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컷 젬스> 스틸 컷
넷플릭스
규율적이고 정석적인 스토리를 갖춘 채 '기-승-전-결'단계와 과녁에 걸린 사건을 해결하려 직진하는 영화가 있다. 반면 전통적인 영화 내러티브의 관습이나 감정선을 무시하고 감독 본인의 개성을 영화에 주입해 관객의 주의를 흔들어놓는 작품이 있다. 어떤 관객은 전자의 영화를 보고 괜찮은 영화를 봤다며 안심하고 귀가할 것이다. 어떤 관객은 후자의 영화를 보면서 끊임없이 정신이 흔들릴 것이다. 다만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게 아닌 정신이 흔들리기 때문에 영화에 되려 집중하게 된다. 베니와 조쉬 사프디 형제의 <언컷 젬스>는 후자의 영화다.
모든 건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샤프디 형제의 <언컷 젬스>는 가넷에게 빌려준 원석을 돌려받으려는 하워드의 분투를 빠른 호흡으로 연주해 몰아쳐간다. 분투의 단계를 차례로 나열하는 대신 사프디 형제는 전혀 관계없는 인물과 상황을 주기없이 끼워넣는다. 이런 식이다. 하워드가 가넷에게서 원석을 돌려받기 위해 중개자 드마니를 만나지만 그 사이에 돈을 받으려는 채권자, 불륜관계에 있는 여직원이 끼어든다. 정상화를 위한 노력은 직선 대신 지그재그를 그린다. 채권자를 뿌리치고 드마니를 따라가지만 곧 따돌려지거나, 원석보다는 여직원의 바람을 의심하고 욕을 내뱉으며 싸운다. 욕과 욕이 오고가고 그 사이 다른 쌍욕이 끼어들어 형성되는 이 난장판은 1분을 넘기지 않는다. 놀랍게도 그 소음은 역으로 우리의 집중을 유도해 저들의 관계를 파악하게 한다.
이를 감독의 재치나 개성의 덕이라 표현할 수 있으나, 실은 <언컷 젬스>가 발하는 빛의 8할은 하워드 래트너를 연기한 아담 샌들러에게 있다. 영화 대본에 쓰인 욕설의 8할 이상 역시 아담 샌들러의 몫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그가 가장 망가져 있는 코미디 영화로 역시 8할을 차지하지만 정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담 샌들러의 작품은 장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피폐해진 그의 얼굴이 나오는 영화다.
나는 프랭크 코레치 감독의 <클릭>에서 아담 샌들러를 처음 봤다. 아마 대다수가 비슷할 것이다. 무슨 저렇게 더러운 개그를 하는 사람이 있나, 그게 또 저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나 싶었다. 언제나 균형있게 튀어나온 윗배와 아랫배, 세월에 맞춰 흘러내리는 얼굴의 주름, 그리고 능청스러운 눈빛, 그리고 숨쉬듯 자연스럽게 나오는 욕설까지. 그가 출연한 코미디영화 <리디큘러스 6>, <워터보이>, <블렌디드>, <웨딩 싱어> 등 코레치와 함께 한 작품이나 <롱기스트 야드>, <첫 키스만 50번째>, <성질 죽이기> 등 피터 시걸과 함께 한 작품들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비록 <픽셀>과 <코블러>가 흥행에서 참패했고 <대디 보이>와 <잭 앤 질>은 최악의 남우주연상, 최악의 여우주연상을 그에게 안겨줬지만 나는 가장 우울한 날 이 영화들을 보며 실컷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의 진가는 혀를 내밀어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상대를 조롱하거나 지저분한 성적 농담을 나불대는 모습보다는, 얼굴에서 웃음을 소각시키고 언제 무너지질지 모르는 모습에서 나온다. <펀치 드렁크 러브>, <레인 오버 미>의 아담 샌들러는 완전히 망가져있다. 자력구제가 불가능해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결국 어떤 사건에서 주변의 도움을 디딤돌 삼아 자력구제를 이룬다. 코믹한 이미지의 대척점에서 아담 샌들러는 그가 좁은 스펙트럼의 배우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했다.
가장 어두운 곳에도 한 줄기 빛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