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많은' 빅 매치였다. 100년에 한 번 있을 법한 가정, 맨체스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맨체스터 시티가 우승 컵을 들어 올릴 만한 상황이 존재했고, 에이전트(라이올라)와 펩 과르디올라의 장외 전쟁에 따라 구설수에 오르게 된 슈퍼스타(포그바)의 미묘한 심리적 불균형 등도 있었다. 이런 요소들은 8일 오전 1시 30분(한국시간)에 열리는 이 빅 매치에 많은 축구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경기는 결과에 상관없이 세계 최고의 팬덤을 자랑하는 프리미어 리그의 현 최고 라이벌 매치는 바로 '맨체스터'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한 치 앞도 예측하지 못하게 만든 다이내믹한 드라마가 펼쳐진 32라운드의 경기는 두고두고 많은 축구 팬들에게 회자될 것으로 판단된다. 경기 후 회자되는 뷰 포인트를 정리해보자.

자유(Free)가 주어진 폴 포그바

지난 31라운드 스완지 시티와의 경기에서 주제 무리뉴는 언제나 그렇듯 4-2-3-1의 전술을 펼쳤다. 이날 유나이티드는 상당히 적극적이고 지배적인 공격 축구를 선보이며 '차이'를 만들어냈는데, 공격의 중심엔 산체스, 린가드, 마타, 루카쿠가 있었다. 상당히 유기적인 패스 워크를 선보이며 스완지 시티의 디펜스를 무너뜨렸다. 이날 포그바는 역시나 마티치의 파트너로 수비형 미드필더의 형태로 기용이 되었는데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서의 좋은 모습을 보이며 주간 베스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폴 포그바 포그바의 부재가 오히려 맨유의 승리로 직결됐다.

맨유 소속 폴 포그바 선수 ⓒ 맨유 홈페이지


포그바는 레블뢰(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 회복된 좋은 폼을 유지한 것처럼 보였다. 무리뉴와의 불화설, 열정이 부족해 보인다는 유나이티드 레전드의 질책 등을 의식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수비에서도 조금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중간중간엔 자신이 가진 창의적인 플레이 등을 선보이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안데르 에레라가 보란치로 투입된 후반 중반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하프 윙의 포지션으로 갈아입으면서 무리뉴로부터 더 높은 자유도를 부여받기도 했다. 상대가 리그 하위 팀인 스완지이기 때문에 좋은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었다는 의견도 일부 부합될 수 있는 얘기지만, 맨시티와의 경기를 앞두고 예측해볼 수 있는 유나이티드의 전술 전형이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8일 주제 무리뉴는 폴 포그바의 뒤에 두 명의 전문 미드필더를 배치했고 그에게 자유를 주었다. 검증된 전술의 '적용'임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폴 포그바를 다시 올드 트래포드로 데려왔을 때 무리뉴는 그를 최고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육성하고 싶었을 것이지만, 퍼포먼스를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절반의 실패'로 부를 수 있다. 많은 빅 매치에서 '부재'할 수밖에 없었던 '천억의 사나이'는 이날 지도자의 '선택형 포지션'이 아닌 '검증형 포지션'을 부여받은 셈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녹록지 않았다.

불균형이 만드는 균열

스코어 0-0으로 팽팽하던 균형은 전반 25분 맨시티의 수비수 콤파니의 헤더 선취 득점을 통해 산산조각이 났다. 디펜스 축구를 강조하는 무리뉴 호의 특성상, 선취점을 실점하는 것은 경기에 상당한 부하를 준다. 이것은 선 수비 후 공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의 콘셉트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 과거 첼시, 아스날 등과의 경기에서 보았듯 이러한 순간적인 실점은 맨유의 포메이션이 상당히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맨유는 급격히 붕괴될 수 있는 조직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리그 2위 팀에게 흔히 일어나지 않는 모습일 수도 있지만 무리뉴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이러한 과정을 맨유의 '과도기', '자신이 물려받은 유산' 등의 문장을 통해서 극복해갔다.

이날 경기 또한 맨유는 선취 실점 이후 급격히 붕괴되어 갔고 그러한 상승 곡선을 통하여 맨시티는 6분 후 곧바로 귄도간의 환상적인 터닝 슈팅을 통하여 추가 골에 성공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인 알렉스 퍼거슨 경이 마치 경기를 관리하고 있는 것과 같은 '표정'을 짓게 만드는 순간이었으며, 맨체스터에서 100년에 한 번 일어날만한 '사건'이 정말 벌어질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맨유는 전반전이 끝나가는 순간까지 유효 슈팅이 전무했고 경기 점유율 또한 두 배가 넘는 영향력을 상대 팀에게 선물했다. '완벽한 우승'을 목전에 둔 45분의 하프 타임은 맨체스터 시티에게 더 이상 부족할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어떤 축구 팬에겐 약간의 '반전 복선'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어떤 장면이었을까?

전반 중반, 펩 과르디올라는 자신의 머리를 잡고 괴로워했다. 승리를 하고 있고 환상적인 경기력을 펼치고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 8일 경기에서 가장 많은 득점 찬스를 날린 스털링의 슈팅 이후 아쉬워하던 펩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불안함이었을까. 최고의 축구 선수 출신으로서 축구 판에서 벌어질 수 있는 불가능의 영역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후반전 변화를 선택하지 않은 무리뉴

"때때로 지고 있는 상황이 되면 본능적으로 바로 변화를 주려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느낌은 없었습니다." -주제 무리뉴

맨시티의 가공할만한 위력을 한바탕 견뎌낸 맨유. 후반전이 시작되면서 맨유의 서포터즈는 일부 스쿼드 변화 또는 전술 변형에 대한 예측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리뉴 감독은 후반전이 시작되자 전반전과 전혀 다르지 않은 포메이션, 플레이어를 바탕으로 맨체스터 시티에 다시 맞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맨유에 대한 근심이 다시 시작되려는 시점에 유나이티드의 첫 유효 슈팅이 폴 포그바의 발끝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시 4분 후,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추격전이 바로 폴 포그바의 발끝에서부터 펼쳐지기 시작했다. 

47분 맨유의 코너킥 찬스. 산체스의 굴절된 볼이 포그바의 발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때 포그바는 코너 진영을 향해 박수를 쳤다. 그리고 웃었다. 개인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다니. 그러나 4분 후 안데르 에레라의 본능적인 가슴 패스를 받은 폴 포그바가 센스 있는 타이밍으로 골네트를 흔들며 추격 골을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맨유의 벤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필자는 포그바가 '골 세리머니'를 위해 달리고 있는 줄 알았다. (진심으로 의심했다) 그러나 포그바는 벤치가 아닌 '볼'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볼'을 들고 하프 라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2분 후 다시 한 번 동점골을 기록했다.

센터 영역에서 건네받은 공을 알렉스 산체스에게 연결한 포그바는 성큼성큼 맨시티의 페널티 박스로 뛰어갔다. 그리고 산체스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누군가를 기다렸다. 좌측에는 애슐리 영이 크로스를 위한 적절한 포지션에 서 있었고, 중앙에는 린가드, 루카쿠 등이 패스를 기다렸다. 그러나 산체스는 계속해서 공을 갖고 있었고 적절한 시점에 누군가를 바라보며 크로스를 했다. 불과 2~3분 사이에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순간이었다. 산체스의 크로스를 받은 폴 포그바는 다시 한번 엄청난 서전트 점프를 통해 헤더 동점골을 기록했다. 모든 맨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고, 필자 또한 그랬다.

포그바는 맨체스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이후의 경기 결과는 모든 팬들이 알고 있듯, 알렉스 산체스의 프리킥을 받은 크리스 스몰링의 득점을 통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맨체스터 시티를 3-2로 제압하며 짜릿한 역전승을 기록했다. 경기 후 외신 언론이 무리뉴 감독에게 집중 조명한 첫 번째 질문은 바로 후반전 맨유의 '드레스 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유효 슈팅 0, 스코어 2-0으로 끌려가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후반전은 그만큼 완전히 각성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3-2로 앞서고 있는 후반 80분경 오타멘디를 걷어 차는 폴 포그바의 엄청난 백 태클은 이 경기에 분위기를 말해주었다. 경고가 약 10장이 나온 오늘의 경기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치열했던 맨유, 아스날, 리버풀, 첼시 등의 빅 클럽 경기에서 옐로, 레드카드가 난무했던 과거를 회상하게 했다. 특히 '각성'한 폴 포그바의 후반전의 모습은 '유벤투스' 시절의 포그바를 연상시키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결과'를 만들어 냈고, 오늘 경기의 '아이돌'이었다. '스타'가 보여줄 수 있는 '잠재력', '경기를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포그바는 흡사 과거 세계적인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북산의 '강백호'와 그와 비슷한 유형의 걸출한 스타플레이어였던 능남의 '황태산'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마이클 조던을 만나 자신의 기량을 만개했던 '데니스 로드맨'을 떠올리게 했다. (로드맨은 만화 속 주인공 강백호의 모델로 알려져 있다) 포그바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인공일까, 씬 스틸러일까? 중요한 건 오늘 만큼은 '주인공'의 역할이 어울리는 베스트 플레이어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리뉴는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 전을 대비해 쉬고 있던 케빈 데 브라위너, 아게로, 제수스 등을 모두 경기에 소환하게 만들었고 레쉬포드, 맥토미니, 린델로프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교체 자원을 통해서 가공할 만한 맨시티의 화력에 대응했다. 신구 세대가 느낄 수 있는 프리미어리그 라이벌 전의 엄청난 열기를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는 1년에 몇 안되는 경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최강을 꺾을 수 있고, 최고의 선수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기 위해선 유나이티드의 주제 무리뉴 감독은 자신의 성공적인 삶의 포인트에서 어느 정도의 '유연함'은 확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마치 '리바운드의 제왕' 데니스 로드맨을 '센터'로 활용하기엔 많은 훈련과 전략이 필요한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시도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필자는 이것이 바로 '도전의 포지션'과 '검증의 포지션'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포그바는 특수 영역에선 'The Best'일지라도 나머지 영역에선 'Good'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함께 다양한 미드필더 영역에서 더욱 견고해질 수 있는 포그바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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