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산범.>으로 첫 공포 영화 주연에 도전한 배우 박혁권. 정작 스스로는 공포 장르를 잘 즐기지 않는다고.
영화 <장산범.>으로 첫 공포 영화 주연에 도전한 배우 박혁권. 정작 스스로는 공포 장르를 잘 즐기지 않는다고.NEW

공식적으론 3년 만의 언론 인터뷰다. 드라마 <밀회> 이후 영화와 드라마 합쳐 스무 편 가까이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한 그는 유독 공개 인터뷰에 소극적이다. 그간 출연한 작품들 속 비중이 작아서라고 하기엔 '혁권 더 그레이트', '길태미' 등 그를 수식하는 별명이 가득하다. 이처럼 '별명유발자'인 그에게 "왜 그간 등장하지 않았나" 반 농담으로 묻자 돌아온 답이 "특정 매체만 하면 욕먹는다고 회사에서 그러더라. (매니저를 보며) 왜 안 잡았어?!"다.

재치 있는 응수만큼 그의 연기는 재기발랄하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같은 1세대 웹 드라마에선 코믹함을, <육룡이 나르샤> 류의 퓨전 사극에선 주어진 캐릭터 그 이상을 살려내며 흥행의 주역이 됐다. 그래서 의외였다. 17일 개봉하는 영화 <장산범>은 스릴러이자 공포 장르의 성격이 강하다. 스스로도 "돈 주고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다"며 손사래 치던 그가 이 영화에선 낯선 아이에게 홀린 아내와 딸을 지키려는 가장으로 분했다.

공포영화의 공정

 영화 <장산범> 스틸 사진.
영화 <장산범> 스틸 사진. NEW

그가 맡은 민호는 이야기만 놓고 보면 주는 아니다. 첫 아이를 잃은 후 불안증에 시달리는 아내(염정아)와 치매를 않고 있는 어머니(허옥숙)가 기괴한 분위기를 주도하고, 이들에게 낯선 소녀(신린아)가 다가오며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된다. 민호는 그 사이에서 감정을 연결하거나 또 다른 피해자가 되는 등 다소 기능적 역할을 해야 했다.

- 주연이라지만 캐릭터가 단편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나. 이야기 흐름상 무기력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석했는지. 
"근데 민호가 해야 할 임무가 그거였다. 염정아씨랑 공포감을 만드는 소녀가 주연이지 전 지원 사격하는 역할이었다. 일단 대본에 충실하려 했다. 사건을 이끌어 가는 역할이면 제가 준비하면서 덧붙일 여지가 있겠지만 여기선 감독님이 원하는 게 분명할 거라 생각했다. 그걸 잘 이어줬나? 음, 그건 잘 모르겠다.

일반적인 건 임무를 해내기만 하면 되는데 공포 장르는 관객이 어떻게 볼 건지까지 생각해야 하더라. 공포 영화엔 잘 출연 안 했고, 보지도 않았다. 피 낭자하고 무서운 걸 돈 내고 왜 보지? 이런 생각이었다. 관객을 긴장하게 만들고 그런 게 이 장르의 기술인 것 같다. 특히 <장산범>은 소리와 영상 효과가 중요했다. 편집도 중요했고, 최종결과물이 어찌 나올지 궁금했다. 그래서 출연했다."

- 정작 미혼인데 그간 아빠 역을 많이 맡았다. 이번 영화에서도 아역 신린아와 호흡을 맞췄다. 공포 영화 현장이라 아이와 더욱 유대감이 필요했을 것 같다.
"아이라고 아이처럼 대하지 않고 싶다. 그냥 사람으로 대했다. 그래서 오히려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난 동등한 인간관계를 원한다. 어려서 서먹한 건 없었다. 내 조카에게도 그렇게 대한다. 막 어리광을 피우면 내가 힘들 땐 '싫어! 네가 해!' 이런 말도 막 한다(웃음). 본래 가족들이 더 안 친근하게 서로를 대하지 않나?"

- 그래서 그간 가족 연기가 그렇게 현실감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드라마 볼 때마다 친근한 가족에 이질감을 느끼거든. 가족은 친절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해서 제가 더 리얼하게 보이나 보다. 내 가족과 연락도 잘 안 하는데. 아 이런 말은 할 필요 없나?(웃음)"

박한 자기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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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극단 산울림으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햇수로 치면 25년 차 중견 배우다. 나름 자신만의 특기와 노하우가 있을 법한데 늘 자신의 연기에 대해선 "생각보다 못했다", "많이 아쉽다"며 박한 평가를 하기 일쑤였다. 대중의 호평에 스스로 당근을 줄 수도 있을 텐데 그는 대부분 채찍을 본인에게 들었다.

- 너무 자신에게 냉정한 것 아닌가. <하얀거탑>도 그렇고 박혁권 인생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이 많은데. 스스로도 좀 점수를 줄 작품이 있지 않을까.
"음, 있긴 있는데 많진 않다. 작품 전체라기 보단 어떤 장면에서 이 대사 한 마디는 잘했다 싶은 거지. 로버트 드 니로 연기를 내가 봤는데 어찌 후한 평가를 내게 줄까. 호날두가 볼 차는 걸 봤는데 내 스스로 실력이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진짜 맛있는 짬뽕을 맛봤는데 어떻게 다른 일반 짬뽕에 만족하겠나." (이 대화 중 박혁권이 자주 가는 중국집 이야기로 잠시 샜다-기자 주)

- 너무 기준이 높다. 평소엔 괜찮을지 몰라도 자기를 갉아먹을 수도 있을 텐데. 그 힘듦을 어떻게 견디나.
"실력은 안 돼도 꿈을 꿀 수 있잖나. 어떻게 행복감을 느끼냐고? 아, 그건 또 내가 알아서 하는 게 있다(웃음). 예전엔 눈높이만 올라가니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긴 했다. 특히 드라마 할 땐 준비시간도 부족해서 더 힘들었다. <하얀거탑>이 처음 출연한 드라마인데 촬영이 없는 날이면 자주 가는 술집에 가서 술 먹고 많이 울었다. 이게 반복되니까 눈높이는 그대로 두되 나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게 되더라. 나도 살아야 하니까! (웃음)"

- 대중들이 배우 박혁권을 가장 많이 기억하는 모습이 그때일 거다. 시청자 중 하나로 그땐 배우가 아니라 실제 의사를 섭외한 줄 알았다.
"얼굴이 알려지며 내 스스로 속상한 부분이 그 점이다. 이젠 그런 평을 못 받지 않나. '진짜 의사 아냐?', '진짜 깡패 아냐?' 이런 평이 제일 좋은데 아무리 잘해도 그건 힘들겠지. <하얀거탑> 찍을 땐 그냥 대학병원 의자에 앉아서 의사와 환자들을 쭉 봤다. 의사들 머리가 다 떡이 져 있더라. 머리 하시는 분께 내 머린 하지 말아달라고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주연 배우들 보다 보조 출연자 분들이 더 의사 같았거든.

한번 연기하는 거 진짜 같이 보이고픈 욕심이 있다. 연기하는 이유가 진짜처럼 하기 위해서다. 안 그러면 내겐 연기가 의미 없다. 그게 아니면 음악이든 행위예술을 했겠지. 다른 예술과 연기의 차이는 진짜처럼 보이려 하는지 아닌지 같다. 그걸 위해 세트도 만들고, 사람도 쓰는데 정작 연기하는 본인이 가짜면 안 되지 않나? 대구탕을 끓였는데 야채랑 다른 재료는 진짠데 대구가 가짜야. 이건 쓰레기도 아니고 뭘까."

철저한 노력파

 25년차 배우 박혁권의 매력은 꾸준함과 노력 아닐까.
25년차 배우 박혁권의 매력은 꾸준함과 노력 아닐까.NEW

"특별히 배우를 꿈꿨다기 보단 고등학생 때 연극반을 했고, 이후 우연히 극단 시험에 응시하면서" 시작했다지만 점차 인생의 전부로 자리잡아갔다. 공부는 곧잘 했지만 뒤늦게 들어간 대학과 연극 무대에서 그는 당찬 신인이기 보단 목소리가 벌벌 떨리는 소심한 배우였다. 그 당시부터 써온 그만의 공연일지는 그의 소중한 자산이다. 연극 <지하철 1호선> <밥퍼랩퍼>, 뮤지컬 <불 카르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으로 저변을 넓혔던 그는 뮤지컬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던 직후 돌연 영화로 발을 옮긴다.

- 무대 연기에서 승승장구 할 수 있었을 텐데, 영화를 택했다. 배우를 직업으로 생각하면서부터였나.
"1993년 연극 무대로 첫 발을 내디딘 건 맞지만 학교에 늦게 입학했고, 군대도 늦게 갔다. 직업이라고 생각한 시점이 데뷔라고 할 텐데, 그 기준은 연기로 돈을 받기 시작한 때 아닐까. 그러면 1998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다. 예수를 드는 역할로 난생 처음 돈을 받았다.

뮤지컬은 근데 애초에 포기했다. 술 한잔 먹고 노래방 갈 정도는 되는데 이걸로 돈을 받는 거는 스스로 사기라고 생각했다. 뮤지컬을 빨리 포기하고 정극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가 좀 더 다양하게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영화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 그러다 <시실리 2km>로 영화계에 데뷔한다. 당시 서른셋이었는데 스스로 조급하진 않았나. 그 이후 꾸준했다는 게 신기하다.
"조급했지. 서른 중반이라 올해까지만 해보고 앞이 보이지 않으면 그만 두자는 생각을 매년 했다. 그러다가 나이를 더 먹으니 다른 일을 아예 못하겠더라. 경력 안 따진다는 일을 구한다 해도 사장이라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뽑겠나? '큰일 났다! 연기로 승부하자'고 결심했지."

- 다시 그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다 해도 연기를 택할 건가?
"하긴 할 건데 주변 조건이 좀 부드러운 상태에서 하면 좋겠다. 이를 테면 우리 집에 돈이 좀 많다거나? 농담이다! (웃음)"

충무로의 미친 존재감 

- 예전부터 담배 한 보루에 독립영화에 출연하기도 하고, 어지간하면 맞춰서 작품에 힘을 실어주는 편이었다. 본인만의 선택 기준이 뭔가.
"일단 중요한 건 대본을 보고 내가 표현할 수 있을 지다. 대본도 안 보고 출연한 경우도 있다. 신뢰하는 감독님일 때 그렇다.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만나서 얘기해보니 지향점이 달라 출연 안 한 것도 있지. 윤성호 감독(<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등)이나 안판석 감독님(<하얀거탑> <밀회>), 신정원 감독님(<시실리 2km>)은 대본을 보지 않고 출연해왔다."

- 그런 선택 기준으로 좀 당황했던 적도 있지 않나.
"있지. <육룡이 나르샤> 때 길태미는 이게 진짜…. 의상과 분장 콘셉트를 잡는 분들도 고민이 많더라. 그 상황에 덜컥 겁이 났다. 제작진도 명확한 그림이 없구나. 감독님 나름 구체적 생각이 있겠지만 그게 실체화 되지 않았던 때다. 그래서 자신감 없이 임해서 나중에 재촬영 한 부분이 꽤 많다. 다행히 인기가 있었다는데 워낙 독특한 캐릭터니까. 죽기 전까지 그런 캐릭터는 못할 것 같다."

- 그런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하아! 어쩔 수 없이 물 타기 해야지. 나도 살아야 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안전한 지점을 택한다. 이래서 점점 작품을 택하는 게 조심스러워진다. 열심히 했는데 너무 못했다면 욕먹으면 되는데 제작과정에서 서로 다른 지점을 보고 있다면 고역이지. 저 스스로 창피한 일이 많다."

- 대중들은 꾸준히 호평하고 있다. 충무로의 미친 존재감이라고도 하잖나. 
"감사하다. 근데 그런 평에 영향 안 받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나쁜 말도 좋은 말에도 말이다. 내 생각보다 더 칭찬하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러지마~ 나도 다 내 기준이 있어~' 이러고 만다."

- 벌써 40대 중반을 지나고 있다. 누군가의 아빠나 남편 역 말고 새로운 역할을 더 원하진 않나.
"음. 엄마 역을 하는 것보단 낫지! (웃음) 제 나이 대 충분히 할 수 있는 거니까 괜찮다. 아빠 역할이라기 보단 가정이 있는 캐릭터는 당분간은 피하고 싶은 생각이다. 30대에도 그런 농담하잖나. '20대와 달라~' 근데 40대는 몸으로 확 느낀다. 1년, 2년 사이 느낄 정도로 꺾이고 있다. 더 꺾이기 전에 진짜 센 액션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 철저한 노력파로 알려져 있다. 무대 공연 당시 쓰던 일지를 여전히 쓰고 있는지.
"그 작업을 몰아서 해야 할 거 같다. 2007년? 2008년까지 쓰긴 했다. 요즘에 좀 쉬어야 할 때인 거 같아서 고민 중이다. 그러다 내 인생작이 오면 어떡하지? 생각이 좀 복잡한데 빠른 시일 내에 결정할 것 같다. 안식년을 써야 할 때다. 근데 또 통장잔고가 바닥나면….(웃음)"

그리고 남은 이야기... <택시운전사>의 특별한 경험
인터뷰에 다 싣지 못했지만 그에게 현재 상영 중인 <택시운전사>에 대해 물었다. 극중 박혁권은 진실 보도를 위해 노력하지만 끝내 상부에 의해 보도 통제를 당하는 지방지 기자로 분했다. "사투리와 외국어를 둘 다 하는 게 어렵더라. 다음엔 피해야겠다"며 재치 있게 운을 뗀 그는 영화에 얽힌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당시 사건에 대해 검색 좀 하고 들어가긴 했다. 감독님이 준 자료에 <전남매일신문>인가. 그 소속 기자 분들이 '진실을 알리지도 못하고 할 수 있는 게 없어 붓을 놓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게 있더라. 제가 연기한 그 기자 캐릭터도 그 성명에 참여한 인물이라 상상하고 임했다. 군 생활을 완도에서 해서 광주를 많이 지나다녔다. 개인적으로 자주 가서 선후배들도 만나고 5‧18 묘역을 참배하기도 했다. 광주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음, 내 연기엔 만족스럽지 않다. 그 실존인물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한 걸까? 차라리 사투리를 빨리 포기할 걸 그랬다. 발음엔 자신 있었는데 내 억양이 꽝이더라." 


박혁권 장산범 택시운전사 염정아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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