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첩보전을 통해 와키자카는 측면이 부실하다는 거북선의 약점과 속력은 낮지만 선회가 쉬운 판옥선의 장점을 살려 한산 앞바다에서 학익진을 쓰려는 조선군의 작전까지 알게 된다. 실제로 전투가 시작된 이후에는 조선군의 뻔한 도발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승리의 토대를 다져나가려는 이성적인 판단도 장군감으로도, 전쟁영화 한 편의 주인공으로도 손색이 없다. 아마 평범한 전쟁영화였다면 와키자카의 이런 노력이 이순신이라는 막강한 적을 꺾는 승리의 실마리가 됐을 거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결과는 냉정했다. 이순신은 와키자카보다 한 수 더 내다보았다. 나대용(박지환)의 연구로 거북선은 충파 이후 기동이 어렵다는 약점을 개량해 왜구의 진형을 뒤흔들어 놓았다. 와키자카는 학익진의 파훼법을 알고 있었지만 적함이 50보 내에 들어와도 선회할 수 있을 만큼 훈련된 조선 격군들의 숙련도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끝까지 훼방을 놓던 원균도 '바다 위의 성'이라는 감탄사를 내뱉게 만든 이순신의 지략과 철저한 준비성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펼쳐진다. 어릴 때부터 성웅 이순신의 무공을 듣고 자란 한국인이면 버티기 힘든 카타르시스다.
<한산>의 또 다른 장점은 영화적이라는 사실이다. 학익진은 전 국민이 알지만 (그 역시 상상 속이지만) 실제로 펼쳐지는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 또한 밀리터리나 역사 마니아가 아니라면 중세의 전함이 어떤 형태로 전진하고 수비를 하는지, 견내량에서 한산 앞바다로 이어지는 지형의 생김새와 그를 활용한 전투가 어떻게 펼쳐지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한산>을 본 사람은 학익진은 물론이고 그의 파훼법인 어린진이 어떤 모양인지도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다. 고대 해전에서 지형지물과 전함의 특성에 따라 전략이 어떻게 달리 전개되는지 <한산>만큼 알기 쉽게 그린 영화는 할리우드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내적완결성의 부재는 장점인가 단점인가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투에 치중에 탓일까. <한산>에서 뽑아낼 수 있는 서사적 감동은 액션의 쾌감만큼 짙지 않다.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고 명명했음에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임진왜란이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과 무엇이 다른지는 관객에게 쉬이 전달되지 않는다.
도입부에서 말한 '왜구체험' 에피소드처럼 <한산>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다면 온전히 즐기기 어렵다. 극 중에서 이순신 장군의 대사는 출격하라, 발포하라 등 기능적으로 밖에 쓰이지 않는다. 어떤 전략을 사용할 것인지 묻는 부하들의 질문에도 그저 입을 다문다. 고뇌와 심사숙고가 의사소통의 단절은 아닌데 말이다. <한산> 명대사가 <헤어질 결심>에서 박해일이 연기한 해준의 대사들로 치환된 것도 이순신이란 캐릭터 구성의 실패와 맥락이 다르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내적완결성이 결여됐다는 이 단점을 장점으로 연결 지어 모순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노량>이 남았기 때문이다. 와키자카는 두려움을 전염병이라고 판단해 아군을 베었다. 이순신 장군은 그런 와키자카를 물리치고 <명량>에 이르러서는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방법을 고민했다.
'마침내' 두려움을 극복한 한국사 최고의 명장이 이끌 비장한 최후의 전투가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가 없다는 거짓말은 할 수 없겠다. 또 한 번의 왜구 체험이 적잖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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