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했던 첼시의 2015-2016 시즌

첼시FC(자료사진) ⓒ 위키미디어


충격적인 패배다. 지난 시즌 EPL 챔피언이자 올 시즌에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첼시가 개막전부터 참패를 당했다.

12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스탬포드브릿지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1라운드 첼시FC와 번리FC의 경기에서 원정팀 번리가 3대2 승리를 챙겼다.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첼시는 지난 시즌 EPL 우승팀인 반면 번리는 리그 16위에 위치하며 겨우 강등을 면한 팀이다. 경기가 펼쳐지는 곳도 첼시의 홈 구장이었다. 첼시 입장에서는 번리는 산뜻한 출발을 그리기에 안성맞춤인 상대였다.

하지만 승부는 경기 전 예측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차근차근 경기를 풀어가던 첼시는 전반 14분 큰 암초를 만났다. 첼시의 주장 게리 케이힐이 경합 상황에서 공을 따내기 위해 시도한 태클이 너무 거칠었고, 코앞에서 케이힐의 거친 태클을 확인한 주심은 지체 없이 케이힐에게 퇴장을 명했다.

전반 초반 팀의 주장이자 수비의 축 하나를 잃은 첼시는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전반 24분 샘 보크스가 측면에서 올라온 공을 득점으로 연결하면서 번리가 앞서갔다. 흐름을 잡은 번리는 급해진 첼시의 공격을 잘 막아냈고, 차분하게 기회를 창출해 첼시를 무너뜨렸다. 번리는 전반 38분 왼쪽 패널티 박스에서 패스를 받은 스티븐 워드의 환상적인 왼발 슈팅으로 점수 차이를 더 벌렸다. 전반 43분에는 샘 보크스가 다시 한번 헤더로 득점을 성공시키며 번리는 전반전에만 디펜딩 챔피언 첼시를 상대로 세 골이나 빼앗아냈다.

케이힐 퇴장의 나비효과

첼시에게 충격적인 개막전 결과를 안긴 장본인은 역시 케이힐이다. 케이힐은 전반 14분 거친 태클이 전혀 불필요한 상황에서의 안일한 플레이로 팀을 수렁에 빠뜨렸다. 케이힐은 팀에서 가장 경험이 많을 뿐만 아니라 첼시의 주장이다. 경기의 중심을 잡아야 할 선수가 이른 시간에 경솔한 행동으로 퇴장을 당하자 첼시는 빠르게 흔들렸다.

일단 케이힐이 빠지게 되자 첼시의 쓰리백에 곧장 균열이 생겼다. 케이힐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측면 공격수 제레미 보가 대신 수비수 안드레아스 크리스텐센을 투입했다. 크리스텐센의 투입으로 첼시의 최대 장기인 쓰리백은 유지가 됐지만 구조만 그대로 이어졌을 뿐이었다.

징계로 결장한 빅터 모제스의 오른쪽 윙백 위치에 아스필리쿠에타가 투입됨에 따라 안토니오 뤼디거가 쓰리백의 오른쪽 스토퍼로 출장했지만, 케이힐의 퇴장으로 뤼디거는 익숙하지 않은 왼쪽 스토퍼로 자리를 옮겼다. 케이힐 퇴장 이후 구성된 뤼디거-루이즈-크리스텐센 조합은 불안함 그 자체였다.

수비의 중심을 잡아야 할 루이즈가 흔들렸다. 보통 쓰리백의 중심인 선수가 수비의 리더 역할을 맡지만 첼시 수비의 리더는 케이힐이였다. 케이힐이 경기장에 없자 루이즈는 본인의 약점인 다혈질적 성격을 감추지 못했다. 의외의 선제 실점과 골키퍼 티보 쿠르투와 사이의 사인 미스 등은 심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루이즈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쓰리백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루이즈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첼시의 쓰리백의 견고함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EPL 데뷔전을 가진 뤼디거와 어린 나이의 크리스텐센의 힘으로 수비의 안정화를 되찾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미션이었다. 결국 첼시는 전반전 번리가 시도한 유효 슈팅 4개 중 3개가 골망을 통과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번리의 공격력 자체가 그리 날카롭지 않았음을 생각해보면 첼시의 수비가 얼마나 견고하지 못했는지가 증명이 된다.

첼시의 수비는 후반전에 다소 안정을 찾긴 했지만, 3대0으로 벌어진 점수차로 인한 번리의 수비적인 전술의 반대급부였다. 결과적으로 케이힐의 퇴장 하나가 첼시의 참혹했던 전반전을 모두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완전히 증명된 첼시의 약점들

번리전 패배가 첼시에게 더욱 쓰라리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다. 리그 개막 직전까지 첼시를 향했던 의심의 눈초리가 틀리지 않았음이 번리와 경기에서 모두 드러났기 때문이다. 먼저 가장 큰 약점으로 꼽혔던 얇은 선수층이 문제를 일으켰다. 지난 시즌 첼시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선수들의 체력과 에너지를 리그에만 힘을 집중할 수 있었다. 덕분에 크기가 크지 않은 선수단은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는 올 시즌에는 흔히 말하는 '더블 스쿼드'를 필요로 했지만 이적 시장에서 많은 선수를 영입하는데 실패했다. 새롭게 영입된 선수가 많지 않고 에당 아자르가 부상으로, 페드로 로드리게스와 모제스가 징계로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상황 속에 EPL 개막전을 맞이하게 된 첼시였다.

아자르 대신 번리와 경기에서 선발 출장한 제레미 보가는 '에이스' 아자르의 존재감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케이힐의 퇴장까지 발생하면서 보가는 20분도 채 경기장을 누비지 못하고 벤치로 돌아왔다. 은골로 캉테와 중원을 구성한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쓸데없이 주심의 판정을 비아냥거리고 거친 태클을 범하면서 경고 누적으로 후반 막판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캉테의 파트너로 파브레가스 이외의 선수를 다수 원했던 콘테의 요구가 이적 시장에서 반영되지 않았던 점이 번리전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만 것이다. 티에무에 바카요코가 영입되긴 했지만 아직 부상으로 경기에 출장할 수 없다. 사실상 첼시의 중원을 맡을 선수는 현재 캉테와 파브레가스만 존재한다.

이미 풍족하지 않은 선수 수급으로 인해 번리전 패배를 자초한 첼시는 다음 일정이 더욱 걱정이다. 케이힐은 뤼디거 등의 선수가 당장 자리를 메울수 있지만 중원에는 비상이 걸렸다. 파브레가스가 다음 리그 경기에 나서지 못함에 따라 믿고 중원을 맡길 수 있는 선수는 캉테가 유일해졌다. 콘테 전술의 상징인 쓰리백 시스템을 다음 경기부터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첼시의 또 하나의 약점인 획일화 된 전술도 번리와 경기에서 크게 부각됐다. 지난 시즌부터 3-4-3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단단한 수비와 빠른 역습을 주무기를 한 첼시의 전략은 올 시즌에도 '플랜A'로 낙점을 받았다.

문제는 지난 시즌 중후반부터 첼시의 '플랜A' 전술의 파훼법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많은 팀들이 첼시를 잡기 위해 변칙적인 쓰리백 시스템을 가동했고, 공격시에는 빠른 타이밍의 얼리 크로스로 첼시의 골문을 위협했다. 또한 첼시 역습의 선봉장인 양 쪽 측면 공격수를 부지런히 괴롭히는 맞춤 전술로 지난 시즌 첼시는 리그가 진행될수록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전술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콘테 감독은 프리시즌은 물론이고 리그 개막전에도 같은 전술로 경기에 임했고, 번리는 첼시의 약점을 잘 파고 들었다. 물론 케이힐의 이른 시간 퇴장이 큰 변수로 작용하긴 했지만, 첼시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한 번리의 경기 운영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번리는 첼시의 최전방 공격수로 나선 미키 바추아이를 원천 봉쇄하여 양 측면 공격수들의 고립을 야기시켰다. 위협적인 드리블러인 윌리안의 전진까지는 제어하지 못했지만, 윌리안을 측면으로 몰아내 첼시의 공격력을 반감시킨 번리였다. 공격 상황에서 번리는 지난 시즌부터 첼시가 곤혹감을 드러낸 '오른쪽 측면에서의 얼리 크로스→패널티 박스 안 득점' 공격 패턴을 적극 활용했다. 이날 번리 승리의 영웅인 샘 보크스가 터뜨린 두 골 모두 이 공식 안에서 발생했다. 지난 시즌 강등팀을 제외하고 최소 득점을 기록한 번리가 첼시의 고질적인 수비 문제를 파고들 정도로 첼시의 전술이 만천하에 공개되어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확실한 원 톱의 부재, 익숙한 전술, 두텁지 않은 선수 폭 등 개막전부터 많은 문제점이 첼시를 괴롭혔지만 희망이 아예 없었던 경기는 아니였다. 첼시에게 번리전을 통해 가장 큰 희망을 던진 선수는 단연 캉테다. 지난 시즌부터 이미 첼시의 핵으로 자리잡은 캉테의 경기력은 번리와 경기에서도 유효했다. 캉테는 왕성한 활동량은 케이힐의 퇴장으로 발생한 선수 공백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수비 상황에서의 가로채기 등은 여전했고, 절대적으로 숫자가 부족한 공격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공격에 참여해 힘을 보탰다.

첼시의 신입생 알바로 모라타의 활약도 번리전을 통해 건진 수확물이다. 부진한 바추아이 대신 후반 14분 경기장을 밟은 모라타는 환상적인 경기력으로 완벽한 데뷔전을 치렀다. 후반 24분 모라타는 오른쪽 측면에서 윌리안이 올려준 크로스를 정확한 헤더로 연결해 추격골을 터드렸다. 크로스를 찾아가는 모라타의 움직임과 집중력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후반 43분 모라타는 후방에서 길게 넘어온 공을 머리로 떨궈냈고, 그 공을 루이즈가 득점으로 연결하면서 EPL 1호 도움도 같이 기록했다. 케이힐과 파브레가스의 퇴장으로 팀 동료가 두 명이나 부족하고 공격 지원도 매우 빈약한 상황에서 나온 모라타의 헌신적인 플레이였다. 비록 모라타의 맹활약에도 첼시는 패했지만 비싼 이적료 값을 개막전부터 해낸 모라타였다. 지난 주말 아스날과의 FA 커뮤니티실드에서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내며 EPL 무대에서의 연착륙을 예고했다.

첼시는 번리전을 통해 많은 문제점과 몇 가지 희망을 동시에 경험했다. 개막전 패배는 디펜딩 챔피언에게 치욕스러운 결과이지만 이제 리그 38라운드 일정 중 단 한 경기를 소화했을 뿐이다. 지난 시즌 아스날에게 0대3으로 패한 경험을 토대로 리그 우승을 일궈낸 첼시이기에 개막전 패배는 오히려 보약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개막전 충격패가 전략가 콘테 감독으로 하여금 어떤 변화와 선택을 이끌어낼지 벌써부터 다음 리그 경기가 기다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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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전 첼시 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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