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야마 신조 감독의 <실종> 포스터.
가타야마 신조 감독의 <실종> 포스터. 엔케이콘텐츠
 
가타야마 신조 감독의 <실종>은 괴물 같은 활력이 살아 숨쉬는 영화였다. 연쇄살인범과 접촉한 아버지가 갑자기 실종된다. 딸이 자신을 두고 떠날 리 없는 아빠를 찾아 나서고, 아빠의 일터에서 아빠 이름을 쓰는 젊은 남자를 마주치게 된다. 의심 속에 이 남자를 쫓던 딸이 마주한 진실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종류였다.

형사 혹은 일반인이 사건과 인물의 진상을 쫓는 형식의 스릴러는 일본영화의 장기와도 같다.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위원회를 꾸리는 형식의 일본영화 제작 시스템 하에서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고와 같은 거장 작가들의 작품이야말로 일본 장르영화의 원천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반면 <실종>은 기타야마 신조 감독이 수 년 동안 개발했다는 오리지널 각본의 매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의외성이나 반전은 물론이요, 중층적이면서 매력적인 서사와 캐릭터가 생동감을 자랑한다. 또 일상에서 마주할 법한 서민적이고 리얼한 상황과 독특한 동기와 악의가 치를 떨게하는 범죄자가 엮이는 과정 자체가 현실감과 신선함을 동시에 발산한다.

그러한 가타야마 신조 감독의 눈여겨 볼 만한 이력이 바로 봉준호 감독과의 연인이다. TV 출신인 신조 감독은 우연한 기회에 한일 옴니버스 영화 <도쿄!> 중 봉 감독의 에피소드인 <흔들리는 도쿄>의 스태프로 참여했다. <도쿄!> 2008년 개봉작이니 벌써 15년도 넘은 인연이다.

'봉테일' 봉 감독의 섬세하고 인간적이며 독창적인 연출 방법에 매료된 신조 감독은 내침김에 봉 감독의 차기작인 <마더> 조감독으로 지원하기에 이른다. 봉 감독은 비록 한국어를 못 하는 유일한 일본인 스태프였지만 신조 감독의 프로포즈를 흔쾌히 수락했고, <마더> 현장에서 신조 감독은 한국영화와 봉 감독의 영화제작 시스템을 밀착해서 배울 수 있었다.

특이하고 특수한 이력이 맞다. 이후 신조 감독은 오랜 준비 끝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 특별기획 프로그램인 '일본 영화의 새로운 물결'에 초청된 <벼랑 끝의 남매>(2018)로 데뷔했다. 또 두 번째 연출작인 <실종>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고 올해 6월 국내에서 정식 개봉한 바 있다.

그 가타야마 신조 감독이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신조 감독은 <벼랑 끝의 남매>의 관객과의 대화는 물론 지난 9일 kofic cafe에서 열린 'kofic 스페셜 토크: 한-일 영화인 대담'에 참석해 변함없는 한국과 한국영화 사랑을 자랑했다. 확실히 한국영화계를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의 소유자가 바로 신조 감독이었다.

봉준호 감독을 은인이라 부르는 일본 감독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한창이던 지난 9일 kofic cafe에서 열린 'kofic 스페셜 토크: 한-일 영화인 대담'에 참석한 가타야마 신조 감독.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한창이던 지난 9일 kofic cafe에서 열린 'kofic 스페셜 토크: 한-일 영화인 대담'에 참석한 가타야마 신조 감독. 정지욱

"앞으로 저의 경우뿐만 아니라 한일 합작 영화나 교류가 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일본 영화계가 한국영화계에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조 감독의 대담 끝인사는 이랬다. 이 주목할 만한 감독이 '일본영화계가 한국영화계에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서슴없이 혹은 신중하게 발언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격세지감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영화계가 영화 선진국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역사적 사실이나 1998년 일본영화 수입 개방이 당시 시스템을 정착시키려 노력하던 한국영화계의 '빅 이슈'였다는 기억을 떠올려 보면 말이다.

한편으로 K-콘텐츠 열풍 이전 일본영화가 오랜 침체기를 겪은 것도 사실이다. 애니메이션이 점령한 일본 극장가는 관객들의 오랜 습관이라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일 터. 그보다 수익을 우선시하는 방송사나 출판사가 주도하는 제작위원회 시스템이야말로 일본 영화인들의 독창성과 상상력을 제한하는 시스템이란 평가가 주를 이룬다. 그런 점에서 오리지널 각본을 고수하는 신조 감독의 작품 세계는 독보적이라 할 만 하다.

"저는 장편 2편 모두 오리지널 각본을 썼습니다. 이를 영상화하는 것이 옳다는 고집이 강한 편이기도 하고요. 일본 영화 대부분은 원작물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1990년대부터 만화나 소설 원작의 영화화 경향이 두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작품이 아닌 영화를 만드는 것은 제 고집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이고, 사실 다른 젊은 감독들의 생각도 그게 맞다고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작 시스템상 원작의 영화화는 3~4개월 만에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하고 이후 바로 촬영할 수 있는 강점이 있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제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요."


2021년 완성한 <실종>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촬영을 마친 작품이다. 그 기간 한국영화계는 OTT 열풍과 함께 관객 규모가 축소되는 고난의 시기를 겪었고 여전히 100% 팬데믹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영화계는 조금 양상이 달랐다고 한다. 일본 멀티플렉스는 <귀멸의 칼날>과 같은 애니메이션의 인기에서 볼 수 있듯 우리보다 회복 속도가 빨랐다. 독립예술들도 OTT나 온라인으로 영화를 소비하고 싶지 않은 전통적인 영화 마니아층이 비교적 극장을 꾸준히 찾았다. 그렇다면 <실종>을 만든 신조 감독의 경우는 어땠을까.

"코로나 펜데믹 시작 즈음 드라마 케이블 채널인 '와우와우'에서 드라마 촬영을 시작했는데 난항을 겪었습니다. 저 말고도 일본 영화계 전반이 촬영에 난항을 겪고 제작이 중단되는 사태도 여럿이었고요. 창작자 입장에서 관객들이 극장에 갈 수 없으니 OTT 가입자가 늘어가는 상황을 피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큰 바다가 덮치는 기분이 들었는데, 어쩌겠어요. 묵묵히 자리를 지켜내는 수밖에. 그럼에도 긍정적인 점을 꼽자면 미니 시어터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영화 마니아들의 존재와 필요성이 다시금 확인됐다는 사실일 겁니다. 개인적으론, 한국 영화인들과 온라인 줌 회의도 많이 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연락도 오고 했어요. 영화를 기획하는 데 장소가 크게 중요치 않은 시대임을 체감했습니다."


필요하고 중요한 한일 영화인들의 교류와 연대
 
 지난 9일 kofic cafe에서 열린 'kofic 스페셜 토크: 한-일 영화인 대담' 현장.
지난 9일 kofic cafe에서 열린 'kofic 스페셜 토크: 한-일 영화인 대담' 현장. 정지욱
 
이날 간담회엔 한국 수입배급사 엣나인 필름의 주희 이사, 일본에서 촬영한 <한여름의 판타지아> 장건재 감독, 토미야마 가츠에 이미지포럼 대표 등이 신조 감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 모두 한일 영화인간의 교류는 물론 실질적인 연대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한편 양국 간 영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이중 신조 감독은 현장 출신이니만큼 한국영화 촬영 현장의 노동시간 변화에 관심이 많았다. 이에 대해 신조 감독은 "주52시간 촬영 제도가 정착되면서 한국영화계의 노동 환경이 크게 변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제가 봉준호 감독 영화 현장을 겪었을 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이러한 변화가 한국영화계의 새로운 흐름 변화를 이끌어 낸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 신조 감독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일의 창작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가 중요하고, 영화나 드라마들을 만드는 창작자들의 과제일 것'이라며 "한국의 노동 환경 변화도 영화나 영상 업계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향후에도 한일 영화인들이 많은 고민을 함께 나눴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평소 봉준호 감독을 '은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신조 감독. 그의 <실종>은 마치 <살인의 추억>이나 <마더>를 연상시키는 힘있고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사건의 진상을 모두 알게 된 아버지와 딸이 탁구대를 사이에놓고 탁구를 치며 무심하게 대화를 나누는 롱테이크 장면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작품이 봉 감독이나 한국영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자체만으로 귀하고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사례일 것이다.

이런 독특한 존재로 발돋움한 신조 감독은 물론 한일 영화인들의 교류와 연대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계속되고 발전하며 더 많은 합작영화가 탄생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한일간 일부 정치인들이나 일본 내 극우 단체들의 혐한 분위기와 상관 없이 말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가타야마신조 일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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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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