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미스터 션샤인>. tvN

tvN 사극 <미스터 션샤인>에 나오는 친일파 이완익(김의성 분)은 가상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 이름도 그렇고 열렬한 친일 행각도 그렇고 '친일파의 대명사' 이완용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드라마 속 이완익의 모습은, 실제의 이완용이 봤다면 너무 민망할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일파의 진짜 모습을 이해하는 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친일이 제대로 청산되지 않아 아직도 한(恨)이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완용의 친일 행적이 실제보다 과장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미스터 션샤인> 속의 이완익이 보여주는 과장된 친일 행각은, 우리 사회가 친일파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우리 사회가 실제의 이완용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제2의 이완용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완용에 관해 전혀 엉뚱한 상상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전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등장하기 힘든 비현실적인 매국노의 모습을 과장되게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 속 이완익은 조선에서 반일감정이 싹트기 훨씬 이전, 일본 정부가 친일파 양성 작전에 착수하기 전에, 홀로 선박 위에 서서 친일파가 되겠다고 결의한 뒤 이토 히로부미를 찾아가 "조선을 바치겠다"고 서약했다. 그런 뒤 일본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한다.

그는 너무 노골적이다. 8월 4일 제9회 방송에서는 그가 대한제국 외부대신에게 무릎 꿇을 것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정말, 안하무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왕조는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사는 인물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일본이 동학혁명 진압을 명분으로 조선 정부를 장악하고 청일전쟁을 벌인 1894년에 가장 눈에 띄는 친일파는 김홍집이었다. 1894년과 1895년 사이에 그는 4차례나 김홍집 내각을 출범시켰다. 내각이 자주 경질될 정도로 혼란한 시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가장 눈에 띄는 친일파이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친일파는 아니었다. 그가 이끈 4차례의 내각 중에서 제3차 내각은 친러시아 내각이었다. 제1차·제2차·제4차 김홍집 내각만 친일 내각이었던 것이다.

완벽한 친일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중의 미움을 피할 길은 없었다. 1896년 2월 광화문 앞에서 그는 군중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왜대신(倭大臣)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한자로는 이렇게 표기했어도, 실제 읽을 때는 '왜놈 대신'이라고 발음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뿐 아니라 19세기 우리 조상들도 자기 땅을 지키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민족주의 감정과는 다르지만, 조상들도 내 땅, 내 고향을 내가 지켜야 한다는 열의가 뜨거웠다. 이런 분위기에서, 친일파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떵떵거리며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었다. 김홍집 같은 거물이 광화문 앞에서 죽임을 당한 사실만 봐도 그렇다.

그런 역사적 상황을 고려할 때, <미스터 션샤인> 속의 친일파 이완익은 너무도 뻔뻔하다. 실제로 그런 인물이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반 한양 거리를 활보했다면, 그저 달걀 세례를 받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완익(김의성 분).
이완익(김의성 분). tvN

그랬기 때문에 실제의 이완용은 드라마 속 이완익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 그랬다면 68세까지 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실제 그는 드라마 속 이완익과 달리, 아무 때나 섣불리 친일파로 돌아서지 않았다. 일본의 힘이 조선에 들어오고 나서도 한참 있다가 돌아섰다. 친일파가 아니고서는 권세를 부릴 수 없다는 판단이 드는 시점에 가서야 돌아선 것이다.

서민 가정에서 태어나 통역관이 된 드라마 속 이완익과 달리, 명문가 양자 출신으로 과거시험에 급제한 이완용은 가문의 명망 및 왕실과의 사돈관계에 더해 고종의 마음을 잘 읽는다는 이유로 고종의 신임을 받았다. 이완용은 고종의 복심이었다. 고종의 정책을 잘 이해하고 잘 따라주었다.

그가 고종을 잘 파악했다는 점은, 고종이 좋아하는 나라를 그도 좋아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고종은 미국을 좋아했다. 미국은 조선과 거리가 멀어서 조선 영토에 대한 욕심이 없으므로 조선의 독립을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고종의 심리를 지배했다.

'짝사랑'이라 할 만한 고종의 미국 사랑을 간파한 이완용은 처음에는 친미파의 길을 걸었다. 이완용이 육영공원에 입학해 영어를 배운 것도, 대표적인 친일파가 되어 고종의 신임을 받기 위해서였다. 김윤희 경원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의 <이완용 평전>은 이렇게 말한다.

"이완용은 미국에 대한 고종의 생각을 이미 읽고 있었고, 미국통이 된다면 고종에게 매우 유용한 인물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변화와 고종의 의중을 알았던 그에게 육영공원 입학은 새로운 기회였다."


이완용은 나중에는 친미파 겸 친러시아파로 활약했다. 고종이 미국에 대한 짝사랑을 간직하면서도 1895년 이후로 러시아에 급격히 기우는 모습을 보고, 친미·친러로 살짝 전환한 것이다. 고종은 미국의 도움을 받고 싶었으나 미국은 도울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 쪽에 도움을 구하면서도 미국 짝사랑을 버리지 못했다. 이런 의도를 간파했기에, 이완용이 기존의 친미에다가 '친러'를 살짝 얹었던 것이다.

 이완용.
이완용. 퍼블릭 도메인

이완용이 친일파로 전향한 것은 조선왕조 멸망 5년 전인 1905년이다. 이 해에 러일전쟁이 러시아의 패배로 확정되면서 일본이 단독으로 조선을 장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여세를 몰아 일본은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하는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을 추진했다.

조선 무대에서 경쟁했던 청나라는 청일전쟁 패전으로 물러나고 러시아는 러일전쟁 패전으로 물러났으므로, 을사늑약이 어렵지 않게 관철되리라는 것과 조만간 조선이 국제법적으로 일본의 수중에 들어가리라는 것이 이 시기에는 어렵지 않게 예상될 수 있었다.

이처럼 누가 봐도 조선이 일본에 넘어갈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이완용이 갑자기 친일파로 변신했다. 친미파가 되고 친러파가 될 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완용은 고종의 태도를 보면서 전향을 결심했다. 그는 일본의 강압 앞에서 고종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고종이 친일로 돌아선 것은 아니지만, 일본 때문에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이완용은 친일을 결심했다.

김윤희의 <이완용 평전>은 "흔히 변신의 귀재라고 불리는 이완용이 최종적으로 친일파로 돌아선 것은 바로 이때라고 한다"라면서 을사늑약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서술했다.


"이완용은 을사조약 대책회의에서도 고종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려고 애썼다. 을사조약 대책회의 과정을 보면, 그는 조약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종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폈고, 고종이 자신에게 원한 역할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고 했다."
이런 상황이 1905년 12월 16일자 <고종실록>에 정리돼 있다. 이토 히로부미의 을사늑약 요구에 당황한 고종은 그 해 11월 15일 각료들을 불러 대책회의를 열었다. 어느 누구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자, 고종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일단 미뤄보자"고 말했다. 이때 고종을 유심히 관찰하던 이완용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한마디가 있다. 이 한마디가 고종의 마음을 흔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만약 폐하의 마음이 단호하셔서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다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부득이하게 허용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당신이 끝까지 반대한다면 다행이지만, 과연 그럴 의지가 있느냐는 말이었다. 의지가 없다면 차선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그냥 체결해버리는 게 어떨까요?'라는 메시지와 다를 바 없었다. 고종은 답변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조약체결 여부를 각료들에게 일임해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이완용한테 일임한 것이다. 결국 을사늑약은 통과됐다.

이처럼 이완용은 1905년 연말에 고종의 눈치를 봐가며 친일파로 변신했다. 고종이 친일로 돌아선 것은 아니지만, 일본 앞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돌아섰다. 친미파·친러파가 될 때는 고종보다 한 발 뒤에 있었던 데 비해 이번에는 한 발 앞섰다는 점이 달랐을 뿐, 고종의 눈치를 살펴가며 결단을 내렸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 뒤 이완용은 나머지 5년 동안 '아주 진하게' 친일을 했다. 후세에 두고두고 기억될 정도로, 일본의 조선 강점을 확실하게 도왔다. 그래서 대표적 친일파로 기억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최소한의 핑계거리를 만들어뒀다. 주군이 일본 앞에서 흔들릴 때 친일파로 변신함으로써 자기 행동을 정당화할 핑계거리를 만들어둔 것이다. 주군의 의중을 반영하는 친일 전향인 것처럼 보일 만한 여지를 만들어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드라마 속 이완익과 다르다. 이완익은 이런 핑계거리도 만들어두지 않고, 단 1%의 원칙도 없이 '무데뽀'로 친일파가 되어버렸다.

핑계거리를 만들어두든 않든, 이완용의 친일 행각이 잘못됐다는 점만큼은 불변한다. 중요한 것은 이완용 역시 오늘날의 철새 정치인들처럼 변절을 합리화할 명분을 만드는 데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이완용도 대의명분에 신경을 썼다는 사실에 유의하는 것은, 우리 시대 사람들이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는 화려한 대의명분에 속지 않도록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미스터 션샤인> 속의 이완익은 현실 세계에 등장하기 힘든 캐릭터라서, 우리 사회가 정치인들의 옥석을 가리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완익 같은 비현실적인 친일파를 드라마를 통해 아무리 많이 봐도, 우리 사회의 친일파 예방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전에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등장할 가능성이 없는 '친일 바이러스'를 드라마에서 아무리 많이 봐도, 우리 사회가 '친일 백신'을 제조하고 친일을 예방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 속 이완익은 우리 사회가 친일파의 진짜 면모를 이해하는 데 지장만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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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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