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사진은 지난 2014년 7월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사진은 지난 2014년 7월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은 지극히 필자 개인의 의견임을 밝힌다.

파국으로 치닫던 슈틸리케호가 이용수 기술위원장의 사퇴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로 침몰했다. 예상됐던 시나리오다. 대한민국 남자 축구 대표팀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2위에 위치하고 있다. 3위 우즈베키스탄이 고작 승점 1점이 뒤진 채 한국을 추격 중이다. 남은 2경기 일정도 이란-우즈베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지옥의 일정이다.

침몰한 배를 다시 추스리고 항해를 하기 위한 새로운 선장의 임명이 시급한 시점이다. 워낙 당면한 상황이 위급하고 어렵기에 소수의 인물이 하마평에 올랐다. 당장의 위기 탈출은 물론이고 나아가 1년 뒤 있을 러시아 월드컵 본선까지 책임질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기사가 언론을 통해 쏟아졌다.

한국 축구의 '소방수 전문 감독' 신태용부터 최근 중국 장수 쑤닝 사령탑에서 내려온 전(前) FC서울 감독 최용수 등이 거론됐다. 한국 대표팀의 현 수석코치인 정해성 코치의 임시 감독 체제도 고려 대상이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상황과 이용수 기술위원장의 마지막 기자회견을 통해 한 사람의 감독 임명이 사실상 확정됐다.

바로 허정무 전(前) 국가대표 감독이다. 허정무 감독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고 사상 첫 '원정 16강'이란 쾌거를 이뤄낸 실력있는 감독이다. 물망에 오른 감독 중에 경험도 가장 많다는 점도 허정무의 장점이다. 

여전히 근시안적인 축구 협회

아직 감독 선임이 결정난 것이 아니지만 허정무가 다시 국가대표 감독으로 복귀한다면 한국 축구에게는 매우 슬픈 일이다. 허정무 감독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 원정 16강이란 업적을 이뤄낸 인물이다.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은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막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월드컵 본선에서도 그리스를 완파하는 등 허정무 감독은 2002년 히딩크 감독 이후 가장 성공한 감독이었다.

혹자는 허정무 감독의 성과를 전성기의 박지성과 뛰어난 신예들의 등장에 편승했다고 폄하한다. 당연히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현대 축구에서 감독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도하 참사'라는 실패의 주요 요인을 슈틸리케 감독의 능력 부재로 여기고 있다면, 성공에 대해서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박지성의 몸상태는 허정무 감독에게 행운이었다. 다만 당시의 대표팀 신예였던 이청용과 기성용 등을 허정무가 발탁해 키웠음을 기억해야 한다. 허정무는 충분히 능력이 있는 감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허정무 감독의 컴백을 한국 축구의 후퇴라고 여기는 이유가 있다. 근시안적 해결 방책으로 지금의 사태를 야기한 축구협회가 또 한번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해결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슈틸리케 감독 경질을 통해 '골든 타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최종예선 8차전까지 오는 동안 몇 번의 골든타임이 존재했다. 이란전 무기력한 패배 후 안일한 인터뷰를 일삼을 때, 중국과 경기에서 패배했던 시기 등이 적절한 경질 시점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고집스러운 슈틸리케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슈틸리케는커녕 주변의 코치진만 수시로 교체하면서 혼란을 가중시켰다. 최종예선이 한참인 순간에도 누가 수석코치 자리를 맡고 있는지도 모호할 정도로 아마추어적인 코치진의 연속이었다.

당장의 문제만 피해가려는 태도가 이 사태를 야기했음에도 축구협회는 요지부동이다. 허정무가 어떤 인물인가. 2010년의 성공은 찬사를 보낼 만 하지만 이후 행보는 실망스러웠다. 월드컵 이후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으로서 도전에 나섰지만 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2014년에는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단장이자 KFA(대한 축구 협회) 부회장으로서 대회를 이끌었지만 실망스러운 결과만 팬들에게 안겨줬다. 허정무는 당시 감독이었던 홍명보와 함께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했다.

허정무는 책임을 통감한다 했다. 그래서 지난 3년간 허정무가 무엇을 보여줬는가. 사실 무엇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다만 작금의 사태에 대해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않던 인물이 슬그머니 자리를 탐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허정무는 축구 원로로서 현 사태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대표팀에 복귀하기에는 적절한 인물이 아니다.

허정무란 인물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에 갇혀서 내뱉는 필자의 근거 없는 주장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보자. 인천에서의 실패 이후 현장을 떠나 있던 감독에게 신뢰를 보낼 수 있는가. 현대 축구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한다. 세계적인 명장들도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쉽게 도태될 정도다. 감독직에서 한동안 떨어져 있던 과거의 인물이 최근의 전술 트렌드를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허정무 감독 부임설이 가장 안타까운 이유는 따로 있다. 도대체 많은 축구 전문가들이 예상한 '슈틸리케 경질'이 다가오는 동안 축구협회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슈틸리케는 최근 2~3달의 부진으로 경질된 감독이 아니다. 길게는 1년 전부터 짧게는 9개월 전부터 실력에 대해 의심을 받던 인물이다.

축구협회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어야 한다. 슈틸리케에게 믿음을 주고 그가 종국에는 성공을 거두는 최고의 시나리오만이 축구협회 머리에 존재했던 모양이다. 축구협회가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음이 들려오는 '허정무 감독 부임설'로 증명이 된다. "외국인 감독을 선임 하기에는 시간이 없다"는 이용수 기술위원장의 말이 공허한 변명으로 들리는 이유다.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대한민국 축구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축구 전문가들은 앞다퉈 한국 축구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대해 울부짖는다. 근래의 U-20 월드컵에서의 아쉬운 도전부터 '브라질 월드컵 참사' 등 큰 대회에서 한국 축구가 실패하면 어김없이 나오는 주장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국 축구가 여전히 세계 축구 정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유가 대부분 근본적인 문제에서 야기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만연한 성적 지상주의, 선진화된 유소년 시스템의 부재, 경제 위기로 인한 기업들의 투자 감소, 미디어 노출 부족 등 수많은 골칫거리들이 쌓여있다. 이것들을 해결해야만 축구 강국에게 수십 년 뒤진 축구 역사의 간극을 메우고 그들을 뒤쫓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축구 전문가들은 말한다. 축구계의 근본이 변해야 하지만, 월드컵 진출 실패가 개혁의 밑거름이 되기에 한국 축구의 토양이 너무나 약하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한국은 전북 현대, 수원 삼성보다 'FC 대한민국'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있는 기형적인 축구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 상황에서 성인 국가 대표팀의 실패는 곧 한국 축구의 실패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K리그라는 풀뿌리보다 국가대표라는 열매의 크기에만 관심을 가진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당연히 즐기는 월드컵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한국 축구의 심각한 퇴보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많은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과거의 인물을 통해 과거의 방식을 사용해 위기를 헤쳐 나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미 국가대표팀이 최고의 인기 팀인 것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구조인지를 모든 축구 종사자들이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 구조가 무너지는 것이 두려운 모양이다.

당장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면 축구 종사자 대부분이 직격탄을 맞는다. K리그에 관한 관심은 당연히 줄어들 것이고 많은 이들이 한국 축구 전체에 실망해 등을 돌릴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너무나도 두렵다. 그래서 일단 월드컵에 나가야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축구는 이미 건설 방식부터 잘못된 건물이다. 보수만 거듭해 덩치는 커졌지만 건물 붕괴에 대한 위험도는 여전하다. 단순한 보수로 건물의 크기만 키우다가는 더 큰 붕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무섭고 위험하더라도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 건물을 일부러 무너뜨린 때가 왔다.

러시아 월드컵을 포기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한 보수 작업이 아닌 축구계의 근간을 흔들 만한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당장의 문제만 해결하는 일을 반복하면 4년 뒤 혹은 8년 뒤에 '제 2의 슈틸리케'를 축구 팬들이 만날 것임을 필자는 장담한다.

한낱 축구 기자 지망생의 허황된 이야기일 수 있다. 축구판에서 직접 몸을 부딪치고 고민하는 이들에 비하면 능력도 경험도 시야도 부족하다. 다만 이것 하나는 기억했으면 한다. 20세기 초반 기업들은 '아동 노동 착취 금지'가 시행되면 기업들은 다 무너져 내릴 것이라 노래를 불렀다. 어린 아이들이 일을 안 하게 되어서 기업들이 모두 망했는가. '아동 노동 착취 금지'는 당시 기업들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제도였지만, 옳은 제도였기에 종국에 세상은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밖에서 보는 제 3자가 오히려 관련자들보다 더욱 객관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 축구는 언제나 변화가 절실했다. 변화의 기회가 또 찾아왔다. 축구인들의 과감한 결정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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