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능선은 설악산에 있는 능선으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03호로 지정되어 있다. 연이어진 암봉들이 공룡의 등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장대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밴드를 하는 율제병원 5인방은 원래 '공룡능선'이라는 등산 동아리로 시작했다고 한다. 이름만 공룡능선일 뿐 한번도 능선을 타지 않았던 5인방은 휴일을 맞춰 설악산으로 떠나기로 한다.

정원(유연석 분)은 비선대까지만이라도 등산을 하자고 하지만 석형(김대명 분), 익준(조정석 분), 준완(정경호 분)은 강하게 반대한다. 산을 오르는 문제에 대해 비장하게 설왕설래하는 이들의 모습은 웃음을 주지만, 이후로 전개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0화의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10화의 이야기는 산을 오르듯 험난한 고비를 맞이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 고비를 넘고도, 공룡능선처럼 끝없는 이어진 또다른 고비 앞에 선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포스터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포스터 ⓒ tvN

 
엄마의 목소리 외면한 겨울

간담췌외과 펠로우 장겨울(신현빈 분)의 비밀스런 사연이 밝혀진다. 겨울은 정원에게 자신의 집안 일을 이야기한다. 아빠의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겨울은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집을 벗어난다. 겨울은 그제서야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무섭지 않았다고 말한다. 동생 가을도 서울로 진학하면서 광주 본가에는 엄마 혼자 남겨진다. 가을은 괜찮다는 엄마의 목소리 속에서 여전한 아빠의 폭력을 감지하면서도 모른 척했다고, 이제는 엄마를 혼자를 놔둘 수 없다고 말한다.

아빠의 폭력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고 삶의 의욕까지 잃은 엄마를 이야기하며 겨울은 눈물을 흘린다. 엄마를 홀로 놓고 서울로 떠나오면서 겨울은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했을 것이다. 겨우 찾은 평화를 놓치고 싶지 않아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엄마를 외면했을 것이다.

위기의 순간, 선택하기 쉬운 것 중 하나가 회피이다. 눈을 질끈 감고 피하면 복잡하고 골치 아픈 사정들을 해결하기 위해 더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눈을 감는다 하여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잠시 보이지 않을 뿐이다. 회피한 많은 문제들은 언젠가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엄마의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러 겨울은 깨달았을 것이다.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나도 행복하지 않아"라는 겨울의 말처럼 엄마를 외면한 채 결코 겨울만 행복해질 수는 없다. 

어린 겨울이 할 수 없었던 일을 성인의 겨울은 했어야만 했다. 엄마의 방식이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동생 가을과 협력하여 그 문제를 감당해야 했다. 그들이 삶의 고비를 넘긴 방식은 또다른 상처를 만들기 마련이다. 겨울이 정원이 준비한 프로포즈 자리에 나가지 못하게 되고, 가을이 파혼을 당하는 드라마의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가장 행복해야 할 인생의 순간을 그들은 즐기지 못한다.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외면한 문제가 여전했기 때문이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0화 한 장면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0화 한 장면 ⓒ tvN

 
겨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원은 자책하지 말라고, 자신이라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위로한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며 누구도 겨울을 탓할 수는 없다. 이미 겨울은 자신의 선택으로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지난 시간도 안타까운 마당에 자책으로 남은 시간을 채울 수는 없다. 현명한 겨울은 이를 잘 알고 있다.

겨울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픔을 밝히고 정원에게 이별을 선언하며 도망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 가을이 결혼 상대에게 사실을 밝혔듯, 정원에게 감춰왔던 아픔을 이야기하며 선택의 기회를 준다. 익순이 다시 만난 준완에게 고백했듯, 상처받고 싶지 않은 이기심으로 먼저 이별을 선택하지 않는다.
 
겨울은 회피하여 둘 중 하나만을 남기는 선택이 아닌, 모든 것을 밝히고 정원과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한다. 그 방법은 정원에게도 선택의 기회를 부여한다. 가을의 파혼이 보여주듯 정면 돌파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처와 아픔은 감추는 순간, 떳떳하지 못한 약점이 된다. 밝혀야 할 상대라면 거짓없이 밝히는 것이 상대를 위한 예의이다.

죽을 수도 있지만, 죽게 할 수는 없는

익준의 강찬동 환자는 간경변에 간암까지 겹쳐 간 이식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 가족 모두가 이식 조건이 맞지 않은 상황에서 30년 지기 친구가 간 기증을 하겠다고 나선다. 율제병원의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는 환자의 친구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기증 후 이전과 100%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고지하며 장기 기증 의사를 거듭 확인한다. 그래도 기증하겠다는 친구의 말에, 코디네이터는 두 친구가 정말 오랜 친구 사이로 아무런 조건없이 간을 기증하는 것인지 여러 서류와 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보건복지부 산하 KONOS(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서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장기 기증을 엄격히 심사하고 관리한다. 장기 매매를 금지하는 상황에서 혹여 은밀히 벌어질 장기 매매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두 친구에게 코디네이터는 준비해야 할 10여 가지 서류 목록을 내밀고, 고등학교 시절 사진부터 결혼식 자료, 원천징수세액 증빙자료 등을 요구한다. 결심만큼이나 험난한 고비를 넘겨야만 장기 기증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이 아닐 것이다. 수술이 무사히 성공적으로 이루어질지, 친구에게 아무런 기증 후유증이 생기지 않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삶은 원하는 것을 쉽게 내주지 않기도 한다. 강찬동 환자의 친구 역시 이를 잘 알 것이며, 두렵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선택을 하는 이유는 친구가 살 수 있는 방법을 번연히 알고 있음에도 죽게 놔둘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대로 친구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자신에게 돌아올 자책을 견디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친구는 이러한 결정이 자신의 선택임을 분명히 한다. 그는 "얘 없으면 심심해서 어떻게 살아요"라는 말로 아픈 친구가 느낄 부담감과 책임감을 덜어낸다. 강찬동 환자 역시 친구의 이런 뜻을 잘 안다. 익준에게 저는 아프지 않게, 친구는 조금 아프게 해도 된다는 그의 농담에는 친구의 배려를 헤아리는 마음이 담겨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유·무형의 목숨값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같이 있는 것이 좋고 그걸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참으로 부러운 관계이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0화 한 장면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0화 한 장면 ⓒ tvN

 
희생, 상대에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기도

흉부외과 펠로우 도재학(정문성 분)의 아내가 임신을 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임신을 미루다가 막상 임신을 하려니 되지 않아 포기한 부부였다. 갑작스런 임신 소식에 재학의 아내는 고민하지만, 초음파에 비친 10주의 태아를 보고는 바로 임신 유지를 결심한다. 그러나, 유방암 2기를 진단 받으며 임신 중단과 항암 치료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인다. 

재학은 아내에게 임신 중단을 설득하지만, 아내는 석형에게 항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되더라도 아기에게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도 미치게 할 수 없다는 결의를 내비치며 눈물을 흘린다. 스스로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하지 않는 선택이다. 태아가 어찌될까 하는 두려움에 재학의 아내가 선택하는 것은 희생이다. 

석형은 재학의 아내에게 무책임하다며, 엄마를 보러 나온 아기에게 엄마가 없다면 어떡하냐고 묻는다. 아기만을 위하는 그녀의 선택이 꼭 그렇게 아기를 위하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음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녀의 희생은 자신의 안위를 완전히 배제한다는 측면에서 도피와는 다르지만 양상은 그리 다르지 않다. 항암 치료를 하게 된다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물론, 태아의 건강을 걱정하는 재학 아내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항암 치료가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란 확신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아기가 태어나 엄마가 자신 때문에 암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 엄마의 선택에 감사하며 행복하기만 할 수 있을까.

자신이 당할 불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희생은 그로 인해 이익을 받는 상대방이 받을 상처를 고려하지 못한다. 오직 상대를 위한다는 숭고한 마음이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못한다. 최악을 결과만을 고려한 채 자신을 버리고 목적만을 남기려 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뿐 아니라 주변의 누군가가 받을 수 있는 상처도 간과하게 된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0화 한 장면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0화 한 장면 ⓒ tvN

 
석형은 재학의 아내에게 "여동생이었다면"이라는 말로 그녀 주변의 누군가를 일깨운다. 임신을 한 채 항암 치료를 거부하는 아내를 보며 재학은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지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세상 누구보다 아내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차라리 임신 중단을 선택하려는 재학에게 아내의 희생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일 것이다. 

희생은 그리 좋은 문제 해결 방식이 아니다. 자신의 목적에만 몰두해 자칫 주변에 더한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숭고한 그 마음을 비난할 수는 없으나, 다른 모든 가능성을 도외시한 일방통행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과 상대, 주변을 모두 아우르는 완벽한 해결책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들과 부딪혀 '나'와 그들이 상처 입더라도 '나'가 사라지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겨서는 안된다.

사는 것은 녹록지 않다. 그냥 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예상치 못한 고개가 나타난다. 보기만 해도 다리가 아픈 그 고개 앞에서 우리는 머뭇거린다. 산이 없는 듯 눈을 질끈 감거나, 지쳐 쓰러지더라도 소중한 사람을 업고 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 산을 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번 제자리 걸음을 하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힘들 것이라는 두려움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변하지 못한다.

드라마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극한의 상황들을 보여준다. 지속된 폭력 앞에서 겨우 목숨을 구하고 삶의 의지를 잃은 겨울의 엄마, 사망할 수도 있는다는 말을 듣고도 간 기증을 결심하는 강찬동 환자의 친구, 아기를 위해 죽어도 좋다는 재학의 아내 이야기는 죽음의 위협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경악할 만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나름의 선택을 한다.

생경한 그들의 이야기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누구나 살아가며 심각한 삶의 위기를 맞이해본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평온한 듯 보이는 삶 곁에는 늘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0화 한 장면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0화 한 장면 ⓒ tvN

 
이 고비의 연속을 앞에 두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은 '미도와 파라솔' 밴드가 부르는 10화의 노래 'It's my life' 속에 담겨 있다. 'It's my life'는 1980년대를 향유한 밴드 본 조비의 노래이다. 전성기를 지난 본 조비가 2000년에 건재를 과시하면 발표해 히트한 노래이다. 살아 있는 자체가 삶이라는 가사는 당당하게 나아가라는 격려와 응원을 담고 있다. 팝 메탈 밴드의 노래에 맞춰 꾸민 5인방의 검정 일색의 드레스 코드는 지지 말고 맞서라는 다소 반항적인 자세를 더욱 강조한다.

비록, 삶이 우리를 굴복시키기 위해서 고비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해도 힘들고 괴로운 것은 어쩔 수 없다. 'It's my life'는 그 고통을 피할 것이 아니라 맞설 것을 주문한다. 친구가 사망할지도, 태아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가정 속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 역시 포함되어 있다. 가능한 여러 방법들을 도모하지 않고 미리 포기해 버린다면 예정된 결과 외에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

고비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고비를 피한다면, 회피한 과거와 맞닥트린 겨울처럼 비슷한 고통 앞에 다시 서게 된다. 넘어야 할 산이 앞에 있다면, 그 산을 넘기 위해 가능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다소 서투르고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결과가 아니라 멈추지 않겠다는 우리의 투지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양선영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평범한 그녀' (https://m.post.naver.com/sungyuji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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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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