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색의 화이트 앨범 재킷.
유니버설뮤직코리아
리시케시에 같이 있었던 동료 가수 도노반에 따르면,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아슈람에 있을 때 어쿠스틱 기타를 한시도 손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주로 그들이 묵던 숙소 앞에 앉아 기타를 쳤지만, 어딜 가더라도 기타를 지니고 다녔다. 그러면서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노래를 만들었다.
두 사람 가운데 존 레논은 '디어 프루던스'를 비롯해 '줄리아', '아임 소 타이어드', '여 블루스', '해피니스 이스 어 웜 건', '에브리바디스 갓 섬싱 투 하이드 익셉트 미 앤 마이 멍키', '레볼루션', '크라이 베이비 크라이', '더 컨티뉴잉 스토리 오브 방갈로 빌(The Continuing Story of Bungalow Bill)', '섹시 세이디(Sexy Sadie)', 1969년 <애비 로드> 앨범에 수록되는 '민 미스터 머스터드(Mean Mr. Mustard)'와 '폴리틴 팸(Polythene Pam)', 그리고 '젤러스 가이(Jealous Guy)'로 제목이 바뀌어 1971년 솔로 앨범 <이매진>에 실리는 '차일드 오브 네이처(Child Of Nature)' 등을 작곡했다. 멤버들 중 가장 많은 노래를 작곡한 것이다.
그중에서 '줄리아'는 '디어 프루던스'와 더불어 존 레논이 아슈람에서 도노반에게 배운 핑거스타일 기타 주법을 선보이는 곡으로,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 줄리아 레논에게 바친 작품이다. 그리고 동시에 '바다의 아이' 오노 요코에 관해 언급한 노래다. 그는 1980년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곡은 사실 요코와 우리 어머니의 이미지가 중첩된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에브리바디스 갓 섬싱 투 하이드 익셉트 미 앤 마이 멍키'에서는 오노 요코를 "내 원숭이"라는 가사로 표현하고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가 명상강의 때 자주 사용하던 "컴온, 잇츠 서치 어 조이/테이크 잇 이지(Come on, it's such a joy/take it easy)" 같은 표현을 후렴구로 사용했다. 특히 이 곡은 당시 리시케시에서 존 레논이 집중했던 명상과 오노 요코의 존재, 그 둘 모두를 다룬 작품이라는 특색이 있다.
그밖에 '에셔 데모' 트랙 가운데 '차일드 오브 네이처'라는 곡은 존 레논이 대자연에 관해 이야기하던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강연을 듣고 영감을 얻어 작곡한 어쿠스틱 넘버로, 폴 매카트니가 만든 '마더 네이처스 선'과 맥을 같이 한다. 이 곡에서 존 레논은 자연을 통해 변화되어 가는 자기 모습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리시케시로 가는 길
나는 거의 꿈을 꾸고 있었어
그리고 내가 꾼 꿈은 사실이었지
그래, 내가 꾼 꿈은 사실이었어
나는 그저 자연의 아이일 뿐이야
날 자유롭게 해 줄 많은 건 필요 없어
나는 자연의 아이일 뿐이니까
나는 자연의 아이들 중 하나니까
사막의 하늘을 바라볼 때
네 눈에 비치는 햇빛
그리고 내 생각은 집으로 돌아가네
그래, 내 생각은 집으로 돌아가네
나는 자연의 아이일 뿐이야
날 자유롭게 해 줄 많은 건 필요 없어
나는 자연의 아이일 뿐이야
나는 자연의 아이들 중 하나야
산맥 아래
변하지 않는 바람이 있는 곳
내 영혼의 창문을 만져봐
내 영혼의 창문을 만져봐
나는 자연의 아이일 뿐이야
날 자유롭게 해 줄 많은 건 필요 없어
나는 자연의 아이일 뿐이야
나는 자연의 아이들 중 하나야
- '차일드 오브 네이처' 중에서
이 곡은 전체적으로 '화이트 앨범'의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리지만, 아쉽게도 비틀스 음반에 실리지 못했다. 폴 매카트니가 쓴 '마더 네이처스 선'과 이미지가 다소 겹치기도 하고, 앨범에 존 레논 작품이 너무 많이 실려서 빠졌거나, 어쩌면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에 대한 존 레논의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대신 '차일드 오브 네이처'는 가사가 완전히 교체되고 제목도 '젤러스 가이'로 바뀐 뒤 1971년도 존 레논의 솔로 앨범 <이매진>에 수록됐다.
▲비틀스 화이트 앨범 50주년 기념 4LP 박스세트 재킷 이미지. 앨범 미수록곡인 ‘차일드 오브 네이처’의 데모 트랙이 담겼다.유니버설뮤직코리아
인도에서 존 레논이 쓴 곡 중 가장 논란이 된 노래 하나는 오노 요코가 보컬리스트로 참여한 '더 컨티뉴잉 스토리 오브 방갈로 빌'이다. 언뜻 듣기에 이 노래는 쾌활한 분위기의 동요 같지만, 실상은 호랑이 사냥꾼을 날카롭게 고발하는 작품으로, 아슈람에서 비틀스 담당 책임자이자 마하리시의 보좌관이었던 낸시 쿡 드 헤레라와 그녀의 아들 릭 쿡이 벌였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대학교 운동선수 출신으로, 멀리 미국에서 어머니를 보러 리시케시에 온 릭 쿡은 명상원 생활이 심심했는지 어느날 어머니와 함께 주변 정글로 원정 사냥을 나섰다. 그리고 총으로 호랑이를 쏴 죽인 뒤 아슈람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명상원에 들어서면서 그는 갑자기 죄책감을 느꼈고, 두려움 속에서 당시 비틀스와 함께 있었던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를 찾아가 물었다.
"제가 나쁜 업보를 지은 건가요?"
사실 엄격히 채식을 지키는 등 자비를 강조하고 살생을 금지하는 아슈람에서 생명체 사냥이란 있을 수 없었다. 마하리시가 그에게 대답했다.
"너는 욕망이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욕망이 없는 게로구나?"
당사자인 릭 쿡과 비틀스의 다른 멤버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이, 존 레논이 참지 못하고 개입했다.
"그게 생명을 파괴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자 옆에서 릭 쿡의 어머니이자 호랑이 사냥 때 아들과 함께 있었던 낸시 쿡 드헤레라가 자신들을 방어하려고 호랑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음, 존, 호랑이가 아니면 우리가 죽을 판이었어요. 우리한테 호랑이가 뛰어들었다고요."
그러나 나중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릭 쿡, 낸시 쿡 모자가 호랑이 사체 뒤에서 웃으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 발견되었고, 이들의 이중성에 역겨움을 느낀 존 레논은 얼마 후 "이봐, 방갈로 빌, 뭘 죽였어? 방갈로 빌?"이라는 신랄한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를 썼다.
이봐, 방갈로 빌. 뭘 죽였어? 방갈로 빌?
이봐, 방갈로 빌. 너 뭘 죽인거야? 방갈로 빌?
그 남자는 총, 코끼리와 함께 호랑이 사냥을 나갔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그는 항상 자기 엄마를 데려갔어
그 남자는 미국에서 가장 고집 센 색슨족 어머니의 아들이야
모든 아이들이 노래하네
이봐, 방갈로 빌. 뭘 죽였어? 방갈로 빌?
이봐, 방갈로 빌. 너 뭘 죽인거야? 방갈로 빌?
힘쎈 호랑이가 있는 정글 속 깊은 곳에서
빌과 그 자가 데려간 코끼리는 깜짝 놀랐지
그래서 '캡틴 마블'은 그 두 눈 사이를 쏜거야
모든 아이들이 노래하네
이봐, 방갈로 빌. 뭘 죽였어? 방갈로 빌?
이봐, 방갈로 빌. 너 뭘 죽인거야? 방갈로 빌?
- '더 컨티뉴잉 스토리 오브 방갈로 빌' 중에서
이 곡에서 존 레논에게 저격당한 릭 쿡은 리처드 A. 쿡 3세라는 본명 대신에 '방갈로 빌'이라는 별명으로 영원히 박제되었다.
폴 매카트니의 창작 활동
한편, 폴 매카트니도 아슈람에 머물면서 훌륭한 작품을 여럿 창작해냈다. 이 시기 그가 리시케시에서 쓴 곡은 '마더 네이처스 선', '백 인 더 유에스에스알.', '블랙버드', '와이 돈트 위 두 잇 인 더 로드?(Why Don't We Do It In The Road?)', '오블라디 오블라다', '로키 라쿤', 그리고 매카트니 곡으로는 유일하게 화이트 앨범에 실리지 못한 채 1970년 첫 솔로 앨범 <매카트니>에 수록되는 '정크(Junk)'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블랙버드'는 리시케시 체류 시절 폴 매카트니가 아침 시간에 검은대륙지빠귀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매카트니는 새를 염두에 두고 쓴 거라기보다는 흑인민권운동과 관련하여 어느 흑인 여성에게 보내는 노래였다고 새로 밝혔다.
그밖에 '마더 네이처스 선', '와이 돈트 위 두 잇 인 더 로드?', '로키 라쿤' 등은 모두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강의, 혹은 대자연의 섭리에 영감을 얻어 만든 자연 친화적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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