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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안화 감독의 <그날은 오리라>(원제 명월기시유, Our Time Will Come, 2017)은 일제의 홍콩 점령 당시 청년들의 항일 운동을 다룬 시대극이다.

홍콩 내 문화인(지식인)들의 탈출을 모의하는 항일운동가들의 결연한 의지로 시작되는 영화는 이윽고 기르던 토끼가 어머니(엽덕한 분)에게 잡아 먹힐까 봐 들판에 풀어주는 팡란(저우쉰 분)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일본 침략에 의한 식량난에도 불구 토끼 한 마리 죽이지 못하고 살려주는 팡란이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항일운동에 뛰어든다. 귀향을 이유로 팡란 곁을 떠난 애인 감영(곽건화 분)도 일본 헌병대 밑에서 스파이 노릇을 하며 항일 운동에 기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펑위옌이 맡은 류흑자. 영화에서 날렵하면서도 우아한 액션을 담당하는 이 캐릭터는 단 몇 발의 총과 단칼로 수십 명들의 일본군을 제압하는 통쾌함(?)을 안겨준다.

항일 운동을 위해 사랑, 우정까지 버린 팡란, 류흑자, 감영 이 세 명의 청년들을 주축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날은 오리라>는 드라마, 로맨스, 액션, 서스펜스 등 여러 가지 장르가 골고루 섞어 있다. 선남선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터라 자칫 사랑에 빠져 항일 운동을 등한시하게 되는 로맨스로 빠지지 않을까 우려가 들 법도 하지만, <그날은 오리라>의 주인공들은 오히려 국가, 민족을 위해 과감히 사랑, 가족까지 포기한다. 그들이 찔러도 피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냉혈한이라서가 아니다.

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나

앞서 언급했지만 팡란은 기르던 토끼가 엄마 손에 잡아 먹힐까 봐 전전긍긍하는 인물이며, 어머니를 뒤로하고 유격대에 합류할 때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 헌병 대좌 밑에서 일하며 항일운동 단체에 몰래 정보를 빼돌리는 임무를 수행하는 감영은 그 누구보다 죽음을 두려워한다. 스파이로 합류하기 직전 팡란에게 프러포즈를 할 정도로 팡란을 사랑했던 감영은 그런데도 사랑 대신 민족을 택한다. 팡란과 많은 임무를 함께 하며, 팡란을 사랑하게 된 펑위옌은 끝까지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자 한다. 민족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안게 된 이들에게 사랑은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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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오리라>의 주인공들이 태어날 때부터 민족 해방이라는 사명을 안고 태어난 것은 아닌데, 어쩌다가 그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는 의인이 되었을까. 일제의 침략만 아니었다면 감영과 함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행복하게 살았을 팡란은 어느 순간 항일운동의 최전선에서 서 있는 항일운동의 대모가 되어 있었다. 팡란은 이렇게 말한다. 시대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 그렇다. 시대가 순하디순한 감영을 스파이로 만들었고, 사람 좋고 순박한 펑위옌을 살인 병기로 내몰리게 한다. 일제의 침략이라는 암울한 상황 때문에 자신이 그간 소중하다고 느낀 모든 감정, 관계들을 포기해야 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그린 <그날은 오리라>는 역시 일제의 침략과 식민통치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안고 있는 한국 관객들에게 묵직한 감정을 안겨 준다.

1940년대 초 일제강점기의 홍콩을 배경으로 항일 운동을 담고 있는 <그날은 오리라>는 중국(홍콩) 영화임에도 불구, 한국인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비슷한 시기 우리 선조들에게도 나라의 독립과 민족 해방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모든 국민이 나라의 독립을 우선으로 여긴 것은 아니었고, 이들 중에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도 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대한민국은 오히려 친일파의 후손들이 상류층으로 군림하고, 독립운동가들의 자손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모순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더군다나 자신들의 선조가 벌인 과오와 만행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일본의 현 태도와 맞물려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어났던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보다 기간은 짧지만, 역시 일제 침략이라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중국 또한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그날은 오리라>처럼 중국 내 항일 운동을 다룬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졌고 중국 관객들의 높은 호응을 받았다. 여기에 홍콩 영화의 대모 허안화가 만든 <그날은 오리라>는 작품성도 뛰어나다. 특히, 여성 캐릭터(팡란)를 다루는 감독(영화)의 시선이 인상적이다.

주체적인 여성 독립운동가가 반갑다

그동안 항일 운동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남성 독립 운동가의 애정의 대상, 혹은 남성 캐릭터를 보조하는 역할 정도로만 그쳤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2015년에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암살>(2015)에서 전지현이 맡은 안옥윤 정도를 제외하고 영화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여성 독립운동가 캐릭터가 손에 꼽을 정도다. <암살>의 안옥윤이라는 캐릭터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비결은 민족의 독립이라는 대의를 이루기 위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을 극적으로 다룬 감독의 태도에 있었다.

허안화 감독의 <그날은 오리라>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행동하는 담대한 면모를 보여 준다. 영화 초반, 살면서 처음으로 겪은 충격적인 현장과 마주했음에도 불구 류흑자를 도와 침착하게 문화인 구출에 나섰던 팡란은 이후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에 지친 유격대원들을 살뜰히 챙기는 리더십으로 부대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오직 팡란의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모성애를 보여주다가, 딸을 위해 항일 운동에 나서는 어머니 역을 연기한 엽덕한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이 외에도 <그날은 오리라>에는 항일 운동에 동참한 여성 캐릭터들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 덕분에 <그날은 오리라>는 항일운동이라는 굵직한 주제를 고스란히 담으면서도 여성을 주체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여성주의적 시선을 잃지 않는다. 항일운동이라는 주제 자체가 한국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남다르게 느껴지지만, 여성 캐릭터를 앞세운 허안화의 항일영화는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및 제4회 사람사는세상영화제 개막작으로 국내 상영된 바 있다. 국내 개봉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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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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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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