 가족 안에 서로 다른 국적과 이데올로기가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운명.

그래서 양 감독과 강씨, 카오루씨가 함께 삼계탕을 먹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이 걸린 강씨 집에서 국적과 이념이 다른 셋이 한 자리에서 평화롭게 같은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수프(삼계탕) 통해 교감의 끈이 생겨나는 셈이다. 평범한 한 끼가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강씨가 카오루씨에게, 카오루씨가 강씨에게 삼계탕을 대접하는 장면은 타인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발걸음과 닮았다. 연애도 결혼도 일본인은 절대로 안 된다던 어머니의 변화이기도 하다.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는 4.3 사건의 피해자

양 감독이 어머니를 좀 더 깊게 이해하는 건 4.3 사건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라는 걸 알면서부터다. 강씨는 18살 때 4.3을 겪고 두 동생을 데리고 간신히 밀항선을 타고 제주를 탈출해 오사카에 도착했다. 강씨는 긴 세월 속에도 당시 살던 마을 이름과 "개머리판으로 삼촌 뒤통수를 내려쳐서"라고 증언할 정도로 그 당시 상황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한 장면. ⓒ (주)엣나인필름

 
양 감독은 2018년 강씨, 카오루씨와 제주로 향한다. 2018년 정부에서 조선 국적자의 대한민국 입국을 허가한 덕분이다. 함께 제주 4.3 평화공원을 둘러보고 제주 4.3 70주년 추모식에 참석한다. 제주에 와서야 강 감독은 어머니의 아픔을 크게 느낀다. "(부모님이) 일본에 가시고 남한 정부는 안 믿겠다 해서 북한을 지지하며 살아오셨잖아요. (중략) 아들을 다 북에 보내면서까지 4.3이 그렇게 크나 했었어요. (중략) 그렇게까지 한국을 부인하고 북한을 지지할 이유가 되는 건지 4.3이 그렇게 큰 지 이해가 안 됐거든요. 여기 와서 보니까 이런 고향을 품고 어떻게 살았나 싶어요."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아픔의 근현대사까지 커다랗게 확장한다. 동시에 우리가 계속해서 마주하고 공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준다. 가장 가깝지만 심리적으로 가장 먼 가족과 비극의 폭력의 아픔을 준 국가, 뿌리박혀 쉽게 이해하기 힘든 각자의 이데올로기까지. 길고 심오한 과정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단단한 다큐멘터리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진수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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