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김태리 분).
tvN
이 정도로 지식인 사회에서 영어 단어가 많이 쓰이던 시절이기 때문에, 신여성을 지칭하는 영어 단어가 등장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 시대 사람들은 모던걸(modern girl)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신여성'과 함께 모던걸이란 단어를 함께 썼던 것이다.
그런데 '모던걸'을 이상한 발음으로 변형시키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던걸을 모단걸로 발음했다. 한자 '모단'과 영어 '걸'을 섞었던 것이다. 모단은 '털 毛'와 '자를 斷'을 합성한 말이다. 신여성들이 전통적 헤어스타일인 댕기머리를 하지 않고 서양식 단발을 하고 다닌다는 의미에서, 모던걸을 모단걸로 비틀어 발음한 것이다. 신여성의 외모에 대한 기성세대의 불만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발음의 변형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모던걸을 못된걸로 바꿔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윤심덕의 경우에는, 남자아이들과 함께 바닷물에 뛰어들어 놀기도 하고 부모뻘 되는 남자들에게도 존댓말을 잘 쓰지 않았다. 존댓말인지 반말인지 헷갈리는 말투를 사용했다. 그래서 나이든 남성들 중에는 윤심덕 같은 모던걸을 '못된걸'로 부르는 이들이 있었다.
모던걸이란 표현은 신여성의 생활양식에 근거한 것이다. 그에 비해 '모단걸'은 이들의 외모에, '못된걸'은 '행실'에 근거한 것이다. 모던걸의 이 같은 변형에서 느낄 수 있듯이, 1920년대에도 신여성들은 기성세대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그런데 드라마 속 고애신은 1905년 이전에, 그것도 양반 명문가 여성으로서 신여성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니 신여성의 원조 격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신여성으로로 불리려면 조건들이 있었다. 머리를 단발로 하는 외형적 조건만 갖춘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우선, 외출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했다. 전통적인 양반가 처녀들은 마음대로 외출하지 못했다. 단오 같은 날이 아니면 밖에 나가 놀기도 힘들었다. 명절날에 널뛰기라도 하지 않으면 담장 밖을 내다보기도 힘들었다. 신여성이 되려면 이런 제약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외출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전통의 억압이 여전한 상황에서 무턱대고 외출을 감행할 수는 없었다. 양반가 처녀가 정기적으로 바깥나들이를 하려면 뭔가 명분이 있어야 했다. 그 명분이 무엇인지를 드라마 속 고애신은 잘 보여주었다.
고애신은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교에 나가 영어를 배운다. 그런 날에는 가마를 타고 나들이하는 그를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그런 기회에 고애신은 거리 풍경도 보고 군것질도 즐긴다. 고애신처럼 1920년대의 신여성들도 신식 학교에 다녔다. 등교는 그들에게 합법적인 외출 기회를 제공했다.
자유롭게 외출하다 보면 남자를 만날 기회도 그만큼 늘어난다. 학교에 다니는 신여성은 일반 여성에 비해 이성교제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 부모가 맺어준 정혼의 틀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이들은 전통적인 중매혼을 거부하고 자유연애를 표방했다. 고애신이 하는 것처럼, 가슴이 끌리는 남자한테 자유롭게 사랑을 표현했다.
이미 20년 전 '신여성' 보여준 고애신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