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아이들은 '반면교사(본이 되지 않는 남의 말이나 행동이 도리어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경우)'라는 말을 즐겨한다. 자신들에게 유전자를 전해준 부모지만 그 부모의 닮고싶지 않은 모습을 자신들 삶의 경계로 삼겠다는 의지다. 아들이건, 딸이건 성장의 어느 시점에서 이와 같은 딜레마에 봉착한다. 닮아서 닮고 싶지 않다 라는 이 딜레마를 겪으며 어른으로 삶의 태도를 결정하게 된다. 

 
 경관의 피

경관의 피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1월 5일 개봉한 <경관의 피>, 영화는 최민재라는 풋내기 경찰의 시선을 따라간다. 보는 이로 하여금 경계를 풀도록 만드는 선한 인상, 하지만 그 선한 인상 속에 얼핏얼핏 드러나는 섬세한 감정의 결은 그의 출렁이는 마음을 고스란히 공감하도록 만든다. 아마도 이게 민재 역을 맡은 최우식 배우의 강점이 아닐까. 영화는 원칙적이다 못해 고지식해서 선배 형사의 강압적 수사를 시인하고, 그로 인해 조직내 '왕따'가 되어버린 신참 형사 민재의 시선을 쫓는다.
 
민재, 언더커버를 선택하다

그런 그에게 감찰계장 황인호(박휘순 분)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최민재와 정반대인 듯한 존재 박강윤(조진웅 분)에 대한 은밀한 수사를 위해 '언더커버'를 하라고 한 것이다. 박강윤은 압도적인 실적을 자랑하는 광수대의 에이스이다. 하지만 그의 수사는 무리가 따른다. '범죄 추적은 어떠한 경우에도 무리가 되지 않는다'는 그의 신념은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오가며 '경찰직'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감찰계장 황인호의 신경을 거스른다. 심지어 그가 사는 고급 빌라, 그가 입는 명품, 그가 타는 외제 차에 그가 펑펑 써대는 수사비의 출처가 의심스럽다. 

하지만 최민재가 박강윤 수사를 위한 광수대 '언더커버'가 되려고 선택한 데는 단지 박강윤 때문만은 아니다. 황인호가 넌지시 풍긴 아버지의 비밀 때문이었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순직자도 되지 못한 아버지, 경찰만은 되지 말라며 따귀를 올려부치던 아버지의 뜻과 달리 경찰의 길을 걷게 된 민재에게 아버지는 해묵은 숙제였기 때문이다. 제목처럼, 아버지에 이어 경찰을 하게 된 민재네 집안의 '피', 과연 그 피의 색깔은 어떤 것일까, 민재는 의심은 조금씩 커져간다. 

최민재의 시선은 줄곧 박강윤을 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배치되자마자 대번에 최민재를 자신의 파트너로 택한 박강윤 덕분에 최민재는 더욱 강윤의 옆에서 그를 지켜보며 '경찰'의 존재론을 고민하게 된다. 

<경관의 피>라는 어딘가 문어적인 제목에서 부터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일본의 소설가 사사키 조가 집필한 경찰 3대에 걸친 대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일제 패망 직후 경찰이 된 할아버지에서 부터 손자에 이르는 장대한 작품은 2009년부터 인기 드라마로 만들어 졌다. 원작 속 박강윤의 캐릭터 가즈야 히토시와 주인공 안도 가즈야는 미묘한 대립과 갈등 관계의 캐릭터이다. 이러한 원작 속 캐릭터를 영화는 아버지 대 서사와 손자의 서사를 뒤섥으며 '버디 무비' 형식의 수사물로 재창조한다. 

원작에서도 주인공은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숙제로 떠안는다. 처음엔 그저 고지식한 경찰 최민재가 맞닥뜨린 신념에 대한 이야인 것처럼 보인 영화는 점차, 그가 마주한 박강윤을 통해 마음에 묻어두었던 아버지에 대한 질문으로 구체화된다.
 
 영화 <경관의 피> 관련 이미지.

영화 <경관의 피> 관련 이미지.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법학과를 나왔음에도 굳이 경찰직을 선택한 최민재에게 아버지는 '이상적 모습'이었다. 박강윤이란 인물을 수사하면 할 수록 최민재는 박강윤이 부도덕한 경찰이라 말한 황인호의 생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갈피를 못잡는 중에 솟아오르는 건 아버지의 죽음 그 시점에 머무른 최민재의 '내면 속 아이'이다. 갈등이 깊어갈 수록 그의 눈 앞에서 범죄자를 잡다 죽어간 아버지의 그 시절이 자꾸 오버랩된다. 

성장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넘어서는 과정이다. 앞서 언급한 '반면교사'라는 단어처럼 자신과 어른, 가장 직접적으로는 부모와의 경계를 분명하게 긋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아이는 태어나서 자신을 보호해주는 부모를 내면화한다. 엄마의 존재가, 아빠의 존재가 곧 자신이다. 하지만 조금씩 자라나는 아이들은 안다. 자신은 부모와 다른 또 하나의 존재라는 걸, 그 다름을 통해 나를 알아가야 하는데, 부모가 어떤 존재인 줄 모른다면 또다른 문제다. 

박강윤과의 만남은 어린 시절에 묶어둔 '아버지'에 대한 의문을 끄집어 낸다. 그리고 그건 마치 글로 사랑을 배우듯, 그의 머릿속에서 그려낸 이상적인 아버지, 즉 '판타지'로만 존재했던 '어른'의 세계에 대한 질문이 된다. 굳이 아버지가 격렬히 반대했음에도 경찰이 된 최민재, 어쩌면 그 시절에 잠궈두었던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는 역으로 최민재로 하여금 더 고지식한 경찰이 됨을 통해 '순직'의 명예도 갖지 못한 아버지를 '보상'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언더커버로서  황인호가 그에게 주입했던 부도덕한 박강윤에 대한 신념에 혼란스러워하던 절정의 순간, 돌아서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박강윤'이 되는 장면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수사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박강윤이 가진 믿음, 그리고 그걸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으려는 과정을 함께 하며 최민재는 부도덕했을 지도 모를 아버지라는 그의 묵은 '트라우마'에 새로운 해석을 한다. 아마 아버지도 박강윤처럼 그랬으리라. 오래도록 그의 어깨를 움츠리게 만들었던 아버지에 대한 그의 아픔도 치유되어 가는 듯하다. 처음 박강윤이 집어주는 명품에 주늑들던 최민재가 중반을 넘어서면 박강윤 미니비가 되어가듯이 말이다. 

하지만 무모한 박강윤의 수사는 결국 그를 옭죄는 포승줄이 된다. 범인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민재의 얼굴에 드릴을 들이대며 피를 보는 걸 마다하지 않는 '수사 제일주의'를 앞세운 그의 신념은 그가 속한 경찰 내 비밀 조직에 위협이 된다. 그리고 위험한 그를 쳐내기 위한 경찰 내 비밀 조직의 이해와 그를 잡으려는 황인호가 '의기투합'되며 박강윤은 그가 저지르지 않은 혐의로 구속되는 신세에 이른다. 

 
 경관의 피

경관의 피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최민재의 선택

또 다시 아버지를 억울하게 잃어야 할까? 하지만 이제 최민재는 더는 아이가 아니다. 처음 언더커버를 선택하던 때의 최민재처럼 황인호이거나, 박강윤이라는 양자 택일 앞에 고민하는 융통성 없는 소년이 아니다. 정의를 부르짖으며 박강윤이 저지르지도 않는 혐의를 덮어씌운 황인호의 또 다른 부도덕을 알아챌만큼 성장했다. 또한 큰소리를 치고 수사를 위해 물불을 안가렸지만 마약상의 돈을 빌려 수사를 할 처지에 몰리기도 하는 박강윤이 가진 무모함의 한계 또한 깨달을 나이가 되었다. 

영화는 최우식이 가진 어수룩한 아이의 캐릭터에 조진웅이란 배우가 가진 전무후무한 카리스마의 '남성성'을 대치시키며 최민재란 인물의 성장 서사를 이끌어 간다. 또한 체격과 인상, 그리고 연기 모든 면에서 대비되는 두 인물이 한 팀으로 호흡을 맞추며 때론 이끌고, 때론 대립하는 과정을 통해 전형적인 남성 버디 무비의 형식을 완성해 간다.

하지만 원작의 충실한 서사에 힘입어 고뇌하는 햄릿과 같던 최민재의 갈등이 전형적인 헐리웃 오락 수사물처럼 간단명쾌하게 마무리되며 오히려 영화를 끌고왔던 묵직한 긴장감이 풀려버린다. 마치 어른으로 사는 건 다 그런 거야 하고 어깨를 툭툭치며 유흥가로 이끄는 듯한 통쾌한 엔딩 이후, 극장 문을 나서며, 다시 묻게 된다. '정의'란 무엇일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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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그리고 그림책, 다시 길을 떠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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