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나면 마치 영화 속 배경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이 다큐멘터리라면,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찍은 다큐멘터리라면 더욱 그렇다.
필리핀 다큐멘터리 <바다에서 마지막 날들>을 보고 나오는데 내 앞의 어느 관객이 곁에 선 친구에게 말했다. "필리핀 바닷가에 다녀온 것 같아" 하고.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영화다.
필리핀 바닷가라 했지만 다 같은 바다가 아니다. 부산 해운대와 인천 을왕리, 자갈이 깔린 보길도 외딴 바다와 원자력 발전소가 우뚝 솟은 울주군 바다가 다른 것처럼.
영화는 필리핀 카리하타그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필리핀 가장 남단의 민다나오섬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필리핀이라 한다면 대부분 마닐라와 세부를 떠올리겠지만 카리하타그는 그중 어느 곳과도 비슷하지 않다. 하지만 필리핀 사람이라면 마닐라와 세부보다 카리하타그가 더 필리핀스러운 곳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더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