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차 배우 박혁권의 매력은 꾸준함과 노력 아닐까.
NEW
"특별히 배우를 꿈꿨다기 보단 고등학생 때 연극반을 했고, 이후 우연히 극단 시험에 응시하면서" 시작했다지만 점차 인생의 전부로 자리잡아갔다. 공부는 곧잘 했지만 뒤늦게 들어간 대학과 연극 무대에서 그는 당찬 신인이기 보단 목소리가 벌벌 떨리는 소심한 배우였다. 그 당시부터 써온 그만의 공연일지는 그의 소중한 자산이다. 연극 <지하철 1호선> <밥퍼랩퍼>, 뮤지컬 <불 카르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으로 저변을 넓혔던 그는 뮤지컬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던 직후 돌연 영화로 발을 옮긴다.
- 무대 연기에서 승승장구 할 수 있었을 텐데, 영화를 택했다. 배우를 직업으로 생각하면서부터였나."1993년 연극 무대로 첫 발을 내디딘 건 맞지만 학교에 늦게 입학했고, 군대도 늦게 갔다. 직업이라고 생각한 시점이 데뷔라고 할 텐데, 그 기준은 연기로 돈을 받기 시작한 때 아닐까. 그러면 1998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다. 예수를 드는 역할로 난생 처음 돈을 받았다.
뮤지컬은 근데 애초에 포기했다. 술 한잔 먹고 노래방 갈 정도는 되는데 이걸로 돈을 받는 거는 스스로 사기라고 생각했다. 뮤지컬을 빨리 포기하고 정극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가 좀 더 다양하게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영화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 그러다 <시실리 2km>로 영화계에 데뷔한다. 당시 서른셋이었는데 스스로 조급하진 않았나. 그 이후 꾸준했다는 게 신기하다."조급했지. 서른 중반이라 올해까지만 해보고 앞이 보이지 않으면 그만 두자는 생각을 매년 했다. 그러다가 나이를 더 먹으니 다른 일을 아예 못하겠더라. 경력 안 따진다는 일을 구한다 해도 사장이라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뽑겠나? '큰일 났다! 연기로 승부하자'고 결심했지."
- 다시 그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다 해도 연기를 택할 건가?"하긴 할 건데 주변 조건이 좀 부드러운 상태에서 하면 좋겠다. 이를 테면 우리 집에 돈이 좀 많다거나? 농담이다! (웃음)"
충무로의 미친 존재감 - 예전부터 담배 한 보루에 독립영화에 출연하기도 하고, 어지간하면 맞춰서 작품에 힘을 실어주는 편이었다. 본인만의 선택 기준이 뭔가."일단 중요한 건 대본을 보고 내가 표현할 수 있을 지다. 대본도 안 보고 출연한 경우도 있다. 신뢰하는 감독님일 때 그렇다.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만나서 얘기해보니 지향점이 달라 출연 안 한 것도 있지. 윤성호 감독(<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등)이나 안판석 감독님(<하얀거탑> <밀회>), 신정원 감독님(<시실리 2km>)은 대본을 보지 않고 출연해왔다."
- 그런 선택 기준으로 좀 당황했던 적도 있지 않나."있지. <육룡이 나르샤> 때 길태미는 이게 진짜…. 의상과 분장 콘셉트를 잡는 분들도 고민이 많더라. 그 상황에 덜컥 겁이 났다. 제작진도 명확한 그림이 없구나. 감독님 나름 구체적 생각이 있겠지만 그게 실체화 되지 않았던 때다. 그래서 자신감 없이 임해서 나중에 재촬영 한 부분이 꽤 많다. 다행히 인기가 있었다는데 워낙 독특한 캐릭터니까. 죽기 전까지 그런 캐릭터는 못할 것 같다."
- 그런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는 노하우가 있다면?"하아! 어쩔 수 없이 물 타기 해야지. 나도 살아야 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안전한 지점을 택한다. 이래서 점점 작품을 택하는 게 조심스러워진다. 열심히 했는데 너무 못했다면 욕먹으면 되는데 제작과정에서 서로 다른 지점을 보고 있다면 고역이지. 저 스스로 창피한 일이 많다."
- 대중들은 꾸준히 호평하고 있다. 충무로의 미친 존재감이라고도 하잖나. "감사하다. 근데 그런 평에 영향 안 받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나쁜 말도 좋은 말에도 말이다. 내 생각보다 더 칭찬하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러지마~ 나도 다 내 기준이 있어~' 이러고 만다."
- 벌써 40대 중반을 지나고 있다. 누군가의 아빠나 남편 역 말고 새로운 역할을 더 원하진 않나."음. 엄마 역을 하는 것보단 낫지! (웃음) 제 나이 대 충분히 할 수 있는 거니까 괜찮다. 아빠 역할이라기 보단 가정이 있는 캐릭터는 당분간은 피하고 싶은 생각이다. 30대에도 그런 농담하잖나. '20대와 달라~' 근데 40대는 몸으로 확 느낀다. 1년, 2년 사이 느낄 정도로 꺾이고 있다. 더 꺾이기 전에 진짜 센 액션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 철저한 노력파로 알려져 있다. 무대 공연 당시 쓰던 일지를 여전히 쓰고 있는지."그 작업을 몰아서 해야 할 거 같다. 2007년? 2008년까지 쓰긴 했다. 요즘에 좀 쉬어야 할 때인 거 같아서 고민 중이다. 그러다 내 인생작이 오면 어떡하지? 생각이 좀 복잡한데 빠른 시일 내에 결정할 것 같다. 안식년을 써야 할 때다. 근데 또 통장잔고가 바닥나면….(웃음)"
그리고 남은 이야기... <택시운전사>의 특별한 경험 |
인터뷰에 다 싣지 못했지만 그에게 현재 상영 중인 <택시운전사>에 대해 물었다. 극중 박혁권은 진실 보도를 위해 노력하지만 끝내 상부에 의해 보도 통제를 당하는 지방지 기자로 분했다. "사투리와 외국어를 둘 다 하는 게 어렵더라. 다음엔 피해야겠다"며 재치 있게 운을 뗀 그는 영화에 얽힌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당시 사건에 대해 검색 좀 하고 들어가긴 했다. 감독님이 준 자료에 <전남매일신문>인가. 그 소속 기자 분들이 '진실을 알리지도 못하고 할 수 있는 게 없어 붓을 놓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게 있더라. 제가 연기한 그 기자 캐릭터도 그 성명에 참여한 인물이라 상상하고 임했다. 군 생활을 완도에서 해서 광주를 많이 지나다녔다. 개인적으로 자주 가서 선후배들도 만나고 5‧18 묘역을 참배하기도 했다. 광주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음, 내 연기엔 만족스럽지 않다. 그 실존인물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한 걸까? 차라리 사투리를 빨리 포기할 걸 그랬다. 발음엔 자신 있었는데 내 억양이 꽝이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