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공작도시>의 한 장면
JTBC
재희(수애 분)는 자신을 믿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대신, 더 빨리 더 쉽고 강하게 권력을 취하기로 결정한다. 바로 결혼을 통해서다. 재희는 자신의 욕망을 대리할 상대로 재벌가 미운 오리새끼인 준혁(김강우 분)을 선택한다. 적당히 가졌고 적당히 열등한 재벌가 혼외자 준혁과의 결혼을 디딤돌 삼아, 성장기 내내 자신의 자존감에 타격을 입힌 세상에 일전을 고한 셈이다. 그러나 욕망이란 본디 무엇을 위해 어떻게 나아가느냐에 따라, 해방이 되기도 하지만 더 벗어날 수 없는 감옥에 갇히게도 한다. 불행히도 재희의 그것은 후자로 향한 듯하다.
재희는 어정쩡한 자신의 계급이 사는 내내 답답했다. 판사라는 아버지의 번듯한 타이틀은 강직하고 청렴한 아버지의 성품 탓에(당연한 직업윤리임에도), 성장기 내내 재희를 화려하고 빛나는 소녀로 자라게 하지 못했다. 차라리 세상을 향해 분노를 분출할 만큼 가난하던지, 남들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아빠 찬스'를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늘 애매하고 갑갑했다. 그런 만큼 아버지의 무능이 싫었고, 자신의 초라한 신세를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시나리오는 오직 잘나가는 남자를 골라 그와 함께 도약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비틀어진 욕망을 좇아 결혼에 성공했고, 바야흐로 남편 대통령 만들기에 돌입한다.
과속방지턱도 아랑곳없이 돌진하는 재희의 욕망을 바라보다 숨이 찬 시청자는 문득, 그의 욕망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드라마는 재희를 통해, 여성은 누구나 기회만 온다면 준혁과 같은 상대와 결혼하기를 갈망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것이 아직도 성공적인 결혼을 바라는 여성의 보편적인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분명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발원하고 있을 이 끈질긴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어도 괜찮은 걸까.
재희는 자신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부모의 든든한 지원 없이는 도저히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돌아온 것은 기회의 대가로 성 상납을 요구하는 예술계 권력의 끈질긴 추근거림뿐이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결혼이라는 거래였지만, 그 결혼의 상대 역시 외도와 성 상납을 힘 있는 남성의 당연한 과실이라고 믿는 마초 남성성의 담지자다.
그렇다면 재희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온갖 모역과 혐오를 감내하면서 취할 성공이라는 목표가 과연 가치 있는 욕망일까. 쇼윈도 부부를 연출하며 모두를 속이는 입양을 감행하고, 갖은 위법한 권모술수로 남편에 조력하고, 남편의 외도 상대인 여성을 모욕함으로써 자신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걸까.
"온 세상이 남편을 우러러 보게" 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내달리는 재희의 욕망은 그러다 숨이 차 헐떡이며 괴로워진다. 비열해진 자신이 혐오스럽던 어느 날, 자신의 눈앞에 돌연 나타난 이설(이이담 분)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재희와 이설 사이의 밀고 당기는 묘한 정동은 분명, 우정 이상의 무엇을 품으며 이들 사이의 감정이 성애적인 욕망일지 모른다고 추측하게 한다.
그러나 이설의 접근이 우연이 아니고 목적을 가진 의도였다는 점에서, 이설이 재희를 향해 "좋은 사람"이므로 "지켜주고 싶다"고 선회한 믿음은 설득력이 약해진다. 재희는 이설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보편의 선과는 꽤 큰 이격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설이 재희를 "좋은 사람"의 자리에 되돌리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이 공모가 여성 연대로 나아가려면, 남성 권력에 균열을 낼만한 해방적 목적이 있어야 한다.
왜 아직도 조선시대 여성을 떠올리는 서사가 넘쳐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