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논란에 휩싸인 tvn의 수목 드라마 <홈타운>은 이제 1%의 고지를 앞두고 있다. '등정'이 아닌 '하산'의 고지이다. 하지만, 그 하산의 고지는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섬뜩한 귀신을 등장시키며 이목을 집중시켰던 <홈타운>이지만 2회를 마쳤을 때도, 중반을 넘어선 7회를 마쳤을 때도 꾸준히 지켜본 시청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건 '이구동성'이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고.

<홈타운>을 지켜보며 느꼈던 쎄한 기운을 묘하게도 야심차게 tvn 창립 15주년 특집 드라마 <지리산>에서 다시 한번 경험한다. 2회를 마친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무얼 말하려고 하는 드라마지? 
 
 지리산

지리산 ⓒ tvn

 
김은희 작가와 이응복 연출의 만남 

<지리산>은 <시그널>과 <킹덤>의 김은희 작가와 <미스터 선샤인> <스위트홈>의 이응복 연출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거기에 전지현을 비롯하여 주지훈, 성동일, 오정세, 조한철 등 출연진의 면면이 화려하다. 어디 그뿐일까. 1회에서부터 주인공들보다 더 시선을 끄는 건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조차 없는 깊은 골짜기와 끝없이 펼쳐진 능선들의 지리산이다. 보고 있노라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지리산'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드라마는 생과 사의 경계로서 영묘한 지리산을 앞세운다. 산세가 험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곧잘 폭우가 쏟아지고 그로 인해 계곡이 범람하는 곳이다. 그 '험한 산세'는 지리산으로 하여금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잉태하도록 만든다. 6.25 전쟁을 겪으며 지리산은 이데올로기의 격전지가 되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빨치산의 주요한 활동 근거지였고, 그래서 전쟁 후 피비린내 나는 '토벌'의 공간이 되었다. 

즉 숱한 영령이 그 생을 다하지 못하고 스러진 공간, 거기에 드라마는 2화에서 마을잔치처럼 벌어지는 '제사' 의례를 통해 1995년 집중호우로 인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앗아간 수해의 비극을 더한다. 자신의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이 저승에 편하게 가지 못하고 원귀가 되어 이승을 떠돌지 않을까 하는 <전설의 고향>과 같은 분위기가 자연스레 든다. 

그런데, 신입 레인저로 등장한 강현조(주지훈 분)가 그 분위기를 복돋운다. 전직 육군 대위로 지리산 행군 때 부하를 잃은 이후로 지리산에서 죽음의 위기를 맞는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그래서 그는 조난 구조대원 '레인저스'를 자임했다. 

그렇게 죽음과 삶의 경계적 공간 지리산 그리고 그곳에서 헌신적으로 삶을 건져올리는 조난 구조대원을 통해 스릴러의 배경을 풀어낸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닥친 죽음의 위기를 '보는' 강현조의 등장으로 홀로 산속에 들어간 왕따 소년을 구해내는가 싶더니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2020년이 된다. 

2018년에 산을 내 집처럼 펄펄 뛰어다니던 주인공 서이강(전지현 분)은 그로부터 2년이 흘러 휠체어 신세가 된다. 그녀를 '선배'라 부르던 강현조는 병원 중환자실에서 생과 사를 오간다. 그런데 그 생과 사를 오가는 강현조가 2화 엔딩에서 신입 레이저 이다원의 눈 앞에 등장한다.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또 한 편의 <시그널> 

과거와 현재, 과거의 인물이 현재의 사건에 끼어드는 모티브, 아마도 김은희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보아왔던 시청자들이라면 자연스레 <시그널>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시그널>은 무전기를 매개로 과거의 이재한 형사와 현재의 박해영이 소통한다. 그리고 그걸 통해서 과거의 미제 사건을 해결해나가고, 그 사건들의 배후에 있는 권력을 폭로한다. 미해결 장기 미제 사건은 우리나라 스릴러 드라마의 단골 소제였지만, 거기에 무전기를 통한 과거와의 소통이라는 절묘한 장치를 통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지리산> 역시 <시그널>처럼 현역에서 레이저로 활약하는 두 주인공의 과거와 이제는 발이 묶인 두 주인공의 현재를 대비시킨다. 그리고 거기에 무전기와 같은 듯 다른 '소재', 빨치산의 길잡이를 등장시킨다. 

험준한 지리산에 암약했던 빨치산들은 혹시나 길을 잃은 동료들에게 길을 알려주기 위해 돌무더기와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방향을 알려주었다고 드라마는 소개한다. 그런데, 그 오래전 과거의 '장치'들이 강현조가 자신만의 눈에 보이는 '환영'을 따라 길잃은 소년을 찾아간 깊은 골짜기에서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빨치산의 길찾기' 장치들이 이제 2020년에 돌아온 서이강이 본 재난 현장 사진 곳곳에서 등장한다. 

빨치산의 돌과 나뭇가지를 활용한 '길잡이'는 오늘날 등산을 하는 이들의 노랗고 빨간 리본과 등치된다. 그리고 드라마 속 누군가는 산속에 묶어 길잡이 역할을 하는 노란 리본을 다르게 묶어 놓는다. 그리고 그 리본을 따라가던 강현조를 가파른 벼랑으로 내몰린다. 

시대를 거슬러 길잡이가 되어주는 빨치산의 돌과 나뭇가지 그리고 반대로 죽음의 길잡이가 되어버린 노란 리본은 삶의 길이기도 하고, 죽음의 길이 될 수도 있는 지리산을 상징한다. 
 
 tvn <지리산>의 한 장면.

tvn <지리산>의 한 장면. ⓒ tvn

 
그런데 문제는 과거와 현재의 '소통' 도구로서 탄성을 자아내게 했던 '무전기'와 달리, 극중 주요한 장치인 '빨치산의 길잡이'가 도무지 보는 이들에게 '소통'에 대한 공감을 주지 못한다. 돌을 모아놓고, 거기에 나뭇가지를 꽂으면 지리산의 모처를 상징한다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대번에 아는데, 시청자들은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보기 시작하니 거기서부터 시청자와 소통이 '불통'이다. 

김은희 작가는 지리산을 오르는 이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노란 리본에서부터, 빨치산의 길잡이였던 돌과 나뭇가지까지를 아우르며 현대사의 공간으로서 지리산과 그 속에서의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인 사건'을 통해 풀어보고자 하는 야심찬 의도를 가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시그널>이 무전기를 통한 과거와 현재라는 판타지적 장치를 통했음에도 거기서 벌어진 사건들이 시청자들에게 당시 시대 상황에서 충분히 공감의 요소를 가졌던 것과 달리, 2화까지 보여준 <지리산>이 보여준 광대한 스케일 안에서 벌어진 과거와 현재의 '소통'과 사건들이 안타깝게도 스릴러적 '절박함'을 보여주는 데 미흡한 듯하다.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에서 '산'은 익숙한 장소이다. 하지만 그 산에서 벌어지는 조난 사건은 친숙한 사건 사고이기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데 흡인력 있는 장치는 아니다. 사주시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 사이비 종교의 음모론이 시청자들을 유인하는 데 미흡했던 <홈타운>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은희 작가와 이응복 연출은 이전 작들에서 보여준 그들만의 '장기'를 내보이며 이번에도 시청자들을 감복시킬 수 있을까? 신선한 소재와 쟁쟁한 출연진들의 화려한 밥상이 이번에도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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