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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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 조씨의 권력이 굳어지던 이 시기에는 안동 김씨를 불리하게 만드는 일들이 벌어졌다. 안동 김씨의 피를 받은 왕자를 낳을 수 있거나 안동 김씨의 구심점이 될 만한 인물들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헌종의 부인이자 안동 김씨인 효현왕후가 후계자를 낳지 못한 상태에서 1843년에 세상을 떠났고, 안동 김씨의 중심인물이자 효현왕후의 아버지인 김조근이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철인왕후의 성장기는 풍양 조씨의 제2차 집권기였다. 이 상태는 그가 12세 되던 1849년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풍양 조씨의 천하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런 세상이 뒤집히는 것을 목격했다. 헌종이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난 1849년에 헌종의 7촌 윗사람인 철종이 대궐 주인이 되면서부터였다. 안동 김씨는 대왕대비인 순원왕후를 중심으로 이 권력 공백기에 신속히 대응했다.
임금도 없고 후계자도 없는 비상시국 하에서 최고 대권을 쥔 순원왕후는 강화도에 사는 철종을 불러들여 자기 아들로 입양한 뒤 왕위에 앉혔다. 새로운 임금이 안동 김씨와 법적 연계를 갖도록 한 것이다. 또 즉위 당시 철종이 만 18세라서 수렴청정이 필요 없는데도 순원왕후는 6년간이나 수렴청정을 했다. 안동 김씨의 제3차 집권을 공고히 하고자 만전을 기했던 것이다.
철인왕후와 철종의 혼례는 이 시기에 이뤄졌다. 순원왕후가 철종을 대신해 국정을 운영한 지 2년이 경과한 1851년의 일이다. 제3차 집권에 성공한 안동 김씨가 만전을 기하는 것도 모자라, 만전에 만전을 기하고자 이 혼례를 성사시켰던 것이다.
드라마 <철인왕후>는 만 14세인 주인공이 왕비가 되기 직전 상황부터 다루고 있다. 이 시기의 철인왕후는 위와 같은 정치적 이유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안동 김씨의 미래가 걸려 있었다.
왕후의 위신을 거침없이 깎아내린 장봉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