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들' 공연장면
연극열전
이 연극은 꽤나 직설적이다. 트릭을 주거나 뒤틀린 결말을 추리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저 우울을 지켜보게 한다.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니콜라부터 피에르, 안느, 소피아 모두 마음 한구석이 우울에 병든 듯하다. 과연 이 우울은 니콜라가 옮긴 것일까? 만약 우울이 세포가 있어 배양이 가능하다면, 그 씨앗은 결코 니콜라에게서 시작된 것은 아니리라. 그저 서로를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움을 자아낼 뿐이다.
비교적 직설적인 극에서 보이는 비현실적인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극 초반 니콜라는 옷, 장난감, 책과 화분을 집어던져 난장판을 만든다. 물리적 행패를 부리는 듯한 모습이지만 그 다음 등장인물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 난장판을 피해 다닌다. 소피아가 등장해 이를 치운다. 니콜라의 마음속은 '수습'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련의 일들로 바뀐 것은 그저 니콜라가 피에르에게 맞춰 거짓말을 좀 더 탁월하게 할 수 있게 됐다는 점 뿐이다. 거짓말을 태연하게 할 수 있게 된 니콜라는 비극적 결말 직전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부모를 설득한다. 나는 이제 아프지 않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소피아, 피에르와 함께 웃고 같이 웃음 짓던 니콜라의 마음 속에선 우울이 불현듯 튀어나온다. 우울을 표현하는 연출이 두 번째 비현실이다. 니콜라가 우울에 '잠식'되는 것처럼 감정이 심화되는 순간 물속에 빠진 듯한 소리가 난다. 끝없는 심해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조명과 효과음은 단순명료하지만 명확하게 그의 우울감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연극 '아들' 공연장면연극열전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피에르는 니콜라의 환상을 본다. 비극 속 총소리가 거짓이었던 듯, 앞선 우울이 다 거짓이었던 듯 '꼬마 햇살'처럼 나타나는 니콜라는 피에르의 염원 그 자체로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피에르의 오만으로 보인다.
니콜라는 극 내내 이야기한다. "모르겠어." 정말로 그렇다. 마음속 기분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다. 특히나 부정적인 기분은 더더욱. 그 기분을 입 밖에 내는 순간 후회하게 될 것이며 그마저도 정답은 아닐 것이다. 이 모든 게 '아빠 잘못'이라고 말한 니콜라처럼. 이런 상처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헤집으면 언제나 다시 드러날 수 있게 묻어둔 것뿐이다. 우리는 이 알 수 없는 감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의 주변인이 된다면 그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해야 할까?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가족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 호평을 받은 연극 <아들>은 오는 11월 22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되며 이석준, 이주승, 강승호, 정수영, 양서빈, 송영숙, 안현호가 열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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