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의 정규 6집 리패키지 'END THEORY : Final Edition'

윤하의 정규 6집 리패키지 'END THEORY : Final Edition' ⓒ 씨나인이엔티

 
노래가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으나, 뒤늦게 재조명받아 큰 인기를 얻는 경우. 혹은 오래전에 발표된 노래가 새로운 인기를 구가하는 경우, '역주행'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다.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EXID의 '위아래'가 그랬고,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 등이 그랬다. 역주행은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발매 후 59주가 지나서야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차지한 영국 밴드 글래스 애니멀스(Glass Animals)의 'Heat Waves', 올해 6월 발매 후 틱톡 챌린지의 힘을 입어 10월에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오른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의 'Bad Habit'도 좋은 예다. 

윤하의 노래 '사건의 지평선' 역시 역주행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사건의 지평선'은 윤하가 올해 3월 30일 표한 정규 6집 < End Theory >의 리패키지 버전에 수록된 곡이다. '사건의 지평선'은 발표 당시 팬과 평단에게 일제히 극찬받은 곡이었지만, 발표 당시에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점유율 1위 플랫폼인 멜론 차트에서는 일간 최고 순위가 140위에 그쳤다.

놀라운 속도의 급상승, 그 이유는?

그러나 10월 10일 기준, '사건의 지평선'은 일간 차트 44위까지 올라 있다. 2022년 9월 24일까지만 해도 400위 바깥에 있던 이 곡은 매우 가파른 상승세를 거듭하면서 10월 4일에 멜론 일간 차트 100위권에 진입했다. 지금도 상승세는 진행 중이다. 추이 상 더 높은 순위도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타 플랫폼인 벅스 뮤직에서도 일간 차트 10위권에 진입했고, 지니 뮤직에서는 34위에 올라 있다.

무엇이 약 반년 전에 발표된 노래의 순위 급상승을 끌어냈을까? 그 단서는 9월 한달 동안 윤하가 소화한 바쁜 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윤하는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서울대학교, 충북대학교, 경기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경희대학교 등 13개의 대학교 축제에서 공연했다. 이때 노래한 '사건의 지평선'은 유튜브 쇼츠를 타고 폭넓은 음악팬을 향해 퍼져 나갔다. 6월에 참여한 '청춘 페스티벌'의 직캠 라이브 영상 역시 입소문에 힘을 보탰다.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뮤직비디오 갈무리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뮤직비디오 갈무리 ⓒ 씨나인이엔티

 
윤하는 새로운 길모퉁이에 서 있다

'사건의 지평선'이란 대중에게 낯선 용어다. 사건의 지평선이란 블랙홀의 경계면을 일컫는 표현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사건의 지평선'을 기점으로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외부에 영향을 줄 수 없게 된다. 앨범 작업 당시 과학에 푹 빠져 있었던 윤하는 이 이론에 착안해,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했다. 

경쾌하고 씩씩한 사운드 위에는 이별에 대한 은유가 담겼다. 이 곡에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화자의 성숙한 태도, 지나간 사랑에 감사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두루 담겨 있다. '문을 열면 들리던 목소리', '너로 인해 변해있던 따뜻한 공기'와도 작별을 고하는 담대함이 있다. 아련한 멜로디와 록 사운드가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곡, 그리고 윤하의 데뷔 초 음악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어려운 노래를 거뜬히 소화하는 것에 대한 감탄 역시 줄을 잇는다.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하나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 '사건의 지평선' 가사 중에서.


대중은 윤하의 많은 히트곡을 기억한다. '비밀번호 486'과 '기다리다', '오늘 헤어졌어요', 그리고 에픽하이와 함께 한 '우산'은 오늘도 전국의 노래방에서 울려 퍼지고 있을 것이다. 윤하는 대중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가수다. 그러나 윤하가 내놓는 신곡에 대한 반응은 '비가 내리는 날에는(2019)' 정도를 제외하면 크지 않았다. 화제성과 스타성보다는 두터운 마니아층의 지지가 더 눈에 띄었다. 그러나 윤하는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좋은 음악을 만들어 왔다. 6집 < End Theory >(2021)는 그의 꾸준함이 만든 역작이었다.

'사건의 지평선'의 역주행이 보여주듯, 윤하는 '좋은 노래는 시차를 두고도 사랑받는다'라는 이상적인 명제를 증명했다. '사건의 지평선'의 가파른 순위 상승은 노래 자체의 힘에 근거한다. '사건의 지평선'의 역주행이 윤하보다 훨씬 어린 대학생들 앞에서 공연한 축제 이후 시작된 역주행이라는 점에도 의미가 있다. 조금 섣부른 추측일 수도 있겠지만, 윤하의 새로운 전성기가 다가오고 있다. '사건의 지평선'의 가사처럼, 그는 지금 '새로운 길모퉁이'에 서 있다.
윤하 사건의 지평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