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
8월 14일 개봉되는 < 22 >는 접근방식이 다른 다큐 영화다.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 22 >는 피해자의 증언이나 당시의 참상을 도드라지게 드러내지 않는다. 증언을 이끌어내려고 시도는 하지만, 억지로는 하지 않는다. 대신, 피해자의 신변과 일상을 보여주는 데 좀더 주력한다. 그러면서 위안부의 아픔과 일본제국주의의 죄상을 은근히 노출한다.
제목으로 쓰인 '22'는 궈커 감독이 2014년 촬영에 착수할 당시 중국 위안부 생존자의 숫자다. 중국인 위안부의 숫자가 아니라 중국에 거주하는 위안부의 숫자다. 1941년에 "일본인이 중국 한커우에 큰 공장을 열었으니 거기 가면 큰돈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중국으로 끌려가 위안부가 됐다가 눌러 살게 된 박차순 님(1922년 생)도 포함된 숫자다.
2018년 8월 현재, 중국 내 위안부 숫자는 7명으로 줄어 있다. 영화는 스물두 분을 소개할 때마다 '1925~2015년' 식으로 생몰 연도를 일일이 표기한다. 생몰 연도의 앞부분만 표시된 출연자보다 양쪽 다 표시된 출연자가 더 많다는 사실을 관객들은 의식하게 된다. 위안부 생존자 숫자와 더불어, 그분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그런 장치를 통해 강조된다.
증언의 두가지 방식< 22 >가 위안부 문제를 증거하는 방식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는 당사자와의 면담을 통해 증언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한계가 있다. 자신이 증언을 해주면 일제의 죄상이 그만큼 쉽게 드러나리라는 것을 모를 리 없겠지만, 출연자들은 그때 기억을 떠올리는 게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워 웬만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다. 이따금 어렵게 입을 떼기는 하지만, 영화 한 편을 구성할 정도의 분량은 안 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중점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두 번째인 것으로 판단된다. 피해자의 몸과 주변에 남아 있는 흔적을 시청자들이 알아차리도록 하는 방식이다.
증언을 꺼리는 피해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그의 뇌리 속에 얼마나 참혹한 기억이 새겨져 있는지를 강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계속해서 찾아오는 조사자의 성의에 못 이겨 몇 마디라도 힘겹게 증언해주는 피해자의 인간미 역시, 피해사실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를 느끼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주변 사람들한테 위안부 경력을 숨긴 채 너무도 평범하게 생활했다는 평가를 받는 피해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족이나 지인의 증언으로 재구성되는 피해자의 밝은 이미지는, 그가 악몽을 잊기 위해 얼마나 격렬한 내적 전쟁을 겪었을지 짐작케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본군의 성폭행에 저항하다 다리가 잘린 피해자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증언한다. 일본군이 쏜 총탄이 머리를 정통으로 향하지 않고 머리 윗부분을 스쳐가서 다행이라는 피해자의 증언 역시 그렇다. 그의 머리 윗부분에는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다. < 22 >는 이런 시각적 장면을 통해서도 위안부의 고통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