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전주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전주 KCC와 서울 삼성의 경기는 이정현과 이관희의 국내 선수 '쇼다운'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정현도 17점 3어시스트 3점슛 4개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이관희가 양팀 최다인 27점 2어시스트 3점슛 4개로 폭발하며 맞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특히 3쿼터에서 두 선수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한쪽이 득점을 올리면 곧바로 맞받아치는 등 마치 NBA(미 프로농구)에서나 볼수 있는 주포들의 자존심 대결로 경기장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양팀의 외국인 선수들이 나란히 부진한 가운데 두 선수가 기록한 득점이 각각 팀내 최다 득점이었다. 국내 선수들간의 에이스 대결은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라서 더 이색적이었다.

경기는 이관희가 맹활약한 삼성이 KCC에 16점차 열세를 뒤집고 68-65 역전승을 거두며 지난 1라운드에서의 패배를 설욕했다. 삼성은 이관희의 활약을 앞세워 올시즌 4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13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프로농구 서울삼성 대 안양KGC 경기. 서울삼성 이관희가 안양KGC 박형철의 수비를 제치고 드리블 돌파를 하고 있다. 2019.11.13

13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프로농구 서울삼성 대 안양KGC 경기. 서울삼성 이관희가 안양KGC 박형철의 수비를 제치고 드리블 돌파를 하고 있다. 2019.11.13 ⓒ 연합뉴스

 
이정현과 이관희는 KBL을 대표하는 앙숙이다. 두 사람의 악연이 크게 불거진 것은 2017년 챔피언결정전에서다. 당시 안양 KGC 소속이었던 이정현과 삼성 이관희는 시리즈 내내 자주 매치업을 이뤘는데, 2차전에서 1쿼터 경기 도중 이정현이 이관희의 강한 수비를 뿌리치려다 목 쪽을 밀어 넘어뜨렸고, 이에 격분한 이관희가 곧바로 일어나며 이정현을 팔꿈치로 밀어넘어뜨리면서 양 팀 간 분위기가 과열됐다. 이전부터 두 선수가 치열한 신경전을 지속해오기는 했지만 몸싸움까지 치달은 것은 처음이었다.

두 선수는 올스타전에서 재회했을때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잠시 화해하는 듯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후로도 코트에서 만나기만 하면 여전히 치열한 승부가 벌어졌다. 17일 경기에서도 서로 몸싸움 과정에서 어깨를 밀치며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왔다.

사실 2~3년까지만 해도 두 선수의 위상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정현이 국가대표이자 2010년대 중후반 KBL을 대표하는 슈팅가드로 성장한 것과 비교하여 이관희는 주로 상대 주 득점원을 전담마크하는 수비 전문 식스맨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2017-2018 시즌을 기점으로 이관희의 기량이 급성장하며 이제는 포지션이 같은 이정현의 경쟁자로 불릴 정도로 위상이 올라왔다.

특히 이관희가 이정현과의 대결마다 공공연하게 더 강한 승부욕을 드러낸다는 것은 이제 농구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이관희는 이날 경기전부터 "전주에서 중요한 약속이 있다"며 승부욕을 불태웠다. 이정현과의 맞대결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유력했다. 4쿼터 막판 승부처에서 이정현의 수비를 뜷고 결정적인 3점슛을 성공시키자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이관희가 올린 27점은 자신의 올시즌 한 경기 최다득점이었다.

스포츠에서 라이벌의 존재는 서로를 자극하고 더 강한 동기부여와 집중력을 가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KBL에는 이런 라이벌 구도가 적은 편이다. 인맥과 학연으로 얽혀있는 좁은 농구판에서 수없이 마주쳐야 하는 선수들끼리 얼굴을 붉히게 되면 불편한 상황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가 선후배 사이라거나 감독과 선수, 혹은 구단과 선수 사이같이 민감한 관계라면, 선수들은 비록 속으로는 이를 갈고 있을지언정 겉으로는 감정표현을 자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페어플레이의 선을 넘지않는 이상, 코트위에서 승부욕과 경쟁심리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결코 나쁜 현상이 아니다. 1990년대 대학 시절의 서장훈 vs. 현주엽, 프로 초기의 강동희 vs. 이상민, 2010년대의 양희종 vs. 문태영 등은 코트 위에서 만날 때는 누구보다 라이벌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는 사이였다.

'솔직함'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서울 SK의 가드 전태풍은 상대 선수나 전 소속팀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발언으로 유명하다. 전태풍은 2013년 고양 오리온에서 부산 KT로 이적했을 당시 "팀을 옮겨 너무 좋다. 이전 팀에서는 마치 군대에 있는 것 같았다"고 솔직한 소감을 밝히도 했다.

또한 지난 시즌이 끝나고 KCC에서 사실상 방출 당하며 은퇴기로에 몰리자 "KCC가 일방적으로 나에게 계약불가를 통보했다"고 공개적으로 폭로해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해 서울 SK에 입단하여 다시 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된 전태풍은 KCC와 첫 맞대결을 앞두고 '전쟁'을 선언하며 노골적으로 전의를 불태웠다.

물론 전태풍이 사적인 감정을 코트에서까지 드러낸 것은 아니다. KCC의 옛 동료들과 만났을 때는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비록 KCC전에서 큰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짧은 시간 투입될 때마다 자신을 버린 친정팀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강한 승부욕이 느껴졌다. 선수가 코트위에서 농구로서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욕구는 당연한 것이다.

KBL에서도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특정 선수나 구단을 향하여 대놓고 선전포고하는 것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정착되어야한다. 흔히 코트 위는 전쟁터라고 한다. 근거없는 비난이나 악의적인 페어플레이가 아닌 이상, 전쟁터에서 승부욕을 드러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선수와 선수 혹은 선수와 구단간에 얽히고 설킨 '스토리텔링'들이야 말로 농구를 보는 재미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양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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