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발매되었던 보아의 미국 데뷔 앨범 < BoA >
SM 엔터테인먼트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신드롬 이전만 해도, 한국 가수가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려웠다. 특히 2000년대 후반 케이팝의 미국 진출 초기는 고난의 역사였다. SM 엔터테인먼트의 간판이자 '아시아의 별'로 불렸던 보아가 빌보드 200 차트에서 127위에 올랐던 것이 한국 가수의 첫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이었다.
한국 가수 중 처음으로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한 주인공은 걸그룹 원더걸스였다. 원더걸스는 그룹 조나스 브라더스의 전미 투어에 오프닝 가수로 동행했고, 직접 팬들을 근거리에서 만나는 등 현지화 전략에 집중했다. 그 결과 'Nobody'의 영어 버전이 핫 100 차트에 76위로 진입하는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원더걸스의 미국 활동이 일으킨 반향은 한국에서의 열풍에 비해 미미했다.
최근 원더걸스 출신의 선미와 함께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프로듀서 박진영은 "잘 안 되면 욕을 먹는 것"이라며 실패를 인정했다. YG 엔터테인먼트의 세븐도 2009년 래퍼 릴 킴(Lil' Kim)과 손을 잡고 'Girls'를 발표했으나 역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의 '3대 기획사'가 모두 비슷한 시기에 미국 진출에 실패한 것.
긴 시간이 지났다. 2021년 현재, 미국 빌보드의 간판 차트인 핫 100 차트(싱글 차트)와 빌보드 200 차트(앨범 차트)에서 케이팝 그룹을 찾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케이팝은 이제 전 지구적인 현상이며, 더 이상 마니아들만이 향유하는 서브 컬쳐 정도로 평가받지 않는다.
지난 7월 17일,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K팝은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나(HOW K-POP CONQUERED THE UNIVERSE)"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게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캐치한 음악과 높은 수준의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 등을 활용한 능숙한 소통 방식 등을 케이팝 현상의 주된 이유로 설명했다. 2010년대 초반을 거쳐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가 큰 성장을 거듭한 것은 케이팝의 전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총공'이라고 불리는 케이팝 팬덤의 지원 문화까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성장을 거듭한 케이팝은 매년 최전성기를 경신하고 있다. 빌보드 차트는 이를 증명하는 좋은 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