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서 유력 대선 후보를 겨냥한 폭탄 테러 사건이 벌어진다. 국가 정보기관이 만든 계획에 따라, 한 선량한 시민은 영문도 모른 채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다.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골든슬럼버>의 메인 스토리다. 동명의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국가 정보기관의 음모에 휘말린 한 시민과, 그를 돕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원작 소설은 527페이지라는 방대한 분량 안에 감시사회의 문제성과 친구들의 우정, 또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도주극을 담고 있다. 이 많은 이야기를 108분 러닝타임 안에 담아내기 위해 필요한 건 '선택과 집중'. 영화 <골든슬럼버> 노동석 감독은 "뜻하지 않게 사건에 휘말린 평범한 소시민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 최초 광화문 폭파신... 이래서 필요했다 

'골든슬럼버' 노동석 감독 영화 <골든슬럼버>의 노동석 감독이 13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골든슬럼버' 노동석 감독 영화 <골든슬럼버>의 노동석 감독이 13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제한된 러닝타임 안에서 관객이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들기 위해, 노 감독은 초반 긴장감 고조에 많은 노력을 할애했다. 특히 극 초반 관객의 시선을 붙드는 건 광화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폭탄 테러신이다. 광화문 로케이션 촬영은 한국영화 사상 최초. 지난 언론시사회에서 노동석 감독은 "탄핵 촛불 집회가 한창이던 2017년 겨울이라 허가받기 쉽지 않았다"면서, "스태프들의 치밀한 사전 준비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한 바 있다. 노 감독이 폭탄 테러의 장소로 광화문을 택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관객들이 이 이야기를 2018년에 있음 직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화를 만드는 동안 가장 많이 한 고민이었어요. 대통령 후보 암살 사건은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잖아요. 우리 영화의 큰 줄거리 중 하나가 '감시 사회'에 대한 이야기고요. 모두가 보고 있고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인 광화문이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했어요." 

노동석 감독의 생각은 맞았다. 영화는 초반 광화문 테러 장면으로 관객의 시선을 붙들고, 주인공 건우(강동원 분)가 이 사건에 얽혀 들어가는 전개까지 무리 없이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는 이 거대한 음모가 시작된 원인이나, 왜 건우가 이 사건에 말려들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노동석 감독은 다시 한번 '선택과 집중'을 이야기했다.

"만들면서 굉장히 고민한 부분이에요. 하지만 한국적 상황을 통해 관객들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넘어간 부분도 있어요. 민씨(김의성 분) 대사 중에 '타깃은 누구나 될 수 있다', '권력에 의해 소시민의 일상은 얼마든지 파괴될 수 있다'는 내용도 나오거든요. 이 정도 밑바탕만 깔아주면 그사이의 개연성은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분들이 알아서 상상력으로 채워주실 거라는 바람이 있었어요. 우리는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 벌어지는 한국사회에 사니까. 무엇보다 영화의 메인 메시지는 건우와 친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테러 사건에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하면 영화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신해철 음악의 힘... "음악에 빚졌다" 

'골든슬럼버' 노동석 감독 노동석 감독은 <골든슬럼버>를 만들며 '선택과 집중'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다.

▲ '골든슬럼버' 노동석 감독 노동석 감독은 <골든슬럼버>를 만들며 '선택과 집중'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다. ⓒ 이정민


<골든슬럼버>는 비틀즈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비틀즈 해체 직전, 멤버들의 마음을 다시 한데 모으고 싶었던 폴 매카트니의 바람이 담긴 노래로도 유명한데, '집으로 돌아가자'는 노랫말과, 한동안 멀어졌던 친구들이 함께 고난을 견뎌낸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작품의 메시지와도 잘 맞는다. 원작은 이 곡을 주인공과 친구들이 학창 시절 함께 듣던 '추억의 명곡'으로 사용했다.

영화는 원작이 부여한 '골든슬럼버'라는 제목과 음악의 메시지를 그대로 사용한다. 하지만 친구들의 추억이 담긴 곡으로는 신해철의 '그대에게'를 등장시켰다. 오랜만에 듣는 신해철의 음성이 반갑기도 했지만, 함께 '그대에게'를 연주하던 친구들의 과거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들 사이의 유대감과 쌓인 추억의 크기가 고스란히 표현됐다.

"과거와 현재를 유기적으로 잘 연결해야 했어요. 그때 필요한 게 음악이었는데, 신해철 선배님의 음악 덕분에 제한된 시간 안에 친구들의 청춘, 젊음, 우정 등의 메시지를 보여줄 수 있었죠. 또, 학창시절 건우와 친구들이 함께 밴드를 했었다는 설정인데, 우리나라에서 밴드 하는 친구들이 연습곡으로 가장 많이 쓰는 노래가 '그대에게'래요. 여러모로 맞아 떨어졌죠. 무엇보다 우리 대중들이 신해철 선배님에게 느끼는 애틋함, 미안함 같은 감정이 있잖아요. 그 마음이 건우에게도 묻기를 바랐어요. 선배님 음악에 빚진 부분이 많습니다." 

"강동원은 천상 영화인" 

'골든슬럼버' 노동석 감독 노동석 감독은 강동원을 "삶의 거의 모든 에너지를 영화에 쏟아붓는 사람"이라면서 "천상 영화인"이라고 표현했다.

▲ '골든슬럼버' 노동석 감독 노동석 감독은 강동원을 "삶의 거의 모든 에너지를 영화에 쏟아붓는 사람"이라면서 "천상 영화인"이라고 표현했다. ⓒ 이정민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졌듯, <골든 슬럼버>는 7년 전 원작 소설을 읽은 강동원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강동원은 앞선 인터뷰에서 "원작 결말의 찝찝함보다는, 주인공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었다"며 각색에 아이디어도 냈음을 밝혔다.

"아무래도 저보다 이 작품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동원씨의 아이디어를 제가 흡수하기도 하고, 함께 건우란 인물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죠. 디테일한 이야기보다는 건우의 느낌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어요. 예를 들면, 건우는 너무 선하고 착한 캐릭터잖아요. 과하면 자칫 불편하고 가짜 같을 수 있는데, 동원씨가 그런 면에서 수위 조절을 많이 해줬어요." 

노동석 감독은 강동원을 "삶의 거의 모든 에너지를 영화에 쏟아붓는 사람"이라면서 "천상 영화인"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평범한 택배기사'라는 건우의 설정에, 강동원만큼 안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이 영화를 위해 파마도 하고 살도 찌웠다지만 여전히 빛나는 강동원과 '평범'은 너무도 생경한 조합이다. 노동석 감독은 "강동원은 하얗고 아기 같은 피부인데 일부러 주근깨도 그려 넣고 피부도 어둡게 표현했다"면서도, "그래도 외모는 감춰지지 않더라"며 웃었다. 다만 "건우 캐릭터에 맞춰 어리바리한 느낌이 필요했는데 잘 표현해줬다"면서 "관객들이 강동원과 건우 사이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해줘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택배 기사 캐릭터니까 그 역할에 맞는 진실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외모야 택배기사님들 중에 잘생긴 분 안 계시겠어요? 다만 바쁘게 일하시다 보니 외모를 가다듬을 시간이 없지 않겠나, 땀 흘리며 일하는 느낌은 줘야겠다, 이런 부분에 중점을 뒀죠. 동원씨도 직접 택배 물류 창고에 가서 기사님들의 관찰하기도 했고요. '강동원'이라는 스타 배우의 이름을 지우고, 이야기 속 캐릭터로 봐주시길 바랐어요." 

오랜 친구 떠오르는 영화가 되길 

'골든슬럼버' 노동석 감독 노동석 감독은 이제 막 상업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딘 신인 감독으로서의 바람도 전했다.

▲ '골든슬럼버' 노동석 감독 노동석 감독은 이제 막 상업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딘 신인 감독으로서의 바람도 전했다. ⓒ 이정민


노동석 감독은 <골든슬럼버>가 "오랜 친구를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극장을 나서며 '내게도 저런 친구가 있었지' 하며 휴대폰 연락처 목록을 뒤적이는 모습을 상상한다면서. 이제 막 상업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딘 신인 감독으로서의 바람도 있었다.

"관객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의 휴식을 찾아 극장에 오잖아요. 영화 한 편을 위해 돈을 들여 표를 구입하고, 귀한 시간을 내어 극장에 앉아 있다는게 얼마나 대단한 투자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영화 한 편이 관객 한 분 한 분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도 알고요. 그런 관객들에게, 투자한 시간, 돈이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열심히 만들었네' 말고, '이 영화 보길 잘했다' 생각 드는 영화. 그게 제가 만들고 싶은 영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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