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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숨결"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영화사 진진

1_신앙생활로 들어서다
 
한 수녀가 신앙을 서원하는 자리가 펼쳐진다. 엄숙한 표정으로 종교에 일생을 귀의하는 현장이지만 성당 안의 분위기는 아마도 당사자의 가족과 친지들이 몽땅 모여서인지 마치 결혼식장 주변 풍경처럼 떠들썩한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주인공도 종종 웃음을 짓곤 한다. 엄숙하기 그지없을 것 같았는데 제법 흥겨운 속에 절차가 끝난 듯하다. 일가친척과 인사를 나눈 뒤, 새롭게 탄생한 수녀는 (마치 신병훈련소에 입소하듯) 문 안으로 들어선다. 화면이 어두워졌다가 천천히 정중앙에 글자가 새겨진다. '기도의 숨결'. 이 영화의 제목이다.
 
1_1. "기도하고 일하라"가 화면 가득 구현되다
 
다시 화면이 밝아진다. 수녀들이 주방에서 생선을 손질하며 식사준비를 하고 있다. 뒤를 이어 다양한 노동의 풍경이 이어진다. 기도도 끊이지 않는다. 카메라는 수도원의 일상 흐름을 요약하듯 펼친다. 시간의 개념이 바깥세상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종종 고정된 카메라에 담기는 특정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동작은 그 자체로 경건한 제의를 압축한 듯 펼쳐진다.
 
화면이 어두워지고 "한없이 작은 제가 당신 앞에 서 있나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뒤 천천히 빛이 들어오듯 밝아진다. 수도원의 기본적인 자급자족 유지를 위한 다양한 노동의 풍경이 이어진다. 수녀들은 농기계를 정비하고 밭을 돌보며 거듭 일하고 또 일한다. 그리고 식사시간. 마치 미사를 보듯 정돈된 절차와 의례 속에서 소화나 제대로 될 것인지 엄숙한 분위기가 흐른다. 식사 중인데 한쪽에선 프란체스코 교황의 설교가 낭독되는 중이다. 내용은 중동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발호해 중근동 기독교인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과 테러에 대한 신앙인의 자세다. 간소한 식사 중에도 낭독은 끊이지 않는다. 봉쇄수도원에도 세상의 혼란은 그렇게 전달되고 있었다. 다시 기도와 함께 화면이 어두워진다.
 
"저는 온전히 당신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화면이 밝아진다. 한 수녀가 이른 새벽 어스름한 가운데 조명을 켜고 아침 독서와 기도에 열중한다. 독서대에 펼친 책을 넘기는 그녀의 표정은 진지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아침이 밝자 다시 반복되는 노동의 시간. 눈에 익숙해진 농사 외에 일천수백여년 전부터 반복되어온 수도원의 고유한 업무, 지식을 기록하고 전수하는 서적에 관련된 업무현장이 집중 조명된다. 선임자 수녀에게 조언을 청해가며 후임자가 번역과 편집을 진행하는 중이다. 그리고 또 다시 단체기도, 그리고 나이든 수녀와 선배를 돌보는 후배 수녀의 일상이 조명된다. 노년이 되어 다른 곳에 있다 돌아온 초로의 수녀와 환영을 위해 마당에 모인 수도원의 식구들. 그리고 어두워지는 화면의 반복.
 
1_2. 시련과 극복의 시각화
 
"나의 하느님. 당신은 어디 계시나이까?" 익숙한 문구가 새겨진 후 펼쳐지는 풍경은 이전까지보다 훨씬 심각하고 엄숙하다. 기도가 이어지고 신앙고백과 고요 속의 묵상이 어둠을 배경으로 끝없이 계속되는 것만 같은 순간들이 이어진다. 배경에 깔리는 성가와 기도문의 내용도 한없이 무겁다. 신앙을 시험받아 온갖 불행을 겪게 된 욥의 한탄을 옮겨놓은 기분이다. 그런 피정의 시간이 지나자 휴식과도 같은 암전이 찾아든다.
 
그리고 다시 검은 화면에 새겨지는 문구는 "내가 밝은 빛을 비췄으니 너희의 하루가 빛나리라". 이제 앞장의 어두운 시련과 간증의 순간과 대비를 이루듯 눈부신 빛이 화면에 가득하다. 환한 낮의 풍경, 프로방스의 전원 속에서 수녀들은 한데 모여 즐겁게 피구놀이를 한다. 상상하지 못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는 점잖게 어찌 자매님을 공으로 노려? 하던 표정의 수녀들은 점점 열을 올려가며 시합에 임한다. 그리고 뭐가 일어나건 여학생들처럼 까르르 웃고 즐긴다. 수도원에 대한 일반의 선입견과는 무척 대조적인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열띤 승부가 끝나고 다시 어둠이 깃든다. "저를 이끌어주소서 당신의 향기를 따라 가겠나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수녀들의 노동은 이어진다. 성물을 제작하는 작업장은 경건하고 세심하다. 비록 전동공구를 사용하지만 수도원의 오랜 역사 속에서 계승되어왔을 수공예의 전통이 유구하게 연속되고 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끝에 나무 십자가가 완성된다. 그리고 또다시 기도와 함께 밤의 어둠이 깊어간다. 그리고 다시 수도원에 낮의 빛이 깃든다. 마치 태초의 어둠 속에서 “빛이 생겨라” 하니 밝은 빛이 탄생한 것처럼.
 
2_‘금단의 공간’을 다뤘던 영화들과 비교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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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을 다룬 영화들이라 하면 아마 가장 먼저 떠오를 게 다음의 작품들일테다.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 내부 풍경을 20년 동안 촬영허락을 요청한 끝에 작업해 큰 주목을 받았던 필립 그로닝 감독의 <위대한 침묵> (2005년 제작. 2009년 국내개봉)이 첫 손에 들 테다. 그리고 그 15년 후,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위치한) 한국의 카르투시오회 수도원을 기록한 2019년 KBS <다큐 인사이트> 3부작 방송 <세상 끝의 집 -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이 있다. 그리고 이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재편집한 김동일 감독의 극장 개봉버전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 (2020년 개봉>이 대중적으로 꽤나 알려진 작품들이다.
 
<기도의 숨결>은 그에 이은 수도원 다큐멘터리의 최신작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특기할 점이라면, 예전의 작업들이 봉쇄수도원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침묵 수행을 강조하던 카르투시오회의 남성 수사들을 다뤘던 데 비해 <기도의 숨결>은 수녀들의 공간을 다뤘다는 점이 이채로운 면모다. 영화의 무대인 수도원은 남프랑스 쥐크에 소재한 ‘노트르담 드 피델리테’ 수녀원으로 22세부터 90세까지 47명의 수녀 자매들이 있는 공간이다. 당연히 전원 여성들이지만, 이들 역시 기도와 독서, 노동으로 구분된 엄격한 일과를 보내는 건 남성 수사들과 동일하다. 수도원 중에서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봉쇄수도원은 대중에겐 호기심의 대상이다. 과연 그곳에선 어떤 일상이 이뤄지는 걸까?
 
중세 수도원 내부의 치부를 파헤치는 움베르토 에코 원작 영화 <장미의 이름>과는, 한참 번지수가 차이나지만 <기도의 숨결> 속 수녀원의 기본 성격은 <장미의 이름> 속 수도원과 별반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이곳은 바로 수도원의 가장 표준형 모델이라 할 베네딕도회 소속이기 때문이다. 중세유럽을 떠올릴 때 기사, 농노와 함께 첫손에 오를법한 수도원의 전형이 바로 베네딕도회다. 이 수도회는 그 이름의 유래가 된 성 베네딕토 성인(480-543년) 이후로 천오백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거의 기본 틀에 변화가 없는 활동형태를 유지해온 유서 깊은 집단이다.
 
또한 베네딕도회는 국내 수도원들의 원형이기도 하다. 가톨릭 서적 전문인 분도출판사의 '분도'가 '베네딕도'의 한글 음차라는 것만 봐도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을 테다. 그런 베네딕도회 수녀원을 카메라에 담은 <기도의 숨결>은 가장 보편적인 형태이자 중세 초기부터 이어져온 교회의 원형질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셈이다.
 
3_영화 제작에 얽힌 사연과 특별한 초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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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유서 깊고 보편적인 수도원을 배경으로, 영화는 수도원의 시간을 일반인에게 온전히 전달하는데 노력을 경주한다. 어쩌다 감독들은 이렇게 다른 소재와 배경에 비해 작업에 애로가 가득한 과제를 떠맡게 된 걸까? 만만찮은 사연이 숨어 있었다. 실제로 공동감독 중 세실 베스노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지만 2014년 겨울 동안 수도원에서 머물며 신앙생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 동기였던 이반 마시카를 끌어들여 작업을 개시한다. 신앙에 대한 열정이 피어나던 세실 베스노와 무신론자(!)인 이반 마시카의 밀고 당기기 속에서 치우치지 않는 정중동의 관찰 기록영화가 탄생한 셈이다. (세실 베스노는 결국 영화 완성 후 수녀원에 들어갔다고 한다)
 
두 공동감독은 유신론자 vs 무신론자의 관점 차와 영화학과 동기로서의 협업을 교차해가며 수도원을 소재로 한 앞선 영화들과 차별성을 오랜 기간 고민해왔을 터다. 그런 심사숙고를 가득 담은 영화는 아름다운 남부 프랑스의 전원을 배경으로 그림 속에서 불쑥 솟아난 것 같은 아름답고 정갈한 수도원을 정물화 묘사하듯 담아낸다. 실제로 이곳은 인상주의 화가의 거두로 남부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풍광을 화폭에 담았던 폴 세잔의 활동무대였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중간 중간 펼쳐지는 수도원 일대의 경치는 세잔의 그림을 쉽게 연상시키곤 한다.
 
촬영기법에선 확실한 포인트가 금방 확인된다. 인물을 잡을 때는 수녀원에 있는 47명의 수녀 개개인의 얼굴을 균등하게 담아내려는 클로즈업이 빈번하게 구사된다. 기도를 하거나 작업에 몰두하는 각각의 표정이 말없이도 각자의 결심과 의지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에 그들이 하나의 집단으로 행동하는 순간들, 미사와 단체기도, 공동식사 등의 순간에는 고정된 풀 샷이 즐겨 활용된다. 이 촬영방식의 차이가 서로 대비되며 상호 보완, 조화를 이룬다.
 
수녀들은 "기도하고 일하라 Ora et Labora"라는 수도원의 오래된 표어에 충실하기 그지없다. 이들은 하루에 7번 기도하고 독서하며 신앙을 가다듬는다. 단지 기도에만 귀의하는 게 아니라 성스러운 독서를 통해 의심과 고민을 해결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고도로 분업화된 각자의 노동으로 공동체의 삶을 영위한다. 이 주요 활동시간의 비교도 특기할 만하다. 기도와 독서의 시간은 의도적으로 어둡게 담긴다. 수녀들의 사적 신앙생활은 거의 어둠에 가깝게 표현되지만 그것은 두려움과 갈등보다는 정갈함의 발로에 가깝다. 그리고 노동의 시간은 밝고 환하게 빛을 활용하는 효과가 두드러진다. 이런 명암 대비는 수녀들의 조화로운 생활을 상징화해낸다.
 
4_세속의 일상을 벗어나는 특별한 영상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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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숨결>은 <위대한 침묵>에서 묘사된 카르투시오회 수사들의 일상풍경에서 과도하게 침묵수행이 부각되면서 마치 금욕 그 자체인 초월적 존재처럼 오해받기 쉬웠던 대외적 이미지와는 다소간의 차이가 느껴진다. 특히 피구 장면에서는 거의 청춘학원물의 단체스포츠 시합장면을 보는 듯하다. 수녀의 단체복을 입은 것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봉쇄수도원의 풍경이 앞선 영상화 작업들에서 묘사된 것만큼 딱딱하진 않다는 걸 조명하려는 듯하다. (카르투시오회는 베네딕도회에 비해 훨씬 엄숙주의적인 수도원 일파로 알려져 있다)
 
물론 수녀들의 바깥세상과는 단절된 삶이 가져다주는 전혀 다른 속도감을 대도시의 속도에 중독된 관객이 따라가기란 꽤나 만만찮은 부담일 것이다. 도시에서 벗어난 자연에서도 휴대전화와 아이패드가 없으면 곤란해 하고, SNS가 안 터지면 일분일초를 못 견디고 전전긍긍하는 우리들 아닌가. 두 시간 넘게 느릿느릿 고요하게 흘러가는 수도원 강제투어를 체험하는 격이 될 테니 상상만 해도 비명을 지를 이들도 나올 법하다.
 
그래도 <위대한 침묵> 속의 주인공 카르투시오회보다는 꽤나 소리가 자주 들리는 편이니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다만 눈꺼풀과 엉덩이는 어쩔 도리 없이 전투태세에 돌입하게 될 뿐이다. 굳이 수도원이 아니라도 템플스테이 예행연습으로 스크린 체험을 하는 셈 친다면 비유가 되려나 싶다. 그렇게 속도중독사회를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는 경험을 간접적으로라도 한번 해보고픈 이들이라면 용맹하게 <기도의 숨결>에 도전해 봐도 좋겠다.
 
작품정보

기도의 숨결 Their Breath, Leur souffle
2019|프랑스|다큐멘터리
2022.08.18. 개봉|124분|전체관람가
감독 세실 베스노, 이반 마시카
촬영 이반 마시카
편집 이반 마시카
수입 영화사 진진
배급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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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숨결 세실 베스노 이반 마시카 베네딕도회 봉쇄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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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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