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후폭풍으로 한동안 어수선했던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이 김상식 대행체제에서 일단 급한 불을 진화하며 분위기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최근 사퇴한 허재 감독의 공백을 메운 김상식 감독대행은 짧은 준비기간과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요르단-시리아와의 농구월드컵 아시아예선 2연전에서 연승을 거두며 '소방수'로서 제몫을 다했다.

김상식 대행의 임기는 일단 시리아전까지였다. 농구대표팀의 다음 일정은 11월 29일 레바논, 12월 2일 요르단전이다. 2개월간의 여유가 생긴 만큼 차분하게 후임 감독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차기 농구대표팀 감독, 누가 될까

농구대표팀은 전임감독제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2009년 김남기 전 감독에 이어 허재 감독까지 두 명의 전임감독 체제가 모두 실패로 끝나면서 부담이 적지 않다. 지난 아시안게임만 해도 코칭스태프는 허재 감독과 김상식 코치 두 명이 전부였고 허 감독이 사임하자 김상식 대행 혼자서 농구월드컵 2연전 일정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김상식 대행은 일단 시리아전이 끝난 이후 거취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 국가대표 전임감독의 무거운 책임을 맡을 만한 인재풀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대표팀은 전통적으로 자국리그에서 실력을 검증받는 베테랑급 지도자들이 맡아왔다. 프로화 출범 이후에는 전시즌 프로리그 우승팀 감독이 매년 돌아가면서 대표팀을 겸임하는 체제로 운영되며 연속성이 떨어졌다. '프로무대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고, 대표팀 경험도 있는 인물'로 범위를 좁히면 사실상 후보군이 많지 않다.

최근 20년간 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지도자는 김상식 대행까지 총 10명이다. 이중 신선우 전 WKBL 총재-김동광 KBL 경기본부장-최부영 경희대 농구부장 등은 현장을 떠난지 오래됐고 사실상 일선 지도자로서는 은퇴한 상황이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우승 당시 코칭스태프로 함께했던 유재학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이나, 이상범 원주 DB 감독은 현재 프로팀을 맡고 있어서 대표팀 겸임이 불가능하다.

전창진 전 감독은 2015년 승부조작 혐의 사건으로 프로농구에서 제명당한 이후 2심에서 무죄로 판결났으나 아직 복권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데다 최근에는 도박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음에 따라 농구계 복귀는 여전히 시기상조로 보인다. 대표팀 전임감독으로 나란히 실패의 오점을 남겼던 김남기-허재 감독도 현재로서는 복귀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김상식 감독대행 '승리 확신' 17일 오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 세계 남자 농구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대한민국 대 시리아 경기. 김상식 대한민국 감독대행이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 김상식 감독대행 '승리 확신' 17일 오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 세계 남자 농구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대한민국 대 시리아 경기. 김상식 대한민국 감독대행이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남은 후보군은 2명 정도다. 김진 전 창원 LG 감독과 김상식 대행이다. 김진 감독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한국이 중국에 대역전극을 거두며 20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당시에 대표팀 감독이었다. 불과 1년 전까지 창원 감독을 역임하며 현장감각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우승은 벌써 16년 전의 이야기인데다 이후 프로팀 감독을 거치며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창원 LG에서 김종규, 김시래, 문태종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우승하지 못했다. 또한 신인드래프트를 둘러싼 논란, 외국인선수들의 연이은 사건사고, 6강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등으로 여러 면에서 많은 논란을 남긴 것도 아쉽다.

김상식 대행은 프로팀과 대표팀에 이르기까지 감독대행만 4차례나 경험하는 진기록을 세운 '소방수 전문' 이미지가 강하다. 뒤집어 말하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팀을 급하게 맡아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우승경력이 있는 역대 대표팀 감독들에 비하여 김상식 대행은 프로팀을 맡아 온전히 한 시즌을 치르거나 플레이오프에 올라본 경험도 많지 않다. 김 대행이 허재 감독의 뒤를 이어 임시로나마 농구대표팀을 맡게 되었을 때도 기대보다 우려의 시선이 컸던 이유다.

하지만 요르단-시리아전에서 보여준 대표팀의 경기력은 김상식 대행의 지도력을 재평가하기에 충분했다. 라건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빠른 패싱게임과 공간 활용으로 한국농구의 장점을 극대화한 모습은 허재 감독이 이끌던 아시안게임 시절보다 내용 면에서 훨씬 안정적이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지난 2년간 코치와 감독대행을 거치며 대표팀에서 쌓아온 노하우와 연속성 차원에서도 김상식 대행체제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을 합리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앞으로 부임할 감독이 겪을 일들

농구팬들 일각에서는 경험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젊고 참신한 지도자를 찾거나, 아예 축구처럼 유능한 외국인 감독을 데려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 유재학이나 허재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도 어려움을 겪었던 국제대회에서 섣불리 경험이 부족한 감독을 데려오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그 정도로 촉망받는 젊은 지도자도 없다.

또한 국내 농구계에서는 프로팀조차도 외국인 감독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예산 부족을 호소하며 국가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원도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는 농구협회에서 유능한 거물급 외국인 감독을 모셔올 자금력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사실 누가 후임감독이 되더라도 명예보다는 고생길이 불가피하다. 대표팀은 전임감독제 도입 이후에도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전력분석팀이나 각종 지원 인력들도 부족했다. 이 점은 국가대표 주장인 박찬희도 시리아전 이후 인터뷰에서 고충을 호소하기도 했다. 외부의 비판이 아닌 바로 현장 일선에서 나온 발언이기에 더욱 곱씹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농구협회는 예산 부족 등을 거론하며 대표팀 이원화나 상비군 제도, 평가전 개최 등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요한 현안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아시안게임 과정에서 벌어진 특혜 논란 등으로 대표팀을 향한 농구팬들의 신뢰와 기대감도 떨어진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누가 후임감독이 된다고 해도 당분간 험난한 가시밭길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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