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로웠다. 얼마 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엄지 척' 인증 사진으로 '물의'를 빚었던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 1일 KBS <냄비 받침>에 등장했다.

프로그램은 운용의 묘를 보였다. 그 '공교로운 시기'를 허심탄회한 인터뷰를 통해 돌파한 것이다. 출연 당사자에게는 공개 사과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력하고픈 속내를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줬다. 그리고 이런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스타의 사생활을 한 권의 책으로 담는다'던 그 어정쩡한 콘셉트를 살릴 수 있었다. 예능판 <썰전>으로 자리 잡아가는 정치 예능 토크쇼로서의 새 장을 안착시킨 셈이다.

손혜원 vs. 나경원

KBS2

손혜원과 나경원이라는 두 국회의원을 한 자리에 불러모아 앉힌 제작진에게 큰 점수를 주고 싶다.

한 자리에서 밥도 먹기 힘들다는 초선 의원과 다선 의원의 독대. 하지만 연륜으로 보면 이미 60줄을 넘은 건 물론, 사회적으로도 '브랜드 디자이너'로 한 획을 그은 손혜원 의원이다. 나경원 의원은 소장 판사로서의 재직 경험 외에, 일찍이 국회로 들어와 여당의 각종 직책을 맡아가며 모범생 국회의원으로 잔뼈가 굵다. 이 둘의 조합은 한 그릇에 담기엔 너무도 이질적인 조합이었다.

제아무리 인선 사실조차 신문을 보고 알았다지만, 더불어민주당 당명 선정 과정에서, 이번 대선까지 '브랜드 디자이너'로서의 그 역할을 톡톡히 드러낸 손혜원 의원. 정치 입문 시절부터 '근황'조차도 뉴스거리가 되어 온 '실세' 나경원 의원. 이들의 조합은, 어쩌면 현재의 정치권에서 가장 어울리는 만남이다.

연륜과 사회적 경험이 풍부하지만, 내일이 없는 초선 손혜원 의원, 정치적 연륜에서는 손혜원 의원의 그 어떤 행보에도 '훈수'할 게 있는 다선 의원 나경원 의원의 노회함은 적절한 조화를 이루었다. 무엇보다 적폐 청산을 내세운 여당의 초선 의원의 전투력, 투쟁적으로 여당의 발목을 잡는 것이 사명이지만, 정작 내일을 고민하는 야당 다선 의원의 중후함은 그 자체로 현재 여당과 야당을 상징하는 듯이 보였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여성 국회의원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이젠 시대가 달라져 '여혐' 발언을 했다간 같은 당 남자 의원이라도 뼈를 못 추릴 것이라며 달라진 시대를 선언하는 손혜원 의원과 여당 대표 추미애 의원조차도 접근성에서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그간의 정치 생활 동안 체험한 유리 천장을 토로하는 나경원 의원. 슬로건으로서의 여성주의와 현실에서의 한계를 동시에 경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해를 넘어선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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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예능적 조합을 넘어 <냄비 받침>이 의미가 있었던 이유는 또 있다. 그간 손혜원, 나경원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오해'를 넘어서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김군자 할머니 장례식장에서의 적절치 못한 처신으로 문제가 되었던 손혜원 의원. 그 일에 대해 다른 사안에서는 매사에 자신이 넘쳤던 손혜원 의원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무조건 '사과'했다. 자신이 순간 경계가 풀렸었다며, 정치인으로서의 행보에 대한 반성과 어려움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날의 상황을 설명했다. 김군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빈소에 사람이 너무 없었다고. 자신의 SNS를 통해 급하게 요청을 했는데, 그 요청에 100명이 넘는 분들이 와주셨다고. 그분들과 함께 장례식장에서 상주처럼 분주했던 손 의원. 내내 '사진 한 장 찍자'는 부탁을 거절하다가, 늦은 밤 장례 일정을 마무리하고 너무 미안한 마음에 한 장 찍은 사진이 그만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사과는 사과대로, 하지만, 그 사과와는 별개로 그 날의 설명을 담담하게 한 손 의원의 해명은, 분명 적절치 못한 행동이지만 아직 정치인 초년생의 해프닝을 누군가는 이해할 수 있게끔 터전을 만든다. 그런 손 의원이기에, 그의 "닥치세요"라는 그 유명한 발언에 "오죽하면 그랬겠어요"라는 해명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어쩌면 이득을 더 많이 본 건 나경원 의원 쪽일지도 모르겠다. 늘 '해'가 드는 곳에만 있는 '공주' 같은 미모의 정치인, 심지어 표정 변화가 없어 '얼음 공주'란 별명까지 얻은 연륜의, 하지만 어쩐지 인간미가 없어 보였던 이 정치인. 그의 또 다른 면을 <냄비 받침>은 들춰낸다.

사람들은 늘 '실세'라고 하지만, 자신은 그 누구의 세력이었던 적이 없단다. '공주'라 하지만 '무수리'처럼 늘 여당의 어려운 뒷설거지를 마다하지 않았단다. 때론 패장으로 잠시 정치의 무대를 멀리한 적도 있었던, 하지만 여전히 그의 근황이 뉴스거리가 되는 성실하고 진득한 직업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서로 다른 당 소속의, 한 자리에 만나기도 힘든 초선과 다선이지만, 국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때마다 나경원 의원을 지켜보게 되었다는 손 의원. 그의 말처럼, 불통의 아이콘, 독불장군 '노땅'의 상징이 된 야당에서도 나경원은 여전히 자신의 보수적 신념에 따라, '당명'에서부터 진솔하게 터놓고 고민한다.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노력하고자 하는 정치인의 모습은 '신선'했다.

물론 이런 나경원 의원의 모습을 오랜 정치적 경험을 통과한 세련된 자기 포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손 의원의 진솔한 자기표현 역시 그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당연히 예능이라는 '프레임'은 편집을 통해 제작진이 의도한 '사실'들을 선별적으로 전해준다. 그건 '미디어'가 가지는 본질이다. 마치 사람들이 소주를 마시면서도 그 이름이 '참이슬'이라 하니, 이슬을 마신 듯한 청량감을 느끼듯이.

예능판 <썰전>의 가능성을 잘 살려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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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참이슬이 서민을 위로하는 것처럼, <냄비 받침>이 제시한 정치 예능은 '포장'을 넘어선 '정치적 마타도어'를 비껴간다. 나름의 진솔한 정치적 비전들이다. 막말 선봉대가 아니라, 오죽하면 '닥쳐' 대신 그나마 존댓말인 '닥치세요'를 외친 정치인의 모색, 자기 당 의원들이 반말에 삿대질을 하는 상황에서도 표정 변화 없이 질끈 외면하고픈 정치인의 고뇌, 그래도 서로 최소한의 기본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에 대한 '의도' 등 말이다.

설사 그것이 한껏 치장된 정치적 수식어라 하더라도, 다음 국회의원 배지를 위해 달리지 않고 이 정부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문화계 적페 청산을 위해 한껏 타오르겠다는 초선 의원의 포부도, 젊은이들이 외면하는 내일이 없는 야당에서, 그래도 열심히 보수의 가능성을 지펴보겠다는 그 초라하지만 성실한 의도는, 이데올로기와 수식어를 제한 현실 정치의 이성적인 '전선'이다. 세상이 하나의 명쾌한 색깔로 정리되면 좋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대치된 전선'의 현실에서 마주친 '이성적인 모색'과 이해가능한 호감의 자리로서 <냄비받침> 손혜원-나경원 편은 유효하다.

이건 예능판 <썰전>으로서 스스로 자리매김해 가는 <냄비 받침>의 성과이기도 하다. 이경규라는 '중용'의 미학을 통달한 MC의 균형추 아래, 여,야라는 현실의 가장 두 극단을 모아놓고, 각 정치인들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내공은 이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연다. 다행히도 어설픈 아이돌 탐구 생활의 끼얹음이 없으니 아이러니하게도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더욱 빛난다. 어설픈 책 출간이나, 냄비받침이라는 어긋난 네이밍이야 민망하지만, 그래도 모처럼 자리잡아가는 예능판 썰전의 기획을 잘 살려내길 바란다.

손혜원 의원이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됐지?"라고 의아함을 표하는 것처럼, 이렇게 나와서 이성적으로 자기 생각을 풀어낼 정치인이 얼마나 있으려나 싶은 우려가 들기도 한다. 아니 뭐 꼭 정치인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나? 우리 사회 함께 모여 생각을 나눌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겠다. 연예인의 신변잡기가 아니라도. 부디 이런 모처럼의 모색을 잘 살려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냄비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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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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