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책하는 침략자> 스틸컷
와이드릴리즈
이 영화의 백미는 외계인에 의해 개념을 빼앗긴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지를 지켜보는 일이다. '자신과 타인'을 빼앗긴 요원은 자신의 역할은 물론 이름과 존재에 대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게 된다. '소유'의 개념을 빼앗긴 히키코모리는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집을 뛰쳐나와 사회운동가가 된다. 자신의 권위를 무기로 성추행을 일삼던 나루미의 회사 대표 역시 '일'의 개념을 잃어버린 후 자신의 모든 책무를 놓고 어린 아이처럼 변해버리고 만다. 때로는 우스워 보이기도 하는 이런 장면들은 그런 개념이 없던 시절의 외계인들의 행동과 겹쳐지며, 인간에게 있어 '개념'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진지한 물음으로 바뀐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표현되는 '사랑'의 개념이 외계인의 침공을 막아낸다는 설정은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법하다. 하지만, 신지의 몸 속에 들어간 외계인이 이미 신지가 잃어버렸던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 궁금해 하고 또 그것을 다시 얻어내는 과정의 흐름을 이해한다면 궁극적으로 감독이 이 영화 속 '개념'이라는 장치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있게 된다. 단순히 The Power of Love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있던 곳에 메마를 수 있는 것 또한 사랑이며, 사랑이 메말라 있던 곳에 다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이처럼 '개념'이라는 것은 존재할 때와 존재하지 않을 때 차이를 보이며, 인간의 행동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 말이다.
06.나루미와 신지 두 사람의 관계는 물론, 신지가 사랑의 개념을 찾기 위해 교회를 찾아가는 시퀀스는 그 동안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작품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순정 멜로와도 같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러브 스토리를 단순히 아름답다거나 예쁘다는 식의 가볍게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유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때문이다. 외계인의 침략을 기적적으로 막아낸 후, 어렵게 살아남은 인류는 다시금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만, 사랑의 개념을 빼앗긴 나루미만큼은 회복하지 못한다.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개념에도 층위의 단계가 구분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개념들에 비해 조금 더 근원적이고 고고한, 한 단계 더 높은 이상적 개념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랑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쉽게 주고 받을 수 있는 다른 하위 계층의 개념과는 달리 사랑이라는 개념은 받는 것은 물론, 주는 것 또한 오로지 주관적 의지로만 가능하기에 고고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신지가 그녀의 곁을 지키겠노라 다짐하는 것 또한, 사랑의 순수함에 대한 그의 믿음이 이 마지막 장면을 통해 표현되는 듯 하다.
07.
▲영화 <산책하는 침략자> 스틸컷와이드릴리즈
<산책하는 침략자>(散歩する侵略者)라는 타이틀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산책이라는 것은 사유의 과정이며, 사유는 자아와 인식 능력, 개념을 갖고 있는 인류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타이틀이 '걷는 침략자'가 아니라 <산책하는 침략자>인 까닭역시, 침략자인 외계인이 인간의 사유하는 과정을 습득하고 배워나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가 끝나고 나니 반대로, 우리가 과연 다른 존재에게 산책하는 법, 즉 인류의 생활 양식을 알려줄 만큼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씁쓸함이 조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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