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KBO리그는 리그에서 정상을 다투는 최고의 마무리투수들이 있었다. 지금은 메이저리그에 가 있는 파이널 보스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오승환과 경쟁해서 구원왕을 따냈던 적이 있는 손승락(현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의 수호신이었던 봉중근(LG 트윈스) 등 상위권 팀에는 승리를 지키는 수호신들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KBO리그는 오승환이 떠난 이후 임팩트 강한 특급 마무리투수들이 사라졌다. 손승락은 최근 몇 년 동안 고전했으며, 봉중근은 어깨 수술을 받았다. 오승환이 떠나고 임창용(현 KIA 타이거즈)이 돌아왔지만, 임창용은 최근 몇 년 동안 임팩트가 급격히 떨어졌다.

최근 몇 년 동안 KBO리그 신인 드래프트의 가장 큰 과제는 "좋은 투수 찾기"였다. 그 만큼 타고투저 경향이 심하고 롱런하는 투수들이 많이 사라진 탓이다. 물론 투수 성장에 비해 타자 성장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 점도 있어서 이러한 특급 투수 품귀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다보니 각 팀도 구위가 가장 좋은 구원투수를 고정 마무리투수로 쓸 수 없는 상황들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예가 8월 16일 KIA 타이거즈의 경기였다. KIA의 2선발이자 이닝 이터였던 헥터 노에시의 승리가 걸려있던 경기였는데, 베테랑 투수 임창용이 그대로 마무리할 줄 알았지만 아웃 카운트 하나를 남겨놓고 김기태 감독이 직접 올라와서 투수를 바꾼 것이다.

다만 모든 팀이 집단 마무리 체제를 가동하는 것이 아니다. 팀 사정에 의하여 상황에 따른 투수 기용을 하는 것이며, 일부 구단들은 한 선수가 고정적으로 마무리투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대표적으로 고정 마무리로 활약하는 경우는 손승락과 임창민(NC 다이노스) 등이다.

부활한 손승락, 연투 횟수 많은 롯데

손승락은 넥센 히어로즈 마무리투수 시절이었던 2010년과 2013년 그리고 2014년까지 3번의 구원왕 타이틀을 차지한 적이 있다. 2010년은 삼성 시절의 오승환이 부상으로 숨 고르기를 했던 시즌이고, 2013년에는 오승환보다 손승락에게 세이브 기회가 더 많이 갔던 해였다. 그 이후 오승환은 해외 리그에 진출했고, 2014년은 넥센이 한국 시리즈에 진출한 시즌이었다.

군 복무를 마친 뒤부터 리그의 특급 마무리투수로 자리잡은 손승락은 이후 오승환과 같은 시대에 활약하며 서로 구원왕 타이틀을 나눠 가졌다. 2014년에는 평균 자책점이 4.33까지 치솟기는 했지만 오승환이 해외 리그로 떠난 이후 손승락을 추격할 타이틀 경쟁자가 없었다.

그랬던 손승락은 2015년 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을 취득했고, 선수단 세대 교체가 진행중이었던 넥센은 조상우와 한현희가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 존 서저리)을 받았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승락을 붙잡지 않았다.

FA 계약을 통해 롯데로 이적한 손승락은 이적 첫 해인 2016년에 7승 3패 20세이브 평균 자책점 4.26을 기록했다. 이전까지 몇 년 동안의 과부하가 누적된 것에 대한 의혹도 있었다. 다만 손승락의 피로 누적은 다른 팀들의 마무리투수들도 집단 수난을 당하면서 그렇게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2017년 손승락은 16일까지 48경기에 등판하여 1승 3패 27세이브 평균 자책점 2.42를 기록하고 있다. 평균 자책점만 보면 전성기 시절로 돌아간 모습이다. 손승락이 롯데에 오기 전까지 확실한 마무리투수가 없었던 롯데는 손승락의 부활에 힘입어 아직 중위권 경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다만 손승락은 올해도 피로 누적이 우려된다. 지난 해까지 구원투수들의 연투가 가장 심했던 팀은 김성근 전 감독 체제의 한화 이글스였다. 그러나 김성근 전 감독이 시즌 초반에 물러난 올해는 그 연투의 팀이 한화에서 롯데로 옮겨간 모양새다.

롯데는 올 시즌 연투 79회로 이 부문 리그 1위에 올라있다. 2경기 연투가 67회로 제일 많으며, 3경기 연투는 10회로 이 부문만 한화(11회)에 이어 2위일 정도다. 게다가 다른 팀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4경기 연투와 5경기 연투 기록까지 롯데만 갖고 있다.

손승락은 개인 연투 부문에서 13회로 이 부문 2위다(1위 LG 트윈스 진해수 19회). 다만 이 13번의 연투에서 2번은 3경기 연투이다. 진해수의 경우 왼손 타자 스페셜리스트이기 때문에 1이닝 미만으로 던지는 원 포인트 릴리프 등판이 38경기였으니까 그렇다 쳐도 마지막 이닝에 고정 등판하는 손승락은 1이닝 미만 투구를 했던 적이 14경기 뿐이다.

NC의 수호신 임창민, 3년 째 고정 마무리

1군 참가 첫 시즌(7위)을 제외하고 2014년부터 꾸준히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고 있는 NC 다이노스는 2015년부터 임창민이 고정 마무리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에 입단한 뒤 군 복무를 수행했던 임창민은 전역 후 퓨처스리그에만 머무르다가 NC로 트레이드됐다.

NC의 창단 첫 트레이드로 이적한 임창민은 이후 점차 필승조로 자리를 잡아갔다. 2015년 원래 마무리투수였던 김진성이 부상으로 이탈하자 임창민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고정 마무리 자리를 차지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그 결과 임창민은 마무리 첫 시즌인 2015년 31세이브, 2016년 26세이브를 기록하며 NC의 수호신이 되었다. 2015년 겨울 프리미어 12와 2017년 봄 제 4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으로도 선발되어 활약했고, 어느 새 리그 전체에 알려진 마무리투수가 됐다.

16일까지 손승락이 27세이브로 세이브 타이틀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임창민이 24세이브로 2위에 올라 추격 중이다. 다만 전반기까지는 임창민이 36경기에서 21세이브를 기록하며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후반기에 임창민은 세이브 기회가 많이 오지 않아 3세이브 추가에 그쳤고, 손승락은 16경기에서 12세이브를 추가했다.

임창민이 큰 부진에 빠졌다고만 볼 수는 없다. 후반기에 롯데는 25경기 15승 1무 9패로 이 부문 2위지만, NC는 26경기 4승 12패로 5위에 그쳤기 때문. 팀이 4승 밖에 거두지 못한 탓에 임창민이 3세이브 밖에 추가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임창민도 7월과 8월의 평균 자책점을 보면 그가 흔들리지 않은 것도 아니다. 6월까지 1.80이었던 그의 평균 자책점은 7월과 8월만 봤을 때 5.87에 달한다. 다만 이 부분 역시 임창민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고, 팀 분위기로 인하여 자신이 가장 원하는 세이브 기회에서 많이 던지지 못하고 다른 상황에서 던지다 보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때문에 NC는 얼마 전까지 지키고 있던 2위 자리를 디펜딩 챔피언 두산 베어스에게 내줬다. 1위 KIA 타이거즈와는 이미 8경기 이상 벌어졌기 때문에 남은 시즌 동안 1위 자리를 추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상황이고, 두산과의 2위 수성 경쟁에 집중할 시기다. 다만 마무리투수 자리에 있어서는 NC가 10개 구단 중 가장 안정적으로 보인다.

타선 대비 불안한 뒷문, 집단 마무리 가동한 KIA

두산에 8경기, NC에 8경기 반 차로 앞서 있는 KIA 타이거즈이지만, KIA는 정규 시즌 우승까지 남아있는 매직 넘버가 0이 될 때까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리그 최강의 타선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지키는 과정이 힘들었던 탓이다.

KIA는 16일 경기에서 아웃 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임창용을 교체하여 임기준이 세이브를 올렸고, 15일 경기에서도 8회에 임창용이 등판한 뒤 9회에 김세현이 등판하여 경기를 끝냈다. KBO리그 통산 254세이브(역대 2위)를 기록한 베테랑 임창용에게 있어서는 기분이 상할 수도 있지만, 임창용 역시 팀의 승리를 위해 대인배의 자세를 취했다.

올 시즌 KIA는 무려 7명의 투수가 세이브를 기록했다. 김윤동이 10세이브로 팀에서 가장 많은 세이브를 기록했고, 임창용이 7세이브로 그 다음을 따르고 있다. 박진태와 심동섭도 각각 2세이브를 기록했고, 한승혁과 임기준 그리고 김세현(이적 후 기록만)까지 각각 1세이브를 기록했다.

특히 최근 5번의 세이브는 경기마다 다른 투수가 세이브를 올렸다(김윤동-임창용-박진태-김세현-임기준 순서). 등판한 투수들도 다양한 스타일의 투수들이다. 임창용은 사이드 암 스타일의 투수이며, 임기준은 왼손 타자들을 상대하는 스페셜리스트였다. 16일 경기의 경우도 사이드 암 투수가 왼손 타자에게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에 왼손 투수인 임기준을 올렸던 것이다.

그 동안의 통념에 따르면 강한 팀은 승리를 지킬 수 있는 강한 마무리투수가 있었다. 그러나 간혹 예외도 있다. 시즌을 치르면서 상황에 따라 마무리투수를 바꿨던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해외 리그까지 따졌을 때 2012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도 그러했다. 기존 마무리투수였던 브라이언 윌슨이 부상으로 1세이브에 그치고 이탈하자 다른 5명의 투수들이 세이브를 올리며 총 6명의 투수가 세이브 기회를 얻었다. 이들 중 산티아고 카스티야가 25세이브로 가장 많았고, 후반기에 세이브를 가장 많이 올렸던 세르지오 로모는 정규 시즌 14세이브에 이어 월드 시리즈까지 마무리를 책임졌다.

2016년 월드 시리즈 준우승 및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을 차지했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도 그러했다. 마무리 투수로는 코디 앨런(32세이브)이 있었지만, 사실 인디언스 불펜의 핵은 경기 후반 승부처를 책임졌던 셋업맨 앤드류 밀러(당시 이적 후 9홀드 3세이브)였다. 밀러는 포스트 시즌 경기 후반 승부처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ALCS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6년의 인디언스는 팀이 작전에 따라 선수들을 기용한 것이며, 2012년의 자이언츠가 팀의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마무리투수를 교체한 케이스다. 올 시즌 KIA를 포함하여 다른 여러 팀들은 후자의 경우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마무리투수를 그때그때 바꿔야 했다. 올 시즌 롯데와 NC를 빼면 다른 팀들은 고정 마무리투수가 없거나, 있더라도 불안한 셈이다.

KBO리그 환경이 타고투저 현상이 극심하고, 경기 후반 빅 이닝이 나오면서 경기가 뒤집히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때문에 경기 후반에 3점 차 이상 크게 앞서도 승리를 보장할 수 없게 됐다. 특급 마무리를 보유한 팀이야 일단 9회까지 리드를 한 뒤 그에게 맡겨도 되지만, 그럴 수 있는 팀이 별로 없다.

오히려 승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순간은 9회가 아니라 경기 후반 7,8회의 승부처가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점에서는 앤드류 밀러 같이 세이브 상황이 아니라 승부처에서 확실하게 팀의 리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올 시즌 KBO리그도 마무리투수가 흔들린다고 해서 불펜 전체가 흔들리는 경우도 적었다.

KIA가 계속해서 집단 마무리 체제를 고수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오히려 팀의 불펜이 후반기에 들어서 안정을 찾았기 때문이다. KIA의 후반기 구원투수 평균 자책점은 3.47로 리그에서 가장 좋았다. 임창용만 봐도 전반기 4.68이었던 평균 자책점이 16일까지 후반기 11경기에서 1.64로 환골탈태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IA가 16일 경기에서 마지막 아웃 카운트 기회를 임창용에게 주지 않았던 것은 임창용이 전성기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의 임창용은 그야말로 리그 최고의 마무리투수였고, 벤치에선 전혀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 그런 선수였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올 시즌 임창용이 나름 7세이브로 팀내 2위이긴 하지만, 블론세이브도 4회나 된다. 그런 만큼 1점차 승부에서 왼손 타자에게 약한 사이드 암 투수를 그대로 밀고 간다는 것도 불안했다. 결국 김기태 감독은 세이브 상황에서 등판한 투수에게 계속 기회를 주는 것보다 다른 상황과 마찬가지로 상황에 맞는 투수 기용으로 경기를 끝낸 것이다.

물론 1990년대 중후반의 타이거즈였으면 선동열(현 국가대표 감독)과 임창용으로 이뤄지는 철벽 마무리의 시대였으니 이런 작전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민이 건강했다면 그래도 선택의 경우가 하나 더 있었겠지만, 윤석민은 어깨에 웃자란 뼈 제거 수술을 받고 아직 재활 중이다.

신기한 점은 KIA가 2009년에도 이러한 작전으로 한국 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당시 KIA는 특급 마무리투수가 없었고, 팀내 세이브 1위였던 유동훈도 22세이브에 불과했다. 나머지 16세이브는 다른 투수들이 돌아가며 기록했고, 올 시즌 KIA는 이러한 작전을 보다 다양한 선수들에게 나눠서 활용하고 있다.

특정 투수에게 세이브 기회를 고정적으로 주는 것과, 상황에 따라 돌려막기를 하는 것 모두 승리를 위한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어떠한 작전이 최고의 작전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승리를 위한 감독들의 지략을 보는 것도 올 시즌 남은 경기를 관전하는 재미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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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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